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헌재, '패킷 감청' 헌법불합치 결정

정대연 기자 입력 2018. 8. 30. 15:33 수정 2018. 8. 3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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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인터넷회선을 오가는 전자신호(패킷)를 중간에 빼내 감청 대상자가 보는 컴퓨터 화면을 수사기관에서도 똑같이 실시간으로 보는 ‘패킷감청’을 가능케 하는 통신비밀보호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범죄수사를 위한 패킷감청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수사기관이 패킷감청을 통해 광범위하게 취득한 통신자료에 대한 통제수단이 현행법상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통신 및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는 취지다.

헌재는 30일 통비법 제5조 제2항 중 인터넷회선 감청에 관한 부분에 대해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통비법은 ‘국가보안법 위반죄 등 해당자가 송·수신하는 특정 우편물이나 전기통신 등을 대상으로 통신제한조치가 허가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해당 법조항은 중대 범죄 수사에 있어서의 법적 공백 우려로 2020년 3월31일까지는 그대로 적용된다. 국회는 그 전에 개선입법을 해야 한다.

헌재는 인터넷회선 패킷감청으로 수사기관이 취득하는 자료가 우편물 검열이나 전기통신 감청 등 다른 ‘통신제한조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는 점을 지적했다. 헌재는 “불특정 다수가 하나의 인터넷회선을 공유해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실제 집행 단계에서는 법원이 허가한 범위를 넘어 피의자·피내사자의 통신자료뿐 아니라 동일한 인터넷회선을 이용하는 불특정 다수인의 통신자료까지 수사기관에 모두 수집·저장된다”며 “따라서 인터넷회선 감청은 집행 및 그 이후에 제3자의 정보나 범죄수사와 무관한 정보까지 수사기관에 의해 수집·보관되고 있지는 않는지, 수사기관이 원래 허가받은 목적·범위 내에서 자료를 이용·처리하고 있는지 등을 감독·통제할 법적 장치가 강하게 요구된다”고 밝혔다.

헌재는 “그런데 현행 통비법은 관련 공무원 등에게 비밀준수의무를 부과하고, 통신제한조치로 취득한 자료의 사용제한을 규정하고 있는 것 외에 수사기관이 감청 집행으로 취득하는 막대한 자료의 처리 절차에 대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특정인의 동향 파악이나 정보수집을 위한 목적으로 수사기관에 의해 남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해당 법조항은 인터넷회선 감청의 특성을 고려해 그 집행 단계나 집행 이후에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통제하고 관련 기본권의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범죄수사 목적을 이유로 인터넷회선 감청을 통신제한조치 허가 대상 중 하나로 정하고 있으므로 침해의 최소성 요건을 충족한다고 할 수 없다”며 “이러한 여건 하에서 인터넷회선의 감청을 허용하는 것은 개인의 통신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게 되므로 해당 법조항으로 인해 달성하려는 공익과 제한되는 사익 사이의 법익 균형성도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밝혔다.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해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헌재는 “오늘날 인터넷 사용이 일상화됨에 따라 국가 및 공공의 안전, 국민의 재산이나 생명·신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행의 저지나 이미 저질러진 범죄수사에 필요한 경우 인터넷 통신망을 이용하는 전기통신에 대한 감청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인터넷회선 감청으로 수사기관은 타인 간 통신 및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에 해당하는 통신자료까지 취득할 수 있게” 되므로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고 관련 기본권 제한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입법적 조치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목사 문모씨는 2016년 3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진보넷 등으로 구성된 ‘공안기구감시네트워크’와 함께 패킷감청을 허용한 통비법 조항이 기본권을 침해하고 헌법상 영장주의, 적법절차원칙 등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이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었다.

국가정보원은 전직 교사인 고 김형근씨의 국보법 위반 혐의 수사를 위해 김씨가 사용하던 휴대전화, 인터넷회선 등에 대해 통신제한조치를 집행하던 중 문씨 명의로 가입된 인터넷회선에 대해 2013년 10월부터 2015년 4월까지 6차례에 걸쳐 패킷감청을 했다. 김씨와 같은 사무실에서 인터넷회선을 함께 썼다는 이유로 문씨에 대한 패킷감청이 이뤄졌다.

앞서 김씨도 2010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국정원이 자신의 명의로 가입된 인터넷회선 및 인터넷전화 통화내역을 감청했다며 2011년 3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하지만 헌재가 5년이나 결정을 미루는 사이 김씨는 지병으로 숨졌다. 2016년 2월 헌재는 청구인이 사망했다며 위헌 여부 판단 없이 심판절차 종료를 선언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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