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알쓸신세]방에 틀어박힌채 늙은 그들..'중년 히키코모리' 된 日 40대

이영희 2018. 9. 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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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취업 실패로 시작된 히키코모리, 이젠 40,50대
"내가 세상 뜨면 아들은 굶어 죽을 것" 80대 노모의 절규
일본 드라마 '집을 파는 여자'의 한 장면. [사진 채널W 방송 캡처]


[알쓸신세]골방에 틀어박힌 지 20년 째..경제 불황이 만들어낸 ‘중년 히키코모리

‘집을 파는 여자(家売るオンナ·2016)’라는 일본 드라마가 있습니다. “내가 팔 지 못하는 집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천재 부동산 중개업자 산겐야 마치(三軒家万智) 주임의 활약상을 그린 이야기죠. 드라마 2화에서 산겐야는 2층 짜리 단독 주택을 팔고 싶어하는 60대 부부를 찾아갑니다. 분명 부부 단 둘이 산다고 했는데, 비어있는 2층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려오죠. “아, 자동 세정 기능이 있어서….” 노부부는 얼버무리지만, 산겐야는 이 집에 감춰진 비밀을 눈치챕니다.

2층의 구석 방, 스물 몇 살에 회사를 그만두고 20년 넘게 방 안에 틀어박힌 40대 아들이 살고 있었던 거죠. 바로 요즘 일본의 새로운 사회 문제로 주목 받고 있는 ‘중년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입니다. 자신들이 죽고 나면 아들은 어쩌나 걱정하던 부부는 5000만 엔(약 5억원)대의 집을 팔아 작은 집으로 옮긴 후, 남는 돈을 아들의 노후 자금으로 주려 결심한 겁니다.

사정을 알게 된 산겐야는 아들을 방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화재 경보기를 울리고, 혼비백산해 1층으로 뛰어 내려온 아들을 본 부모는 깜짝 놀랍니다.
“20년 만에 아들을 봤어요. 저렇게 늙었다니.”
일본 드라마 '집을 파는 여자'의 한 장면. [사진 채널W 방송화면 캡처]


방에 틀어박힌 채 늙어버린 사람들
이번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에서는 이들의 닫힌 방문을 두드려보려 합니다.

‘히키코모리’라는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일본어로 ‘틀어박히다’라는 뜻의 ‘히키코모루(引き籠もる)’에서 온 말로 한국어로는 ‘은둔형 외톨이’라 번역합니다. 일본 후생노동성 정의에 따르면 ‘직장에도 학교에도 가지 않고, 가족 이외의 사람과는 거의 교류하지 않으며, 6개월 이상 계속해서 자택에 갇혀 지내는 상태의 사람들’을 일컫는데 1990년대 일본에서 등장한 신조어였습니다. 일본의 특수한 사회상을 보여주는 단어로 2000년 옥스포드 영어사전에도 등재됐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은둔형 외톨이. 사진은 연출한 것임. [중앙포토]
그동안 일본에서 히키코모리는 ‘청소년’ 혹은 ‘청년 세대’ 문제로 다뤄졌습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취업에 실패한 후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젊은이를 연상시키는 말이었죠. 하지만 90년대 방 안으로 들어간 이들이 그 안에서 조용히 나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잊고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5년 단위로 발표하는 히키코모리 관련 조사에 따르면 2010년 70만 명이었던 히키코모리의 수는 2015년엔 54만 명으로 대폭 줄었습니다. 하지만 이 통계가 발표된 후 전국 각지의 관련 단체들이 조사의 ‘허점’을 지적합니다. 정부 집계 대상이 ‘15~39세’로 한정돼 40세가 넘는 대다수 히키코모리들의 실태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2015년 조사 당시 35세 이상 히키코모리의 수는 전체의 4분의 1 정도.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40대가 되어 집계에서 빠졌을 겁니다. 히키코모리 지원단체인 ‘KHJ 전국 히키코모리 가족 연합회’가 실시한 지난 해 전국 조사에서 히키코모리의 평균 연령은 34.4세로, 5년 전보다 4세 이상 높아졌고요. 이 중 29.2%가 40세 이상으로 나타났습니다. 40대 이상까지 포함하면 일본 내 히키코모리의 수는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50대 자녀 돌보는 80대 부모, ‘8050문제’
히키코모리의 장기화, 고령화가 불러온 위기는 심각합니다. 부모가 경제 활동을 하는 동안은 자녀가 집에만 틀어박힌다 해도 기본적인 생계 유지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히키코모리들이 40~50대가 되면, 부모는 70~80대가 됩니다. 수입은 끊어지고, 건강은 악화되죠. 그런데도 ‘가족이 함께 살고 있다’는 이유로 국가 지원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 하에서 부모와 자식이 모두 사회로부터 고립돼 ‘공멸’로 이어지는 위기를 일본에서는 요즘 ‘8050문제’라고 부릅니다.

