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은 게으르고, 채사장은 단순하다"

최현미 기자 입력 2018. 9. 6. 11:00 수정 2018. 9. 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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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평론지 ‘기획회의’ 특집통해 ‘예능 인문학’ 작가들 비판

지식 소매상役 못하는 유시민

1980년대 렌즈로 역사학 정리

최근 논쟁 담는 치열함 없어

‘쉬운 설명’ 신화 빠진 채사장

철학을 절대·상대주의로 분류

서양 철학 줄기 간단하지 않아

요즘 서점가의 최고 인기 저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전공 분야, 주제는 물론 내용도 변수가 되지 않는다. 바로 방송에 나와 지명도를 얻은 ‘유명인’들이라는 점이다. 방송, 그것도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이름을 알려야 책이 팔리는, 인문학과 방송이 손을 잡은 ‘예능 인문학’의 시대가 됐다. 한쪽에서는 이렇게라도 책이 팔리고 인문학이 대중화되면 좋지 않으냐는 현실적인 진단이 나오는 가운데 예능 인문학 대표 주자들에 대해 보기 드문 직설적인 비판이 제기됐다.

출판평론지 ‘기획회의’ 최근호는 ‘예능 인문학’ 특집을 통해 ‘알쓸신잡’ 등으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유시민 작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으로 새로운 대중 인문서 시장을 연 채사장, 스타 인문학 강사 최진기,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의 책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본다. 이들은 대중 인문학자들의 긍정적인 역할을 전제하면서도 ‘예능 인문학’이 인문의 대표 혹은 모든 것이 되는 ‘인문의 예능화’에 제동을 걸며 함께 성찰해보자고 제안한다.

지식큐레이터인 강양구 씨는 ‘유시민이 예능에 몰두해야 하는 이유’라는 글에서 요즘 독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높은 유시민 작가를 강력 비판한다. 비판의 핵심 논거는 ‘게으르다’이다. 유 작가가 스스로 ‘지식 소매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지난해 개정판이 나온 ‘국가란 무엇인가’와 요즘 베스트셀러인 ‘역사의 역사’가 모두 ‘지식 소매인’으로서의 제 역할을 못 하는 ‘게으른 저작’이라는 것이다. ‘국가란 무엇인가’는 국가를 탐구해온 여러 철학자, 정치학자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지만 “1980년대 대학가의 사회과학 세미나장에서 뛰어나올 법한 개념과 서술이 튀어나온다”며 “냉정히 평가하면 1980년대 대학생 교양 수준에 자신의 현실 정치 경험을 살짝 얹은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최근작 ‘역사의 역사’는 ‘국가란 무엇인가’보다 훨씬 게으르다고 분석했다. 강 씨는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에 일어난 세계사적 격변을 마주하며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역사를 논하는 책에서 이 같은 핵심적인 부분이 빠져 있다고 아쉬워했다. 책의 끝에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소개한 것도 독자들이 알 만한 책을 끼워넣어 저자의 나태함을 희석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유 작가가 정치학자도 아니고 역사학자도 아니기에 이 같은 요구는 과도하다는 반박에 대해, 역사학을 강의하는 교수의 커리큘럼이 1988년부터 2018년까지 30년간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비유했다. 이에 강 씨는 유 작가에게 “만약 제대로 된 지식 소매상 역할을 할 생각이 없다면 그냥 예능 방송이나 열심히 하시라. 책 안 내도 먹고살 만하지 않냐. 스타 PD에게도 당부한다. 이제 어르신 팔아먹는 일은 그만하고, 다음 세대 발굴에 나서달라”고 일갈했다.

‘겨울 서점’의 북튜버 김겨울은 ‘채사장의 얕고 넓은 인문학’이라는 글을 통해 채사장이 인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긴 했지만 “진짜 전문가는 쉽게 설명한다”는 신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고 주문한다. 채사장은 방송으로 인기를 얻은 ‘예능 인문학자’는 아니지만 팟캐스트를 통한 ‘쉬운 인문학’의 대표주자라는 점에서 분석을 이어간다. 그는 채사장이 철학을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회의주의’로 분류하는 것을 예로 들며 서양 철학의 줄기는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려는 노력은 가치가 있지만 반드시 쉽게 이야기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인문학자 김경집 씨는 스타 인문학자 최진기 씨의 문제를 지적한 ‘SPA 상품으로의 인문학에서 벗어날 때’에서 ‘스타 인문학자’의 한계를 지적했다. 무엇보다 방송 이외에 별다른 인문학적 대안이 없는 독자들에게 모든 문제에 대해 “본인이 통달한 것처럼 간단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데 있어 매우 왜곡된 결론에 이르게 한다는 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자유기고가 노정태 씨도 방송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에 대해 “요리를 거론하며 인류학, 사회학의 초보적인 논의들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동원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황 칼럼니스트가 ‘인간은 모여서 음식을 나눠 먹는 사회적 동물인데, 오랫동안 혼자 밥을 먹는 것은 뇌에 손상을 주는 자폐 행위’로 비유해 논란을 빚은 것 역시 제대로 숙성되지 않은 인문학적 지식을 잘못 동원한 결과라고 밝혔다.

문제는 예능 인문학이 출판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넘어, 예능 인문학만 팔리는 현실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예능 인문서 한 권을 읽고 마치 그 분야 교양을 다 읽었다고 생각할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김경집 씨는 이 같은 인문학 소비는 인문학 시장을 악화시켜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외면과 냉대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평론가는 “예능 인문학 책은 그 나름의 역할이 있기에 이들이 모든 것을 해주기를 바라는 비판은 가혹하다”며 “오히려 너나없이 예능 인문학으로 몰려가는 현상, 이들의 역할을 메워줄 진지한 인문학이 없다는 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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