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文특사 중재안 "비핵화 초기조치 약속하면 종전선언"

정효식.유지혜 2018. 9. 4.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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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사단 내일 방북, 김정은 설득
구두 약속 받아내기 위해 총력
소식통 "한국 제안 미국도 긍정적"
미국, 기존 입장에서 양보한 셈

문재인 정부가 북·미 간 비핵화 협상 교착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선(先) 종전선언 채택, 후(後) 비핵화 조치 이행’ 중재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5일 평양을 찾을 대북특사단은 이런 여건 조성을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핵시설 신고 등 비핵화 초기 조치에 대한 ‘구두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주력할 전망이다.

서울과 워싱턴에 있는 복수의 외교소식통은 3일 “김 위원장이 구체적인 기한을 정해 비핵화 초기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할 경우 3자 또는 4자 정상이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하자는 한국의 중재안에 최근 미국도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의 중재안을 미국이 수용하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그동안 종전선언보다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가 먼저라는 입장을 유지해 온 미국으로선 일종의 양보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북특사단이 평양에 들고 가는 것도 이 중재안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초기 조치 구두 약속→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9월 중순)→3자 또는 4자 간 종전선언(9월 하순 유엔 총회)→북한의 비핵화 초기 조치 이행이 주된 골자다.

그간 북·미는 종전선언 문제를 두고 맞서 왔다. 북한은 미군 유해 송환 등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을 이행했다며 미국이 종전선언 약속을 이행할 차례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미국은 유해 송환 등을 평가하면서도 이는 비핵화와 직접 연결되는 조치가 아니라며 실질적 비핵화 행동을 요구했다. 북한이 보유한 핵물질과 핵무기 현황, 핵시설,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는 게 미국이 원한 초기 조치였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달 24일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국이 종전선언부터 하기 전에는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외교 소식통은 “김영철의 서한에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유해 송환 등 자신들만 이렇게 많은 조치를 하고 미국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데 대한 깊은 불만이 깔렸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을 곧바로 취소하면서 북·미 간 비핵화 협상도 중대 기로에 놓였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한국이 중재안을 마련해 북·미 동시 설득에 나선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한반도의 평화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가는 것”이라며 “지금은 한반도 평화 정착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며 북한에 특사단을 파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소식통들은 또 “지난번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남북이 9월 중으로 합의한 평양 정상회담 개최 일정도 김 위원장의 비핵화 관련 결심과 연동돼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북, 중재안 거부 땐 남북 정상회담 불투명

김 위원장이 비핵화와 관련해 진전된 조치를 취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 명확해진다면 아무리 남북관계 개선에 중점을 두는 문재인 정부라도 평양 정상회담을 그대로 진행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3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특사단이) 문 대통령의 가을 평양 방문 일정을 확정하고 오기를 기대한다”며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조기 방북과 북·미 간 비핵화 대화의 진전을 위한 마중물 역할도 충실히 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사단의 미션이 남북 정상회담 관련 사항 조율뿐 아니라 북·미 간 갈등 해소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정부는 이 같은 새로운 내용의 ‘빅 딜’을 중재하는 동시에 종전선언에 한 번 서명하면 되돌릴 수 없는 게 아니냐는 미국 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구체적인 종전선언 문안에 대한 내부 논의도 진행 중이다. 미국은 종전선언을 할 경우 한반도 연합방위태세뿐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할 군사력 유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정부의 승부수가 먹힐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방북 특사단 면담과 정부의 대북 제안 수용 모두가 김 위원장의 ‘결단’에 달려 있어서다.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북한이 그동안 종전선언을 강하게 요구해 왔고, 폼페이오 장관 방북 취소 이후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특사단의 중재안을 북한이 어떤 형태로든 수용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중재안을 받아들이는 구두약속을 해도 미국 정부 안팎의 반응이 2차 난제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미국 내에선 폼페이오 장관의 지난 7월 3차 방북 이후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회의론이 부쩍 커진 상황이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종전선언과 핵 동결 또는 핵 리스트 신고서 제출 등 비핵화 조치를 맞교환하는 것은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안”이라며 “다만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회의론이 매우 큰 상황에서 종전선언 이후 북한이 핵물질 보유량, 비밀 핵시설 신고 등 미국의 눈높이에 맞는 핵 신고를 할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칫 북한이 부실한 신고를 할 경우 북한 비핵화 의지에 대한 ‘진실의 순간’이 몇 달 연기되는 결과만 초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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