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왜 안 하나"

2018. 9. 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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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 “법외노조 직권 취소 안 하는 게 촛불 이후 최대 미스터리”
청와대 ‘노조 파괴 공작’에 양승태 ‘사법 농단’ 정황에도 현 정부는 ‘모르쇠’ 고수

송재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이 8월7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전교조 본부 사무실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아이고…, 도대체 언젯적 대변인이 여태 대변인이신 거예요?!”

8월 초 인터뷰를 요청하려고 송재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변인과 3년 반 만에 통화를 하면서 엉겁결에 나온 기자의 첫마디는 ‘곡’(哭·울음)이었다. <한겨레> 신문 교육 담당을 마치고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을 했던 2015년 초, 그는 법외노조 사태 와중에 갓 임기를 시작한 신임 대변인이었다. 햇수로 3년 하고도 반, 기자가 세 번의 인사이동을 거치는 동안 그는 ‘최장수’ 대변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3년7개월 ‘최장수’ 대변인

전교조 대변인은 전국적인 교육 상황 이외에 각종 사회·정치 현안과 관련해 수시로 전교조의 입장을 대변하고 수많은 언론을 상대해야 하는 고된 자리다. 가혹한 업무 강도 탓에 ‘최대 2년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법외노조 사태는 ‘송 선생님’을 통상 임기의 2배 가까운 기간을 ‘송 대변인’으로 묶어두었다. 2014년 6월19일 1심 재판부가 법외노조 판결을 내리기가 무섭게 교육부는 바로 다음 날 ‘전임자 복직명령’과 ‘불응시 해직명령’ 후속 조처를 발표했다. 전교조가 송 대변인을 포함해 ‘전임자 결의’ 때 해직을 각오한 교사들 중심으로 여태 집행부를 꾸려가는 이유다.

“2015년 1월에 대변인이 됐으니 벌써 3년7개월이네요. 법외노조 상황이 풀리지 않아서 새로 전임자를 데려오기 어렵고 해고된 사람들이 조직을 이끌어가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에요. 2016년 5월에 해고장을 받았는데 2심 판결이 있었던 2016년 1월21일자로 소급돼서 나왔더라고요. 전교조 전임자는 교육제도를 개혁해 교육 현장을 바꾸는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을 하지만, 빨리 학교로 돌아가고 싶네요.”

송 대변인은 8월7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전교조 본부에서 진행된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조합을 이끄는 처지라 말은 못하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해직 전임자들의 상황을 초탈한 듯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3개월이 됐는데, 사실 전교조 법외노조 상황만 놓고 보면 박근혜 정권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요. 전교조가 ‘박근혜 체제’ 때 조직 그대로 (해직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걸 보면 아시잖아요. 문재인 정부가 법외노조 직권 취소를 안 하는 게 ‘촛불혁명 이후 최대 미스터리’ 아닐까요?” 송 대변인은 전교조에 대한 현 정부의 태도에 의문을 표하면서 “박근혜 정권 때는 ‘그러려니’ 하고 참을 수 있었는데, 문재인 정부 때도 여전히 법외노조인 건 너무 아프다”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 법외노조 해결 약속해놓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해직교사들이 8월27일 청와대 사랑채 앞 분수대에서 ‘국정농단-사법농단 피해 해직교사 복직 촉구 무기한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그도 그럴 것이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전교조 위원장을 만나 ‘법외노조 문제 해결’을 약속한 바 있다. 취임 이후엔 청와대 쪽에서 지방선거 이후 해결하겠다는 언질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 6월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법외노조 철회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고, 8월에는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법외노조 행정처분 직권 취소를 권고하기도 했다. 법외노조의 근거가 된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2항(비근로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는 경우 시정 명령을 내리고, 불응하는 경우 법외노조로 통보하도록 한다)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노조 할 권리를 대통령령으로 박탈하는 월권 시행령이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법외노조 사태가 박근혜 청와대의 ‘노조 파괴 공작’이었고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거래 대상’이었다는 정황이 잇따라 확인됐다. 송 대변인이 “직권 취소의 당위성이 차고 넘친다”며 답답해하는 이유다.

어느 때보다 ‘명분’이 서지만 어쩐 일인지 청와대는 ‘법외노조 직권 취소 불가’ 입장을 고수한다. 대법원 판결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직권 취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내년 국제노동기구(ILO) 창립 100주년에 맞춰 핵심 협약을 비준하는 과정에서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근본적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취지다. 송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폐지한 것처럼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는 것이 행정부 임무인데, 행정부의 적폐 청산 과제를 사법부와 입법부에 미뤄선 안 된다”며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교사들의 기본권과 관련된 문제로, 정부가 정치적 시간표에 맞춰 미루고 늦출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저는 해고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임자를 각오했는데도 막상 해직 통보서를 받고 상당히 충격받았어요. 교사들은 보통 직장을 안 옮겨요. 저도 24년간 교직에 있다가 해고장을 받은 건데, 이제부터 교사가 아니라고 하니까 정말 이상했어요. ‘나는 교사다’라는 정체성의 큰 부분이 위협받은 셈이고, 심리적 공황 상태였달까요. 그래도 문재인 정부가 법외노조를 직권 취소하고, 교원노조법이 개정되면 노동3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사회로 도약할 수 있으리라 믿었죠. 가치 있는 희생을 치렀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법외노조가 너무 길어지고 전망이 희미해지니까… 괴롭지요.”

