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는 살인이다"..쌍용차 해고자 아내 절반은 '극단적 생각'

입력 2018. 9. 6. 13:06 수정 2018. 9. 6.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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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와락 '2018년 쌍용차 가족의 건강상태' 발표

해고자 아내 48% 지난 한해 '자살 생각'
일반 여성의 자살생각 유병율 8.67배 달해
"숙면한 날 일주일 이틀 이하" 80%
사회적 단절과 고립이 건강에도 악영향

[한겨레]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 남미경(가운데)씨가 5일 오후 경기 평택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인터뷰를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평택/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해고는 살인이다. 해고는 노동자의 삶을 그 뿌리부터 박살낸다. 해고자의 가족도, 그와 함께 죽어간다. 쌍용자동차(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배우자 가운데 “1년 이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비율이 일반 여성의 약 9배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의 내상을 치유하는 심리치유센터 ‘와락’은 6일 ‘2018년 쌍용차 가족의 건강상태’ 등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를 보면 쌍용차 해고자들의 아내 48%가 지난 한해동안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2013년~2015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일반 여성의 자살생각 유병율인 5.7%의 8.67배에 달한다. 복직자 아내는 20.6%로 일반여성의 3.72배였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는 “천안함 생존장병들중에서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50%였다”며 “한국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임을 감안할 때 해고노동자의 배우자 수치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 쌍용차 해고이후 사망한 쌍용차 가족 30명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고노동자의 배우자는 4명이다.

남편들이 쌍용차 해고를 겪은 노동자들과 아내들은 남편의 복직 여부와 관계없이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지난 1주일동안 충분한 수면을 취한 날이 이틀 이하인 경우가 해고노동자 아내는 80%에 달했다. 해고자의 응답률(90%)과 큰 차이가 없었다. 복직한 노동자의 가정의 경우엔 상대적으로 나은 수치를 보였지만 해고 가정과 마찬가지로 복직 노동자의 아내 71.9%, 복직노동자 75.8%가 일주일동안 충분한 수면을 취한 날이 이틀 이하라고 응답했다.

우울증상도 심각했다. 해고노동자의 경우 89.3%가 지난 1주일 동안 우울증상을 겪었으며, 해고노동자의 아내도 82.6%가 같은 대답을 했다. 이는 2017년 한국복지패널이 30~60살 일반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우울감과 비교했을 때 각각 13.37배, 8.27배나 높았다.

이런 건강상의 문제는 해고가 불러온 사회적 단절과 고립의 결과였다. 해고노동자의 87.8%가 ‘해고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부적절하게 느껴진다’고 답한 비율도 54.9%나 됐다. 배우자의 해고는 아내의 사회적 고립도 야기했다. 해고노동자의 아내 70.8%가 세상으로부터 소외감을 느꼈으며, 45.8%가 사람들과 어울리길 어려워했다.

해고는 가족관계에도 단절을 불러왔다. 지난 1년간 해고 가정의 배우자 관계 만족도 조사에서 불만족 비율은 해고노동자의 배우자 경우 33.3%, 해고노동자의 경우 49.3%로 일반 가정에 비해 약 3.85배, 13.16배나 높았다. 복직 가정의 경우 이보다 낮았지만 일반 가정에 비해서도 수배나 높았다. 복직자 아내의 경우 1.86배(18.8%)가 불만족한다고 응답했으며 복직자는 8.5배였다.

또 해고는 지역사회에서 노동자와 가족들이 차별을 당하도록 했다. 2009년 해고뒤 남편이 정리해고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은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해고자의 아내 54.6%가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복직자의 아내의 경우엔 62.5%가 차별을 겪었다고 답했다. 차별을 겪은 장소는 직장, 일터가 66.7%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거리나 동네, 상점, 심지어 아이들의 학교 등 일상에서 차별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외침이 단순한 은유가 아닌 까닭이다. 권지영 와락 대표는 “육아로 경력단절된 아내들이 겨우 직장을 찾아도 ‘남편이 쌍용차 해고자’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뒤에서 ‘해고자들이 이기적이었다는둥 잘못했다는 둥’ 수군거림을 들은 경험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해고자와 가족들이 해고 과정에서 겪은 고통은 경제적 빈곤, 폭력적 해고, 사회적 고립 뿐 아니라 국가 폭력도 포함됐다. 한 해고노동자의 배우자는 “경찰이 가운데서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저 사람(용역·사쪽)들 하고 같은 한 편이 되는구나. 그걸 모르고 경찰한테 도와달라고, 좀 막아달라고(했구나)”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DNA 시료채취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해고노동자 32.5%, 복직노동자 35.7%가 있다고 답했다. DNA법은 효율적인 범죄 예방이라는 목표를 내세워 노조와 사회운동을 탄압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DNA법이 “신체의 자유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번 조사에는 해고노동자 아내 26명, 복직자 아내 35명, 해고노동자 86명, 복직자 33명이 4월22일부터 6월 29일까지 참여한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진행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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