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집 샀어야 했는데".. 상대적 박탈감에 가정불화 -우울증
[동아일보]
이 선택이 명절마다 싸움의 불씨가 될 줄은 몰랐다. 해당 아파트는 2년 만에 10억 원으로 뛰었고 친정 식구들은 “다른 집 딸들은 전부 그때 서울에 집 사서 돈 벌었는데 너만 이게 뭐냐”며 타박을 했다. 이 타박은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이 씨는 “지금 와서 보니 대학원은 아무 때나 갈 수 있지만 집은 그때 아니면 영영 못 사는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서울 집값이 역대 최장인 49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사람도 늘고 있다. 세대를 막론하고 서울 집값 상승에 따른 박탈감이나 허탈함을 겪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최근에는 ‘하우스 디바이드(House Divide·주택 유무에 따라 계층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가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새로운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1월 동작구 상도동 ‘상도 더샵’ 전용 59m²를 5억8000만 원에 판 직장인 김모 씨(40)는 문득문득 울화가 치민다. 최근 이 단지의 호가는 9억 원까지 뛰었다. 김 씨는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 말을 믿고 새집을 안 샀다가 아내 볼 면목이 없다”며 “그때 2, 3채 사들인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돈 벌어서 집을 샀겠나 싶다가도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숨을 쉬었다.
20대에게도 서울 아파트는 스트레스다. 서울 전역 집값이 뛰면서 ‘서울’로 시작되는 주소가 직장 못지않은 스펙이자 계급이 됐기 때문이다. 경기 군포시에 살면서 여의도 증권사로 출퇴근하는 윤모 씨(28·여)는 최근 맞선 자리에서 불쾌한 일을 당했다. 처음에 호감을 보이던 상대방이 윤 씨가 사는 곳을 듣더니 이내 시큰둥해진 것이다. 윤 씨는 “나중에 주선자에게 들어보니 그 남성이 ‘결혼은 부모 집이 서울인 사람과 하고 싶다’고 했다더라”며 허탈해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미혼남 임모 씨(29)는 “요샌 굳이 강남이 아니더라도 서울 자기 집에 산다고 하면 ‘좀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수도권 외곽 도시에서 편안한 노후를 즐기려던 5060세대 중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2005년부터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 사는 최모 씨(55·여)는 2014년 4억6000만 원이던 현재 집을 팔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4억7000만 원짜리(전용 114m²) 집을 사려다가 마음을 접었다. “서울 집값이 더 떨어질 거다”며 남편이 말렸기 때문이다.
그 집은 지난달 말 7억2000만 원이 됐고, 최 씨는 남편과 크게 다퉜다. 최 씨는 “그때 1000만 원만 보탰으면 됐을 집이 이제는 2억2000만 원을 보태야 한다. 살아생전 서울살이를 다시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생각하니 통 잠이 안 오고 입맛도 없다”고 했다.
서울에 집을 가진 6070세대도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은퇴 후 고정 수입이 없는 고령층에선 “집값이 더 안 올랐으면 좋겠다”는 반응도 나온다. 서울 은평구 다세대주택에 살다가 재개발조합원 자격으로 2010년 새 아파트에 입주한 소모 씨(72·여)는 “가진 거라곤 집 한 채뿐이라 세금 낼 돈이 없는데 집값이 자꾸 올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에 사는 한 60대 남성은 “주택연금에 가입하고 싶어도 집을 물려주길 원하는 자식들 눈치 보느라 그러지도 못한다”고 털어놨다. 주택연금은 집을 담보로 생활자금을 받는 제도로 가입자가 사망하면 금융회사가 집을 처분해 그동안 지급한 생활자금을 회수한다. 집값이 급등한 재건축 단지에서는 “개발 부담금이나 이주비용을 댈 여력이 없다”며 재건축을 반대하는 노인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주택으로 인한 우울증이 번지고 있는 건 짧은 기간 비상식적으로 집값이 뛰면서 나타난 우리 사회의 독특한 단면”이라며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자본 격차가,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 격차가 사회 문제를 야기했듯이 이제는 주택 격차가 새로운 사회 문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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