3년 7개월 만에 사라지는 팽목항 '세월호 분향소' 마지막 르포

진도=김영균 기자 2018. 8. 29.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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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 묵묵히 아픔을 품었던 분향소엔 아직도 304명의 영정
2015년 1월 14일 세워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분향소가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3년7개월여 ‘결코 잊지 않겠다’는 전 국민의 다짐을 되새기는 공간이었던 분향소는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모두 철거될 예정이다. 유가족들은 그동안 배려해준 진도군과 군민들을 위해 진도항 개발과 여객선 터미널 건설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분향소를 마음에 묻기로 했다. 철거를 열흘가량 앞둔 지난 20일 팽목항 분향소 뒤편으로 진도항 접안공사를 하고 있는 포클레인이 보인다. 진도=권현구 기자
지난 20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분향소 옆 등대로 향하는 길 양쪽에 내걸린 노란 리본이 바람에 휘날리는 가운데(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그 앞에 설치된 세월호 추모 조형물에도 빼곡히 노란 리본이 걸려 있었다. 분향소 안 영정 앞에는 여전히 희생자들을 위한 선물이 가득했다. 진도=권현구 기자

지난 27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 여름의 끝자락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노란 리본이 매달려 있는 등대길 난간을 적시고 있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등대길을 걷던 한 50대 추모객은 등대길 끝에 위치한 하늘나라 우체통을 둘러보고 기다림의 의자에 앉아보며 숙연한 모습으로 먼 바다를 길게 응시했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며 그리움과 기다림에 지쳐 오열했던 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떠올렸는지 그는 이내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아랫입술을 꽉 깨문 그의 옆모습은 보는 이마저 울컥하게 만들었다.

등대길을 나와 분향소로 향하는 도로 위에는 조도로 들어가려는 차량 30여대가 차도선에 몸을 싣기 위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도로 옆 해상에는 바지선 위에 얹어진 긴 크레인이 안벽 설치를 위해 쉴 새 없이 굉음을 내뿜으며 분주히 움직였다.

진도항 2단계 건설을 위한 접안공사가 한창이었다. 벌써 작업공정이 50%를 넘어섰다. 올해 말까지 접안시설 공사를 완료하고 2020년 10월까지 터미널이 준공되면 이곳에서 제주까지 카페리호가 취항할 예정이다.

다시 찾은 팽목항 분향소 안에는 여전히 슬픈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희생자들의 영정이 벽면에 걸린 TV모니터에 순서대로 나타나는 모습도 그대로였다. 사망자 299명과 미수습자 5명 등 304명의 영정은 아직까지 벽면의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만 제단 오른편 바닥에 있던 어른 검정고무신 8켤레와 예쁘고 앙증맞은 노란 고무신 1켤레는 5켤레로 줄었다. 지난해 4월 세월호를 인양한 뒤 실시한 수색에서 9명의 미수습자 가운데 고창석·이영숙씨와 단원고 허다윤·조은화양 등 4명의 유해를 찾았기 때문이다. 남은 5켤레의 신발은 아직 돌아오지 못한 단원고 남현철·박영인군, 양승진 교사와 일반인 승객 권재근·혁규 부자의 것이다.

70대 노부부와 아이 둘을 데리고 나온 주부까지 이날 오후 팽목항 분향소에는 30여명의 추모객 발길이 간간이 이어졌다. 등대길 기억의 타일에 새겨진, 희생자를 간절히 기다렸던 애절함이 담긴 글귀를 하나하나 읽어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추모객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팽목항에서 네 번의 겨울을 지내는 동안 팽목항 분향소는 미수습자 수색과 세월호 인양 과정을 함께했다. 하지만 이제 이곳 분향소는 오는 31일부터 철거 공사에 들어가 다음 달 3일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세월호가족협의회가 선체인양과 해저면 수색이 끝나면 팽목항 분향소를 정리하겠다고 한 진도군민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하고 철거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팽목항 분향소는 참사 발생 9개월 만인 2015년 1월 14일 세워졌다. 이곳은 바다에서 올라온 아이와 부모가 맨 처음 만났던 장소였다. 차디 찬 바다 속에서 부모 품으로 돌아온 아이를 맨 먼저 끌어안고 오열했던 곳이다. 눈물이 흘러넘쳤던 이곳에 분향소가 설치됐고 세월호 추모의 상징이 됐다.

분향소가 설치된 공간은 당초 전남도에서 추진하는 진도항 2단계 개발 사업 구간이었다. 여객선 터미널 등 항만시설 공사가 진행 중이었으나 세월호 참사로 공사가 중단됐었다. 하지만 진도항 배후지 종합개발 공사와 여객선 터미널 준공, 인근에 들어서게 될 국민해양안전체험관 건립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유가족들은 분향소를 철거하기로 했다. 그동안 진도군민의 배려를 받은 유가족들이 이제 진도군민을 배려하기 위해 추모의 상징인 분향소를 마음속에 묻기로 한 것이다.

분향소가 있던 자리에는 안내판이 세워지고 분향소 주변에 설치한 추모조형물은 2021년 개관 예정인 국민해양안전체험관으로 옮겨지게 될 예정이다. ‘제발, 제발, 간절히 돌아오길’ ‘보고 싶다’ ‘미안하다’ ‘잊지 않을게’ ‘기억하겠습니다’…. 슬픔과 그리움, 안타까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추모객들의 애절한 방명록도 함께 옮겨진다.

이날 오후 분향소를 찾은 손모(48·여)씨는 “사고 당시에도 같은 또래 아이가 있는 엄마로서 마음속 깊이 엄청 많이 울었는데 막상 팽목항 분향소에 와보니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면서 “분향소가 철거돼도 영원히 잊지 않는 추모의 공간이 팽목항 인근에 잘 만들어지길 바란다”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쳤다.

팽목항 분향소와 함께 유가족들이 세월호 선체인양 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사고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섬인 동거차도에 설치했던 초소도 사라진다. 이 초소는 박근혜정부 시절 세월호 선체인양에 대한 유가족들의 참관 요구가 거절당하자 세월호가족협의회가 세월호 인양을 감시·기록하기 위해 2015년 8월 29일 동거차도의 산마루에 설치했다.

이후 유가족들은 세월호 선체인양이 끝난 후 사고해역 해저면 수색이 이어지던 지난해 5월 4일까지 이곳을 지켰다. 이제 동거차도의 감시초소는 사라지지만 인근에는 작은 추모비가 세워질 예정이다.

진도군 세월호참사범군민대책위원회 김남중 간사는 “분향소가 철거된다고 하니 그동안 유가족과 함께 해왔던 시간 중 우리 진도군민들이 소홀함이 없었는지 돌아보게 된다”며 “어떤 말로도 유가족을 위로할 수 없겠지만 지금껏 아픔을 함께 해온 진도군민들은 분향소가 철거돼도 유가족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진도=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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