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테러가 촉발한 이슬람 공포..난민사태로 터졌다

안승진 2018. 8. 3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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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파시즘-난민] 이슬람 혐오의 역사

“이슬람 교리는 대한민국 윤리와 정서에 절대 동화될 수 없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치안센터 앞 난민 반대집회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인천에서 온 난민반대 단체 회원은 이날 “여성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어린 소녀들과 부부관계를 맺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도록 허용하는 이슬람교는 종교를 넘어선 이데올로기”라며 “조혼, 일부다처제, 강간, 테러, 교리를 어기면 태형, 명예살인, 배교시 참수 등 이슬람교 교리는 대한민국의 윤리와 국민정서에 절대 동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집회 참가자인 경기도민 이모(45)씨도 테러의 위험을 들어 “외국을 다니며 무슬림을 겪어본 사람이 많은데 테러 뉴스를 볼 때마다 원인은 무슬림이었다고 한다”며 “무슬림이 모두 테러리스트는 아니지만 테러리스트들은 모두 무슬림”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에 이슬람 공포가 드리웠다. 먼 나라의 종교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이슬람교가 어느덧 공포의 대상으로 변한 것이다.

우리사회는 언제부터 이슬람 공포에 휩싸이게 됐나. 1970년대 중동과 교류를 시작으로 한국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슬람교는 2000년대 이슬람 단체들의 잇단 테러를 시발점으로 공포의 대상이 됐다는 분석이다. 지난 6월 제주난민사태는 이슬람에 대한 각종 루머들을 낳으며 혐오와 공포를 본격화했다.

◆ 보수 종교단체가 촉발한 이슬람 공포

한국에 이슬람교가 알려지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중동과 건설교류가 확산하면서다. 1975년 1차 석유파동 이후 박정희 정권은 중동과 친 아랍 정책을 펼쳤고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이슬람 사원이 세워지며 이슬람교가 차츰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앞에서 열린 난민 찬성, 반대 집회. 뉴시스

이런 분위기는 2000년대 초반 국제사회에 9.11테러 등 이슬람 단체의 테러소식이 전해지며 변모했다. 일부 보수 종교단체는 ‘이슬람 경계론’을 펼치며 국내 이슬람 사원 건설을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는 각종 포럼을 열어 “이슬람권이 한국을 점령하려 하고 있다“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부산, 경기 광주에 이어 인천 남구에 지난 2013년 이슬람 사원이 건설될 예정이었지만 ‘종교 차별’을 이유로 계획이 무산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일부 개신교 단체들은 반대서명 운동을 전개하며 이슬람 사원에 강력 반발했다.

◆ 한국인 김모군 IS 가담…“한국도 테러 안전국이 아니다.”

2015년 한국인 김모(당시 18세)군이 이슬람국가(IS)에 자진 가담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뒤 한국의 이슬람 공포는 커져갔다. 프랑스 파리광장의 테러 소식에 더 이상 한국도 테러 안전국이 아니라는 보도가 잇따랐다. 이같이 이슬람 혐오가 확산하자 서울 이태원에선 400여명의 무슬림이 “나는 무함마드를 사랑합니다” “험담과의 전쟁을 계속하겠습니다”라고 써진 초록 깃발을 들고 거리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난민반대 청원. 청와대 홈페이지

지난 2월 국제적인 행사인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도 경기장 인근인 강원도 강릉에 무슬림 기도실을 설치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종교단체가 모여 이를 저지했다. 당시 기도원 설치를 추진했던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이슬람 기도실 설치는 타 종교단체의 형평성에 대한 항의 전화가 빗발쳐 사실상 계획이 무산됐다”고 전했다.

◆“이슬람 난민, 더 이상 남의 일 아냐” 본격화 이슬람 공포

지난 3월 이슬람 국가 출신 예멘인 500여명이 ‘무사증제도’를 통해 제주 국제공항으로 대거 입국했다는 소식은 국내 이슬람 공포를 본격적으로 확산했다. 이들은 제주도에 머물며 예멘 내전을 이유로 ‘난민신청’을 했고 이슬람 국가 출신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대 여론이 일었다.
지난 2015년 프랑스 파리테러 관련 주요신문 1면 기사. 출처=EPA연합

난민 문제를 안고 있는 서방의 이슬람 관련 루머들도 확산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5년 독일 쾰른에서 발생한 북아프리카, 중동계 남성들의 집단 성폭력 사건이 ‘타하루시’라는 이슬람 문화로 소개되며 국내 여성들의 불안을 키웠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사춘기가 시작되지 않은 여자 아이는 강간·결혼·이혼해도 된다” “이슬람교가 아닌 사람을 죽이면 천국에서 처녀 72명을 상으로 받는다”는 가짜 이슬람 교리를 담은 이미지 파일이 공유됐고 ‘무슬림에게 성폭행당한 유럽 여성들’이란 제목으로 실제 무슬림과 관계없는 가짜뉴스들이 떠돌았다.
지난 6월 청와대 국민게시판에는 “난민법, 무사증입국, 난민신청허가 폐지/개헌 청원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상 가장 많은 71만 4875명의 동의를 받았다. 같은 달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난민 반대 단체와 난민 인권 단체가 맞불집회를 열어 난민 수용에 대한 찬반 여론도 들끓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이슬람 사원.
이 같은 갈등은 최근까지 이어졌다. 지난 19일 이집트 난민신청자들이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가자 난민 찬반단체들은 이곳으로 찾아와 맞불집회를 벌였다. 난민 반대 집회는 5차까지 이어져 내달 1일 서울 광화문에서 집회를 예고했다.

책 ‘우리는 왜 이슬람을 혐오할까?’의 저자 김동문 목사는 “일부 기독교 안에서만 공유되던 이슬람포비아가 확산해 한국사회 전반까지 영향을 미쳤다”며 “우리사회 혐오와 배제 문화와 어우러져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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