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여 명 숨진 형제복지원 사건..'비상상고' 여부 주목
[앵커]
1980년대 부랑인을 단속한다며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끌고 가 끔찍한 폭행과 노동 착취를 한 사건. 바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입니다. 영문도 모른 채 잡혀간 사람들 중 이곳에서 숨진 사람만 500명이 넘습니다. 그런데도 과거 우리 법원은 이곳이 적법한 시설이라고 판단해 복지원 원장에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는데 그쳤습니다 30년 만에 이를 다시 판단할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번주 이뤄집니다.
[기자]
도와달라는 구호는 바람과 비에 지워졌습니다.
국회 앞 농성을 시작한 지 300일째.
마음에 남은 상처와 사연은 설명하기조차 힘듭니다.
그저 앉아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다리고,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칩니다.
거짓말같은 폭력과 공포도 36년 전 무심히 찾아왔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최승우/당시 14살 : "순경이 저를 보고 딱 쳐다보더니만 '너 이리로 와봐, 인마'"]
가방에 든 빵이 "훔친 게 아니냐"고 했고, 그 길로 끌려갔습니다.
그 순간은 인생을 바꿨습니다.
[최승우/당시 14살 : "소대장이 와서 저를 성폭행했죠. '아저씨 말 잘 들으면 집에 보내줄 테니까…'"]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최승우/당시 14살 : "사람을 막 몽둥이로 패면서 질질질 끌고 오더라고요. 그 분 눈을 봤는데 눈이 하얗더라고"]
복지원에 있던 3천명 모두, 다르고도 비슷한 사연을 가졌습니다.
가난한 9살 아이는 2살 위 누나와 끌려왔습니다.
[한종석/당시 9살 : "내 보는 앞에서 누나를 질근질근 밟죠. 내가 울고불고하면 나도 그 자리에서 두들겨 맞죠."]
아이에게는 죄수번호가 붙었고 죄목은 '부랑아'였습니다.
1981년 전두환씨가 '부랑아 단속'을 지시하면서 강제수용은 시작됐습니다.
승진 점수와 보조금을 줬고, 공무원들은 가난한 아이들을 아무렇게나 잡아들였습니다.
[한종선/당시 9살 : "조작이 들어간 거죠. 부랑인으로 만들어야지 자기들 평점이 올라 가겠죠"]
상처는 질기고 오래 남았습니다.
[최승우/당시 14살 : "동생은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2009년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1987년 검찰 수사가 시작되고 복지원은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감금은 법령에 따른 정당한 직무행위'라는 것이 당시 법원 판단이었습니다.
[김용원/1987년 수사검사 : "대구고등법원에서 두 번씩이나 유죄라고 판결했는데도 무죄를 대법원이 고집했던 거죠"]
검찰개혁위원회는 오는 수요일, 검찰총장에게 이 사건 '비상 상고'를 권고할지 결정합니다.
총장이 대법원에 직접 '사건을 다시 판단해달라'고 요청하는 제도입니다.
피해자들은 다시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한종선/당시 9살 : "그래도 미안하다라는 말이라도 좀 해주면 용서해보려고 시도는 해볼 것 아니에요,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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