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헌재 "불복절차 없는 DNA 채취는 위헌..국회 법 개정해야"

이혜리 기자 입력 2018.09.04. 10:55 수정 2018.09.0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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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법원이 DNA 채취 영장을 발부하거나, 검찰이 DNA 채취를 할 때 채취 대상자로부터 의견을 듣거나 불복하는 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했다. 한번 DNA 채취를 당하면 죽을 때까지 수사기관 자료로 활용되는데 최소한의 의견 진술도 못하게 하는 것은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취지의 판단이다.

2011년 4월7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용산 철거민에 대한 DNA 채취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창길 기자

헌재는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 제8조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 사건에서 이 조항이 헌법불합치라고 결정했다고 4일 밝혔다. 헌법불합치는 위헌 결정으로 해당 법률을 바로 무효화하면 법의 공백이 생기거나 사회적 혼란이 우려될 때 국회에 시한을 주고 법 개정을 유도하는 것이다. 국회는 이 조항을 2019년 12월31일까지 개정해야 된다.

금속노조 KEC지회 노동자들은 2010년 직장폐쇄로 출입금지된 구미 공장을 점거했다가 타인의 건조물에 침입했다는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DNA법에 따르면 검사는 유죄 확정 판결을 받거나 구속된 피의자 등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DNA 감식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이 인권침해라며 반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DNA법 제 8조 8항에 “DNA 감식시료를 채취할 때는 채취 대상자에게 미리 DNA 감식시료의 채취 이유, 채취할 시료의 종류 및 방법을 고지해야 한다”고 돼있긴 하지만,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고 검사가 채취를 하는 과정에서 채취 대상자의 의견을 듣거나 불복하는 절차에 대한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이같은 DNA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이 조항이 채취 대상자들의 헌법상 재판청구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DNA 감식시료를 채취당한 대상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망 시까지 자신의 DNA 신원확인정보가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돼 범죄수사 내지 예방의 용도로 이용되는 것을 수인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며 “신체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을 제한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그러나 이 조항이 DNA 감식시료채취영장 발부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절차적으로 보장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발부 후 그 영장 발부에 대하여 불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거나 채취행위의 위법성 확인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구제절차를 마련하고 있지 않다”며 “채취 대상자의 재판청구권은 형해화되고 채취대상자는 범죄수사 내지 예방의 객체로만 취급받게 된다”고 했다. 헌재는 “이 조항은 채취 대상자인 청구인들의 재판청구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므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다만 김창종·안창호·조용호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은 “DNA 감식시료를 채취하는 것은 형사처벌에 추가해 법적 제재를 부과하는 의미”라며 “DNA법을 보면 먼저 채취대상자에게 채취를 거부할 수 있음을 고지해 서면으로 동의를 받아야 하고, 동의를 받지 못한 경우 법관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DNA 감식시료를 채취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채취 대상자의 의견 진술 절차가 봉쇄돼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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