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장 경질 부른 가계동향조사 '통계 논란'..가구소득조사 표본 바뀌어도 괜찮나

이유섭,연규욱 2018. 9. 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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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변화 반영안하고 표본 고정시키는건 현실왜곡"
통계 작성을 위한 설문조사를 주기적으로 진행할 때 조사 표본은 달라지면 안 되는 것인가. 표본이 크게 달라졌을 때 시계열 비교를 해도 괜찮은가. 표본 일치가 안 되는 시계열 비교 때 오류 발생 가능성이 크다면 공통 표본이 거의 없는 대통령 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는 매번 틀려야 하는 것 아닌가. 올해 5월과 8월 통계청이 내놓은 1·2분기 가계동향 소득 부문 조사 결과를 놓고 이 같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경제수석과 일자리수석, 최근에는 통계청장까지 교체됐다. 청와대와 여당은 통계청의 잘못된 판단이 지금의 논란을 키웠다고 주장한다. '통계 표본'과 '시계열 비교' 문제 등을 매일경제신문이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첫 번째 쟁점은 조사 표본을 교체해도 되는지다. 통계청은 현실을 보다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일정 비율의 표본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에 논란이 된 가계동향조사는 전체 표본 가구 중 3분의 1을 매해 교체한다. 두 달마다 18분의 1씩 바꾸는 식이다. 고령층 비중 증가, 청년 취업자 수 감소, 제조업 위기 등이 성·지역·연령별로 미치는 영향이 다르기 때문에 표본 교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통계기관에서 똑같이 하고 있는 조사 방식이다.

재작년과 작년 그리고 올해 전체 표본 크기가 8700가구(2016년)→5500가구(2017년)→8000가구(2018년)로 많이 바뀌긴 했다. 그러다 보니 '매해 표본의 3분의 1씩을 교체한다'는 원칙이 제대로 안 지켜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가계금융·복지조사로 가계동향조사를 대체하기로 했던 결정을 현 정부가 번복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유경준 전 통계청장은 "지난해 4분기 조사에서 소득분배 지표가 좋게 나오자 이를 언론에 공개하기로 한 것"이라며 최근 논란의 불씨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4분기 때 1분위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10.2%나 뛰었고, 2분위 소득도 2% 증가했다. 당시 청와대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따른 효과"라고 크게 홍보한 바 있다.

두 번째 쟁점은 표본이 다르면 시계열 비교를 해서는 안 되느냐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표본 추출의 비일관성으로 인해 지난해 1분위 소득과 올해 1분위 소득을 시계열로 분석해 '소득이 크게 줄었다'고 결론짓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다. 오히려 표본을 일치시키면 저소득층 소득이 올라간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2016~2018년 가계동향조사(1분기) 공통 표본만을 놓고 1분위 소득 변화 추이를 분석한 결과 올해 1분위 소득은 107만7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0% 늘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통계청은 표본이 일치하지 않아도 시계열 비교에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공통 표본만 보면 제대로 된 현실을 못 보여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사이에 바뀐 경제사회 변화상을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상영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공통 표본을 사용하는 건 한 가구의 변화를 추적하는 데는 용이하지만 각 분위별 가구의 소득 변화를 파악하는 데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1분위에는 결혼하지 않은 청년 가구가 많은데 이들이 결혼을 하거나 가구원 수가 늘면 상위 분위로 올라갈 수 있고, 5분위 가구 역시 자녀가 결혼하면 가구 분리가 이뤄져 하위 분위로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통령 지지도 여론조사를 예로 들었다. "대통령 지지도 여론조사는 공통 표본이 0에 가까운데 그렇다고 해서 과거 조사와 비교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없지 않으냐"며 "표본 설계 때 공통 표본보다 더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표본이 모집단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박 과장은 "표본 변화가 많다, 적다를 판단하기에 앞서 소득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중요한 경제적 요인을 같이 봐야 한다"며 "소득 조사는 고용 상황과 내수 경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오는 것이지, 이를 무시하고 숫자가 나오는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통계청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구성 자체에 왜곡이 있지 않는 한 표본이라는 건 오차범위를 감안하고 얼마든지 시계열 비교를 할 수 있다"며 "오히려 표본을 일치시키는 게 현실을 더 왜곡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밖에 '올해 조사에서 고령화 가구가 대거 표본으로 유입돼 1분위 가구의 소득이 낮아졌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인구 고령화로 인한 시대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실제 올해 통계청이 면접한 표본 가주 중 고령 가구 비중은 25.3%로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전체 고령 가구 비율인 26.5%와 비슷한 수준이다.

통계청은 가계동향조사 통계 개편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부터 분리한 소득과 지출 부문을 다시 합치는 것이다. 관련 예산도 편성한 상태다. 면접을 통한 설문조사 결과로만 이뤄진 통계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국세청을 비롯한 행정자료를 이용해 보완하는 방식도 검토 중이다. 이에 대해 홍성일 팀장은 "소득 관련 통계를 여러 개 두기보다는 통계청이 한국은행·금융감독원과 함께 국세청 납세자료를 활용해 전국 2만가구의 연간 자산과 부채 현황까지 확인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로 일원화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고 제안했다.

사실 앞으로도 분기에 한 번씩 가계소득과 관련한 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최저임금을 포함한 소득 주도 성장 정책에 대한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청와대와 민주당을 비롯한 여당은 그전까지 어떻게든 통계청 조사 방식에 물음표를 달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전직 통계청장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더 이상 통계청의 독립성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유경준 전 청장은 "이번 통계 사태는 과거에 결정된 사안을 고민 없이 조급하게 번복하면서 벌어진 일"이라며 "또 다른 소득조사 지표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통계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아전인수 격으로 확대 해석될 가능성만 높아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전 청장은 "통계가 특정 목적에 의해 좌지우지되면 정책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며 "통계청의 독립성·중립성·전문성에 대한 제고가 필요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번 논란이 우리나라에서 소득·소비 조사를 체계화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통계청이 움츠러드는 사건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작년 9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는 412개 기관이 국가통계 1061종을 작성하고 있다. 이 중 가장 공신력 있는 기관이 통계청이다. 여기서 나오는 통계 중 60종(작년 말 기준)이 정책적으로 활용된다. 2009년 그리스는 정부가 재정적자 규모 통계를 축소 발표한 게 뒤늦게 밝혀져 국가부도 사태를 가속화하기도 했다.

[이유섭 기자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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