전교조는 쌍용차 노조나 다른 해고노동자들처럼 물리적 폭력을 당하거나 손배 가압류 등으로 와해되는 고통을 겪지는 않았다. 시기의 문제일 뿐 ‘복직’은 확실하다며 해직교사들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시선도 있다. 이른바 ‘귀족 노조’ 프레임이다. 그러나 전교조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내내 법체계를 파괴하는 불법 조직이라도 되는 듯 모욕당하고 낙인찍혔고, 합법화 14년 만에 다시 ‘노조 아님’ 통보를 받기에 이르렀다. 1989년 창립, 1999년 합법화 이후 지금까지 진보적 교육시민사회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는 조합원들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송 대변인은 이를 “심리적이고 상징적인 피해”라고 일컬었다.

집권 초기 보수 여론 의식해 적기 놓쳐

실질적으론 법외노조화 이후 각종 교육관련위원회와 토론회 등 제도권에서 전교조의 역할이 위축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회원수가 몇 명 되지 않는 신생 교육단체들과 전교조를 ‘엔(n)분의 1’로 대우하는 일도 예사였다. 조합원 5만 명이 넘는 명실상부 국내 최대 교원노조인데, 대표성과 비례의 원칙조차 깡그리 무시되는 냉담한 현실에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송 대변인은 논란이 컸던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를 언급하면서 현 정부의 교육 개혁 의지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전교조를 구심으로 하는 진보 진영은 십수 년간 연구·축적한 교육 개혁 방안이 있는데, 현 정부가 수용하기에 부담스러운 것이 아닌가 한다. 정부 입장에서 볼 때 전교조가 법외노조로 묶여 있는 것이 교육 개혁을 포기하거나 매우 낮은 수준으로 실행하는 데 오히려 수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가 전교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최적기는 집권 초기였다. 적폐 청산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다. 송 대변인은 청와대가 보수 여론을 과도하게 우려한 나머지, 여론 지형을 잘못 읽었다고 봤다.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했을 때 정부 지지율이 내려가고 정치적 역풍이 불 거란 ‘예단’ 탓에 직권 취소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설문조사 결과, 전교조 재합법화 여론이 57%였고, 반대는 26%에 그쳤다”며 “시민들 사이에서도 전교조 법외노조화가 박근혜 정권의 적폐라는 인식이 광범위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론도 여론이거니와 개혁을 추진하려면 보수 세력의 저항은 감수하면서 가야 한다”며 “늦었다고 생각할 때라도 바로잡아야 하고, 사법 농단이 드러나는 지금이 그때”라고 했다.

전교조는 ‘고지식하다’는 이미지가 있다.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거래’ 정황이 드러난 이후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전교조가 고지식하게 규약 시정 요구를 거부하다가 법외노조화를 자초했다는 ‘환장’할 비판에 직면한 적도 있다. 그러나 송 대변인은 “고지식하지 않았으면 전교조를 설립하지도 못했고 지금까지 버티지도 못했다”며 “더구나 노조 규약을 고쳐 해직자를 버리라는 요구는 노조의 자주성을 해하는 일이라,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송 대변인 자신도 처음에는 규약 개정에 찬성했고, 조합원 총투표에서 규약 개정안이 통과되리라 예상했다고 한다. 험난한 법외노조의 길을 걸으며 시련을 겪어야 할 후배 교사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합원 80.96%가 참가한 총투표 결과는 압도적으로 규약 개정 거부(68.59%)로 나타났다. 개정을 수용한다는 의견은 28.09%에 그쳤다. 당시 많은 활동가들이 “조합원을 못 믿은 과오”를 반성했고, “전교조에 대한 자부심”이 크게 고취됐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선 전교조에 대한 청와대 관계자들의 ‘부정적 인식’이 법외노조 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시각도 있다. 참여정부 초반 전교조의 ‘네이스(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반대 투쟁’이 참여정부의 발목을 잡았다는 볼멘소리가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송 대변인은 우선 “전교조도 공적 지위에 있으므로 얼마든지 비판받을 수 있지만 기본권 침해에 해당하는 법외노조화를 정당화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이어 “참여정부가 네이스를 폐기하기로 했다가 보수 세력의 반발로 말을 바꾸는 과정이 있었다”며 “참여정부로선 부담스러웠을 수 있지만 전교조가 발목을 잡았다는 건 과도하고 과장된 평가”라고 반박했다. 또 “의무교육제 국가에서 학창 시절의 모든 정보를 집적한다는 건 사실상 전 국민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한다는 얘기다. 전교조가 그때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정보 인권 화두를 던졌다”고 설명했다.

“나는 없어져야 한다”

송 대변인은 요즘 “나는 없어져야 한다는 사명감 (웃음)”으로 산다고 했다. 전임 기간이 길어지면 일할 때 적극성이 떨어져 ‘조직의 민폐’가 된다고 생각해서다. 법외노조 문제가 풀리고 교사 기본권과 참교육 지평이 확대되면, 그는 본업인 중등 교사로 돌아가되 이번엔 “시골 학교”로 가고 싶다고 했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서 ‘사회적 맥락에서 음악읽기’라는 프로그램을 운용해보고 싶어서다. “교사는 교단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교사다워져요. 교단에 선 지 거의 4년이 돼 공백에서 오는 감각의 상실이 있을 텐데… 이전에 경험한 아이들과 다른 세대인 아이들과 만나 원활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기대와 설렘도 있지만 두려움도 있어요.”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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