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m 거리 '폐업정리'만 19곳.."월세 100만원 낮춰도 안와"

박대의,이희수 2018. 9. 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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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종각 등 도심 한복판 폐업 실태

◆ 폐업공포에 떠는 자영업 ◆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시장사거리에 위치한 빌딩 곳곳이 1층 전체가 공실인 상태로 쇠사슬에 묶인 채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 [한주형 기자]
3일 서울 영등포구 한 아파트단지 상가동은 한눈에 둘러봐도 비어 있는 가게가 상당했다. 지난해 말 아파트 입주가 시작돼 입주가 완료됐지만 상가는 여전히 텅 비어 있다. 외부인이 쉽게 발을 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일부 입점한 가게는 대부분 공인중개사 사무실로,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점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한 부동산 업자는 "신규 아파트나 주상복합 상가는 보통 2년까지는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아 두고 보고 있다"면서도 "집값은 한 번 오를 때 천(만원) 단위로 올라가는데, 상가는 억(원) 단위로 내려도 매물이 안 나간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대로변에 위치한 건물 1층에서도 '임대 문의'가 적힌 플래카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때 금싸라기 땅으로 불렸던 곳이지만 현재 공실인 곳 중 대부분은 1년 넘게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다.

대로 인근 상가에서 5년째 의류매장을 운영해 온 이 모씨(45)도 임대계약이 끝나는 이달 말을 끝으로 가게를 접기로 했다. 지하철역 입구 인근에 자리 잡으면서 개업 당시만 해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어오기만 해도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가게를 운영해 왔지만 줄어드는 발길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날 가게 유리창에는 '폐업정리' '한 장에 1만원' 등 문구가 행인들 눈에 띄는 곳에 붙어 있었지만 가게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이씨는 "출근하는 게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에 빨리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이전하려 한다"며 "경기가 워낙 안 좋아서 가게를 옮긴다고 장사가 될지는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자영업자들은 가장 큰 문제가 높은 임차료에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 상권이 죽어가면서 손님들 발길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임차료를 감당할 만큼 장사가 안 되기 때문에 소상공인들이 떠나고 있다는 얘기다.

종각 일대 상권은 상인들 이탈에도 불구하고 높은 임대료가 꾸준히 유지돼왔던 곳이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종각역 상권의 임대료 상승률은 38.4%로 서울 시내 27개 상권 중 가장 높았다. 높은 임대료를 낼 능력이 안 되는 자영업자들에 이어 대기업 직영 프랜차이즈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으면서 대로변 공실 상황은 장기화하고 있다.

상권이 시름시름 죽어가자 최근 들어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낮추면서 지역 전반적으로 월세가 내려가고 있다. 한국감정원 임대가격지수에서 지난 2분기 서울 종로구는 99.2를 기록했다. 임대가격지수는 지난해 4분기를 100으로 두고 변동을 나타낸다. 공인중개사 이 모씨(44)는 "건물주들이 자발적으로 임대료 인하에 나서면서 작년보다 30% 이상 낮아졌다"며 "대로 주변 상가 임대료는 상권 부흥기에 형성된 가격이 꾸준히 유지돼왔지만 공실 상황이 길어지면서 변화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미 돌아선 자영업자들을 되돌리기에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음식점 사장 김 모씨(43)는 "경기가 안 좋고 직장인들 퇴근시간이 빨라지면서 저녁 손님이 크게 줄었다"며 "임대료가 내려가는 추세라지만 장사가 안 되니 그마저도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영등포 한 신축 상가는 지난 3~5월 1년간 임대료를 받지 않는 '렌트 프리'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임대료를 내려도 공실이 메워지지 않자 임차인을 끌어모으기 위해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월세를 100만원 낮춰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며 "자영업에 뛰어들려는 시도조차 안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역 상인들은 상권을 되살릴 수 있는 방안 모색에 공동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로수길, 압구정로데오 등 한때 쇠락 상권으로 꼽히던 지역 건물주들이 최근 임대료 인하와 더불어 개성 있는 신규 점포 입점자 모집에 나서는 등 상권 부흥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에 비해 종각 일대 건물들은 상인 유치를 위한 뚜렷한 매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인근 지역 공인중개사 최 모씨(46)는 "종로구청 인근과 익선동 지역으로 손님들이 쏠리면서 이미 새로운 상권이 형성됐다"며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도넛 가운데 난 구멍처럼 종각은 텅 비고 주변 지역으로만 상권이 퍼질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으니까 위치가 괜찮은 시장 대로변 가게도 계약이 안 된다"며 "도시환경정비사업이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지역은 가게들이 망하면서 이미 슬럼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대의 기자 /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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