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라더니 10mm, 호우경보는 뒷북 .. 기상청 '8월의 굴욕'

천권필.정진호 2018. 8. 3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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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경보 늦어 퇴근길 시민 분통
기상청 "기습폭우 상상도 못했다"
중랑천 범람, 차 물에 잠겨 1명 숨져
폭우가 내린 29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강촌유원지 인근 북한강 강물이 불어나 승용차 2대가 고립돼 있다. 차량에 탑승했던 시민은 구조됐다. [연합뉴스]
지난 28일 밤 서울에 쏟아진 ‘물 폭탄’으로 사망자까지 발생하면서 기상청의 ‘지각 경보’에 시민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기상청이 서울 지역에 호우경보를 발령한 시각은 28일 오후 7시 40분이었다. 하지만, 이때는 서울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한참 폭우가 쏟아지고 난 뒤였다. 서울 강북구는 호우경보 발령 전인 오후 6시 무렵 시간당 43.5㎜의 물 폭탄이 쏟아졌고, 서울 성북구와 도봉구에도 각각 시간당 31㎜, 27㎜의 많은 비가 내렸다.

예비특보나 호우주의보는 없었고, 폭우가 쏟아진 뒤에야 기상청이 부랴부랴 호우경보를 발령한 것이다. 기상청은 이날 서울에 50~150㎜의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지난 27일 예보했지만, 호우 예비특보는 경기도 포천과 연천에만 발령했다.


그런 사이 이날 오후 8시 30분에는 홍수주의보가 발령된 중랑천이 범람하면서 동부간선도로 월릉교 부근에서 차량 5대가 물에 잠겼다. 이 중 1대는 뒤늦게 발견되면서 미처 구조되지 못한 A 씨(49)는 29일 오전 2시쯤 숨진 채로 발견됐다. 노원소방서 관계자는 “오후 9시에는 도로에 흙탕물이 3m 넘게 차오른 상황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물에 잠긴 차량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 주민 31명도 집이 물에 잠기면서 인근 마을회관이나 사우나로 대피하는 등 이날 전국적으로 6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기상청도 변명의 여지는 있다. 기상 특보 발령기준에는 3시간 강수량이 60㎜가 넘을 것으로 예상하면 호우 예비특보를 거쳐 주의보를 내리고, 90㎜ 이상이면 경보로 단계를 높이게 돼 있다. 그나마 지난 6월 호우경보 발령기준을 ‘6시간 110㎜ 이상’에서 ‘3시간 90㎜ 이상’으로 개선했는데도 이번 집중호우에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유희동 기상청 예보국장은 이번 기습 폭우에 대해 “당황스러움을 넘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상상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토로했다. 유 국장은 “강수대가 오후 7시쯤 서울을 벗어나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비가 그칠 것으로 봤는데, 갑자기 조직이 강화되더니 남쪽으로 다시 내려왔다”며 “30년 가까이 기상청에 근무했는데도 처음 보는 현상이다 보니 미처 예측을 못 했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지난 23일 제19호 태풍 ‘솔릭(Soulik)’이 접근했을 때에도 잘못된 예측으로 비난을 받았다. 당시 “수도권을 강타할 것”이라는 예보에 많은 어린이집과 학교들이 휴교했지만, 제주도와 남부지방 일부에만 영향을 미쳤을 뿐 수도권에는 비도 거의 오지 않았다. 서울의 강수량은 10㎜에 불과했다.

한편 29일에도 전국에 걸쳐 폭우가 쏟아지면서 피해가 잇따랐다. 이날 새벽부터 오후 4시까지 강원도 철원에는 407.5㎜의 물 폭탄이 쏟아졌고, 경기 포천과 연천이 각각 404㎜, 401.5㎜의 누적강수량을 기록하는 등 경기 북부를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렸다. 경기와 강원 지역에는 산사태 경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기상청은 30일에도 경기 남부와 강원 영서 남부에 시간당 40㎜ 이상의 매우 강한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천권필·정진호 기자 feeling@joon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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