2015년, 나라(奈良)현의 한 가정집에서 81세 여성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영양실조로 인한 쇠약사였지만 한동안 누구도 그의 죽음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이웃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처음엔 홀로 사는 노인의 ‘고독사’로 생각했죠. 하지만 집 안에는 20년 넘게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56세의 히키코모리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쓰레기 더미 속에 어머니의 시신을 방치한 채, 부모의 연금을 받으며 생활해 왔습니다.

2016년에는 니가타(新潟)에서는 70대 어머니가 50대의 히키코모리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더 이상 아들을 챙길 사람이 없다’는 절망이 빚어낸 비극이었죠.
후쿠오카현 카스가시의 히키코모리 상담 창구. [사진 카스가시]
일본 지자체나 시민단체가 마련한 히키코모리 상담 창구에는 요즘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부모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도쿄(東京)에서 열린 ‘KHJ 전국 히키코모리 가족 연합회’ 전국대회에 참가한 86세의 남성은 “여생이 3~4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꼭 히키코모리 아들 문제를 해결하고 저 세상에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의 장남은 올해 47세로, 1989년 대학 진학에 실패한 후 30년 가까이 집에만 머물고 있습니다. 이제 퇴직금 마저 바닥이 난 아버지의 고민은 깊습니다. “사회 경험도 없는 40대 후반을 어느 회사가 고용하려 하겠습니까. 이대로 라면 부자가 함께 파탄하는 것밖에 남은 게 없습니다.”


게을러서?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그늘
그런데 이들은 애초에 왜 방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을까요. 히키코모리 현상을 두고 일각에선 개인의 유약함이나 게으름을 지적하곤 합니다. 하지만 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틀어박히게 된 계기는 ‘질병’ 외에 ‘취업이 안 돼서’ ‘직장 적응이 힘들어서’가 대다수였습니다.

지난 5월 요미우리 신문에 소개된 46세의 히키코모리 남성. 그는 80대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된 것은 20년 전, 취업 활동 중에 좌절을 맛본 게 이유였습니다. 유명 사립대를 졸업해 취업 시장에 뛰어든 것은 일본 경제 불황이 깊어질 무렵. 방송국이나 광고 회사 등 20개 넘는 회사에 원서를 냈지만 떨어지고 가까스로 중견 증권사에 입사합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고, ‘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사표를 던졌죠. 그러나 이후 재취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일본 청년 실업 문제를 파헤친 책 『무업사회』에 따르면, 1993년 ‘버블 경제’가 붕괴되고 경제가 장기 침체에 들어가면서 일본의 고용 형태는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1984년 15.3%였던 비정규직 비율이 2014년엔 37.4%까지 늘어난 것이 대표적이죠. 1990년대 후반,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찾기 힘든 ‘취업 빙하기’가 찾아왔고, 젊은 층(20~24세)의 실업률은 10%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프리터’(아르바이트만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 ‘니트(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 등의 말이 생겨난 것이 바로 이 시기입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현재 30대 후반~40대의 중년 히키코모리들은 이 시기 사회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의 일원이었습니다. 경제적 기반이 탄탄하지 못한 탓에 좀처럼 독립을 하지 못하고, 부모님의 경제력에 의지해 살았습니다.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지나며 방을 나올 기회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한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기 힘든 사회’가 탄생시킨 ‘문제 중년’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40대는 일본에서 ‘가장 가난한 세대’입니다. 국민생활기초조사에 따르면 40대 세대주 세대의 평균 소득은 1995년에 약 753만 엔(약 7560만 원)이었지만, 2015년에는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687만 엔(약 6898만 원)으로 줄었습니다. 부모와 동거하는 40~50대 미혼자의 수는 1995년 113만 명이었다가, 2015년에는 3배인 340만 명으로 늘어납니다.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한 포괄적 지원을

중장년 히키코모리 문제가 연일 터져나오자 일본 정부는 뒤늦게 실태 조사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오는 11월부터 40~64세 히키코모리 5000명을 대상으로 생활 환경을 조사하고,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한 겁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대책은 ‘취업 알선’을 중심으로 하는 청년층 히키코모리 지원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중년 히키코모리는 이미 은둔의 장기화로 신규 취업이 극도로 어려워진 데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경제적 지원과 함께 건강 관리, 가족 내 갈등 등을 복합적으로 케어하는 포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KHJ 전국 히키코모리 가족 연합회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사진 KHJ전국 히키코모리 가족 연합회 홈페이지]
아이치(愛知)교육대 가와키타 미노루(川北稔) 교수는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히키코모리 본인이나 가족의 연령이 높아지면 문제는 복합적이 된다”면서 “방 안의 사람들을 집 밖으로 나오도록 하는데 집착하지 말고, 우선은 가족의 사회적 고립이 심각해지지 않도록 장기간 꾸준한 상담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무엇보다 히키코모리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사회가 만들어 낸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급선무일 테죠.

잠시 시선을 안으로 돌려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7월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9.3%, 청년 실업자 수는 40만 9000명에 달합니다. 구직 활동에서 배제된 청년 니트족이 178만명에 달할 것이란 통계도 있습니다. 우리의 20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요. 중년 히키코모리 문제를 그저 외국 드라마 속 이야기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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