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우군'마저도 등돌린 교육부, 여론 좇다 여론에 버림받다

윤석만 2018. 9. 4.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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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3일 오전 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차려진 서울 영등포구 교육시설재난공제회로 출근하며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뭘 해야 할지 몰라 앞이 캄캄합니다. 얼마 전 세종시에서 만난 교육부 고위 관계자의 말입니다. 그는 “교육부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참담한 심경이다,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김상곤 장관이 대입 공론화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물러나게 된 것도 모자라 신임 장관 후보자인 유은혜 의원마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에서 퇴진 운동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교육부가 이런 상황에 놓인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교육부만 그 이유를 모르고 있고, 그 밖의 교사와 학생·학부모는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혼란의 시작은 지난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취임한지 얼마 안 된 김 장관은 2021학년도부터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합니다. 본인의 소신이기도 했고 이미 지난 정부에서 짜놓은 장기계획에 따른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공정성이 문제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수능의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했죠.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하고 있던 여당도 김 장관을 압박했습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연합뉴스]
결국 교육부는 대입개편안 발표를 1년 유예합니다. 그러면서 도입된 것이 공론화입니다. 그러나 공론화 과정 또한 순탄치 않았습니다. 교육부에서 시작해 ‘국가교육회의 → 대입제도특위 → 공론화위 → 시민참여단’으로 이어지는 ‘4중 하도급’ 구조부터 비판의 도마에 올랐죠. 특히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놓고 오차범위에 있던 두 가지 안 중 상대평가로 유지하는 방안이 최종적으로 선택되자 진보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졌습니다.
급기야 공론화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까지 공격받기 시작했습니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공론화의 전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불공정한 상황이 계속 방치됐다”며 “시민참여단의 민의를 왜곡한 잘못된 권고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사걱세를 비롯한 여러 교육시민단체는 곧바로 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사실 현 정부 교육정책의 가장 큰 우군이었던 시민단체가 등을 돌린 것입니다.
김영란 대입개편 공론화위원회 위원장. [중앙포토]
그렇다 보니 교육부로선 자신을 지지해주는 이가 하나도 없게 됐습니다. 여당도 마찬가집니다. 지난 3월 대입개편 공론화가 시작되기 직전 더불어민주당의 초·재선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 정책연구소는 수능과 내신으로만 대학생을 선발하는 방안을 내놨습니다. 교육부가 추진해온 입시 개편 방향과 정반대되는 것이었죠. 앞서 지난 1월 김 장관이 유치원 방과후 영어금지 정책을 발표하려 할 때도 여당이 먼저 제동을 걸었습니다. 당시 간사였던 유은혜 의원은 “국민에게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시행 유보를 건의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교육부가 주요 정책마다 오락가락하며 혼란을 빚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그 뒤에는 항상 ‘여론’을 구실 삼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대입개편안을 미룬 것도 여론 때문이었고 올해 수능 상대평가 유지 발표도 여론 때문입니다. 여당이 정시 확대를 주장하고 방과후 영어금지를 반대한 것도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여론의 영향이 큽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청와대가 여론을 듣겠다고 만들어 놓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유은혜 장관 후보자에 대한 퇴진운동이 시작됐습니다. 50대 여성에 현역 의원 불패라는 비장의 카드를 내세운 청와대 입장에선 곤혹스런 일일지도 모릅니다.
수능에 대한 상반된 주장을 보이는 교육단체들. 입장이 첨예해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 [뉴스1]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부의 가장 큰 의무는 민의를 수렴해 수요자인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정책을 펴는 것이고요. 그러나 여론은 늘 포퓰리즘이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여론은 이해 관계자에 따라 입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좀처럼 하나의 의견으로 모이기 쉽지 않습니다. 여론에 따른 정책 결정이 결국엔 실패하는 이유도 어느 한 쪽을 만족시키면 다른 쪽은 불만을 키우기 때문입니다.

결국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속에서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합리적으로 권위 있게 배분하는 것이 정부와 의회의 역할입니다. (데이비드 이스턴, 『정치체계』) 상충되는 의견이 다양하게 표출되고 민의를 수렴하는 것이 의회라면, 이를 전문가적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것이 정부입니다. 그리고 이런 결정에는 언제나 막중한 책임이 뒤따릅니다.

마치 대부분의 기업에서 구성원의 의견을 두루 듣더라도 최종 결정은 경영진이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과 같습니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정책결정은 여론에 100% 맡길 게 아니라 정부가 해야 마땅하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고 모든 정책 결정을 여론에 맡겨버리는 것은 의견수렴이 아니라 ‘책임회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교육부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사안을 시민들에게 떠넘긴 것부터가 문제”(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라거나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 기대 여론을 등에 업고 쉽게 정책을 펼친 것”(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결국 교육부가 이 지경이 된 이유는 책임을 회피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숙의민주주의’의 목적 자체는 매우 타당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고도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거나 정부가 제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면 혼란과 갈등은 더 커집니다. 그 때 정부는 ‘여론에 따른 것이었다’고 변명하면 그만이겠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입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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