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강제징용 재판 뒤집으려..대법원규칙 '1달새 3차례' 고쳐

2018. 9. 4. 06:2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2015년 1월 양승태 대법원 내부에서 '민사소송규칙' 개정을 두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그해 1월6일 대법원은 민사소송규칙 신설안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대법원 근무 경험이 있는 다른 판사는 "소송규칙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라 개정 전 충분히 검토한다. 핵심 내용이 바뀌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위에서 '하달'된 규칙안을 치밀한 검토 없이 추진하다 헛발질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재판 때 '외교부 의견서' 받으려..
입법예고선 "대법 요구하면 제출"
3주 뒤 관보엔 "이해관계자 제출"
이틀 뒤 확정안은 "공익 땐 제출"

[한겨레]

2016년 1월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박 전 대통령과 양 전 대법원장이 건배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5년 1월 양승태 대법원 내부에서 ‘민사소송규칙’ 개정을 두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입법예고한 내용과 판이한 규칙이 관보에 실리더니, 불과 이틀 만에 완전히 새로운 내용으로 규칙이 또 바뀐 것이다. 대법원 규칙이 이렇게 ‘누더기’가 된 데는, 이 규칙이 일제 강제징용 사건 재판을 ‘날려버릴’ 뇌관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해 1월6일 대법원은 민사소송규칙 신설안을 입법예고했다. ‘대법원은 소송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국가기관 또는 공공단체, 기타 이해관계자에게 의견을 제출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상고심 심리 충실화”라는 설명이 붙었다.

2주간의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같은 달 28일 관보에 게재(시행)된 규칙은 입법예고안과는 핵심 문구와 표현에서 큰 차이가 났다. ‘상고심 재판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기관과 지자체는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고, 대법원은 의견서를 제출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관보 게재 불과 이틀 뒤 “오류가 있었다”며 양승태 대법원장 명의로 규칙을 긴급 수정했다. 최종 확정된 규칙은 ‘국가기관과 지자체는 공익 관련 사항에 관해 대법원에 재판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고, 대법원은 의견서를 제출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긴급 땜질’로 완성된 규칙은 이후 외교부가 일제 강제징용 사건 대법원 재판에 “한-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대외신인도가 손상될 것”이라는 ‘의견서’를 제출하는 통로를 활짝 열어줬다. 애초 입법예고안을 따랐다면, 외교부는 대법원 요청이 없으면 의견서를 제출할 수 없었다. 대법원이 ‘이해관계가 없는’ 외교부에 먼저 의견 제출을 요구할 명분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관보에 실린 규칙을 따랐더라도 징용 피해자와 일본 전범기업 사이 민사소송에 한국 정부(외교부)의 이해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의 지배적 해석이다.

‘양승태 긴급 수정안’은 달랐다. 이해관계가 없어도 ‘공익 사항’이기만 하면 정부가 대법원 재판에 의견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판사는 3일 “공익의 범위는 추상적이다. ‘국익’ ‘외교관계’ 등을 명분으로 정부가 개인 간 소송에 개입할 방편을 마련해준 셈”이라고 짚었다. 실제 외교부 의견서라는 ‘새로운 쟁점’이 생긴 뒤 대법원 재판은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대법원 규칙은 보통 법원행정처 검토를 거쳐 대법관 전원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확정된다. 한달 사이에 핵심 내용이 ‘조변석개’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에 대법원은 “대법관회의(1월23일)에서 수정의결된 부분을 간과하고 관보에 착오로 잘못 기재돼 수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법원 근무 경험이 있는 다른 판사는 “소송규칙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라 개정 전 충분히 검토한다. 핵심 내용이 바뀌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위에서 ‘하달’된 규칙안을 치밀한 검토 없이 추진하다 헛발질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