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 & deep] 올해 없애려던 '가계동향조사' 되살리면서 탈났다
조사 정밀도 높이기 위해 통계청, 표본 ‘업그레이드’
소득이 낮은 고령자가구 대거 새로운 표본으로 포함
분배 지표 악화로 나타나 소득주도성장 실패론 제기
통계청이 가계의 소득 상황을 파악해 발표하는 ‘가계동향조사(소득 부문) 통계’가 극심한 혼란을 빚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성과를 가늠할 지표로 여겨졌는데, 어느새 천덕꾸러기 신세다.
정부의 변덕으로 올해 폐지 예정이었던 가계동향조사가 되살아나면서 통계 표본은 롤러코스터를 탔고, 이는 올해 통계를 과거 통계와 비교하는 게 적절하냐는 시비로 이어졌다. 급기야 정부는 2020년까지 가계동향조사를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왜 가계동향조사는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을까.
“X레이만 찍고 MRI는 안 찍느냐”
최근 3년간 가계동향조사에는 사연이 많다. 기존에 통계청은 약 8700가구를 표본으로 추출해 각 가구의 소득을 조사했다. 가구마다 5만원 상품권을 주고 36개월간 작성한 가계부를 매월 받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고소득자들은 고작 5만원 상품권에 소득이 낱낱이 공개되는 걸 꺼렸다. 이 때문에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있느냐는 물음표가 붙었다.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통계청은 2018년부터 가계동향조사를 폐지키로 결정했다. 대신 연간 주기로 발표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로 대체하기로 했다. 이 방침에 따라 지난해 가계동향조사는 정부부처와 연구자 참고용으로 한시 운영됐다. 표본 수는 5500가구로 줄었고, 가계부 조사방식 대신 면접조사 방식을 썼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 반전이 일어났다. 소득주도성장을 기치로 내건 정부는 가계동향조사를 통해 ‘정책 효과’를 분기별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2일 “각 부처와 학계에서 연간 단위로 뒤늦게 공표되는 가계금융복지조사만으로 부족하다고 지적, 가계동향조사를 유지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X레이만 찍고 MRI는 안 찍을 것이냐는 얘기들이 나왔다”고 전했다.
상황이 달라지면서 예산을 심의하던 더불어민주당은 통계청이 요청하지도 않은 ‘가계동향조사 예산 28억5300만원’을 올해 예산에 끼워 넣었다. 급기야 지난 2월 발표된 ‘2017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의 명목소득이 월평균 10.2% 증가했다는 수치가 나오자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라고 홍보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통계”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석 달 만에 찾아온 ‘부메랑’
정부의 환호성은 불과 석 달 만에 부메랑이 됐다. 올해 가계동향조사를 시작하면서 통계청은 표본을 ‘업그레이드’했다. 가구 비중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모(母)집단을 2010년 인구총조사에서 2015년 인구총조사로 바꾸고 표본은 8000가구로 늘렸다. 조사 정밀도를 높이자는 차원이었다.
그런데 고령화 추세에 맞춰 고령자 가구가 대거 새로운 표본으로 포함됐다. 소득이 낮은 고령자 가구의 추가 편입은 올해 1∼2분기 소득분배 지표의 악화를 불러왔다. 가계동향조사가 되레 소득주도성장 실패의 근거로 돌변한 것이다.
전문가들이 가세하면서 논란은 증폭됐다. 올해 조사에서 표본을 대거 교체했기 때문에 지난해 통계와 단순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노동연구원 홍민기 선임연구위원은 ‘가계동향조사 2018년 자료의 특성’ 보고서에서 “고소득 가구 대신 저소득 가구를 많이 포함시킨 게 소득 대표성을 높이는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꼬집었다. 고려대 이우진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달 30일 열린 토론회에서 “2017년과 2018년 모두조사에 응했던 가구만 따로 떼어내 분석해 보니 지난해 1분위에 있던 가구의 소득은 되레 늘었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통계 논란’ 종식될까
통계청도 일부 한계를 인정한다. 올해 조사에서 표본을 많이 바꿨기 때문에 전년도 같은 시점과 비교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참고자료를 내기도 했다. 다만 가계동향조사의 시계열 비교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통계청 박상영 복지통계과장은 “1분위에 속하는 고령자 가구가 늘고 있고, 이런 영향에 따라 소득 하위 20%의 소득이 전반적 감소세라고 말하기에 부족함 없는 통계”라고 했다. 박 과장은 이 교수의 주장에 대해 “지난해 1분위에 속했던 가구가 올해 어떻게 됐는지를 살펴보는 것, 지난해 하위 20%와 올해 하위 20% 가구 소득을 비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접근법”이라며 “가계동향조사는 후자를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갑론을박 와중에 청와대는 통계청장을 교체했다. 불 난 곳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다.
걷잡을 수 없이 논란이 커지자 통계청은 대대적인 가계동향조사 개편을 추진 중이다. 내년에 배정된 예산은 159억4100만원으로 올해 예산의 5배가 넘는다. 통계청은 현재 분리돼 있는 소득 부문과 지출 부문 조사를 통합하고 표본 확대, 조사방식 개편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하지만 새로운 가계동향조사 결과는 2020년부터 공표된다. 개편된 가계동향조사의 시계열 통계가 어느 정도 쌓일 때까지 논쟁이 반복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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