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에 온다면, 코끼리를 타지 않기로 해요"

2018. 9. 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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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타이 '람빵 FAE 코끼리 병원' 운영하는 소라이다 살왈라
8살 때 만난 치료 받지 못하고 죽은 '코끼리 삼촌' 계기
관광·벌목 현장서 착취당한 코끼리의 몸과 마음 치유해

[한겨레]

람빵 FAE 코끼리 병원에서 한 코끼리가 주사를 맞고 있다.

타이에 세계 최초의 코끼리 전문 병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타이 북부 치앙마이에서 11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 반을 달리면, 우거진 수풀 속 도로 왼편에 ‘아시아 코끼리의 친구들(Friends of Asian Elephants, FAE)’ 푯말이 나타난다. 이곳은 타이 북부 여행 중 흔히 접하는 코끼리 관광·체험 캠프가 아니다. 그런 관광상품이나 벌목 현장에서 착취당하며 정신적, 신체적 외상을 입은 코끼리, 각종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코끼리를 치료하는 병원이다. 비정부단체가 국내외 기부금을 받아 운영한다. 진료비와 입원비, 약값은 전액 무료다.

이 병원은 1993년 수의사도 동물학자도 아닌 평범한 방콕 시민 소라이다 살왈라(61)가 설립했다. 그는 선천성 면역질환 전신홍반루푸스, 다발성경화증 같은 불치병 탓에 어린 시절부터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평생 환자인 그와 아픈 코끼리의 인연은 그가 8살이 되던 해에 시작됐다. 가족 여행 중 트럭에 치여 길가에 쓰러진 코끼리와 옆에서 슬피 울던 주인을 만났다. 그 주인이 고통스러워하는 코끼리를 총으로 쏴 안락사한 것이 코끼리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다. 당시 자신이 다니던 그 많은 병원 중 ‘코끼리 삼촌’을 데려갈 수 있는 병원이 한 곳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가 어른이 되어 코끼리 병원을 설립하고, 인신공격과 재정적 어려움, 하루 4시간 이상은 잘 수 없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26년을 버텨온 이유다.

그는 17년 6개월의 투쟁 끝에 방콕시에서 코끼리 도시진입 금지 조례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제 총리실 산하 타이 코끼리 기본 계획 위원회가 코끼리의 상업적 이용을 막고 공존을 모색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람빵 에프에이이(FAE) 코끼리 병원에 사는 소라이다 살왈라를 만나 그간의 코끼리와 공존하는 법에 대해 들었다.

소라이다 살왈라씨가 코끼리에게 음식을 주고 있다.

타이를 찾는 관광객 사이에 코끼리 타고 정글을 돌아다니는 관광상품이 유명하다. 이런 관광상품 구매해도 괜찮은가.

“나는 타이 관광국 회의가 있을 때마다 코끼리 캠프 주인들에게 ‘당신들은 코끼리를 착취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코끼리가 관광객을 태우고 걷는 시간은 10분도 안 된다. 하지만 이 10분을 위해 코끼리들은 오랜 시간 뜨거운 태양 아래 서서 대기한다. 그러다 발바닥이 곪아서 우리 병원을 찾곤 한다. 긴 시간 기다리며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건강이 좋을 수가 있나. 근데 관광객들은 그저 좋아한다. 캠프 주인들은 수익 때문에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코끼리가 이 모든 과정에서 받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코끼리 관광을 멈추라고 말하면 그들은 나에게 미쳤다고 말하지만 나는 미치지 않았다. 사람도 오랜 시간 뜨거운 태양 아래 서 있으면 신발을 신었더라도 발이 아프다. 코끼리 또한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인데 단지 돈을 위해 그들을 착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 8월12일, 총리실 산하 타이 코끼리 기본 계획 초안 작성 위원회 회의에서도 관광객이 코끼리 등에 타는 상업적인 관광상품 문제를 지적했다.”

타이를 찾는 한국 관광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뭔가.

“코끼리 등에 타는 관광상품을 팔고 있는 코끼리 캠프에 가지 말라. 그래야 캠프 주인들이 깨닫고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다. 관광객들이 앉아서 코끼리가 모래나 물을 가지고 노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입장료 수익을 낼 수 있다. 나는 아기 코끼리가 노는 모습만 보면서 몇 날 며칠을 보낼 수 있다. 코끼리들이 공연하거나 사람을 등에 태울 필요가 없다. 왜 그들 등에 올라타야 하나. 코끼리 등에 탔다는 경험을 위해서? 나는 1993년부터 타이 관광국이 코끼리를 타는 관광상품 불매를 권장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다행히 일부 여행사들은 코끼리 타는 관광상품을 거부하고 있다.”

타이에서 코끼리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정치적 과제는 뭐라고 보나.

“지금 정부가 타이 코끼리 기본 계획 통과 과정을 비공개로 하는 것이 걱정된다. 정부는 타이 전역의 코끼리를 통제하며 예산을 관리하려 한다. 내가 지난 20여년간 국립코끼리펀드 마련을 제안해왔지만 정부는 듣지 않고 있다. 코끼리 복지를 위해 일해온 우리 같은 당사자들을 배제하고 자원부, 야생생물부, 가축부, 농업부 등 자기들끼리 모여 코끼리 관련 법을 논의한다. 정부는 우리 의견을 무시한 채 현실에 맞지 않는 코끼리 관련 규정들을 만들고 있다. 코끼리 소유권을 독점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 규정을 어기면 개인이든 단체든 코끼리를 빼앗겠다는 식이다. 1993년에 아기 코끼리는 5만 바트(한화 약 170만원)에 거래됐는데 지금은 150만 바트(약 5000만원)이다. 여기에 아름다운 상아까지 있으면 거래가는 1,200만 바트(약 4억원)으로 올라간다. 정부에게는 코끼리가 자산인 것이다.”

당신은 코끼리와 인간이 수 세기 동안 공존해온 타이 전통문화를 강조해왔다. 코끼리와 공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뭔가.

“이해다. 코끼리의 성격에 대한 이해. 그러면 그들에게 말을 걸 수 있다. 예전에는 마훗(코끼리조련사)들이 코끼리와 아기 때부터 애착을 형성하며 함께 자랐다. 이건 매우 특별한 유대다. 지난 20년간 코끼리와 마훗의 그런 관계는 깨졌다. 이제는 마훗이라는 표현도 자제하려고 하는데, 마훗은 코끼리의 성격과 취향을 알아서 그를 제대로 돌보고 대화도 할 수 있는 매우 신성한 업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은 그저 돈을 받고 일하며 먹이를 던져주고 좌로 우로 이동하라고 명령하면서 자기 말을 따르지 않으면 코끼리를 때린다.”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나.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우리 병원을 찾는 코끼리 환자들은 진료 기간 마훗과 함께 머문다. 마훗이 코끼리를 때리려고 할 때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코끼리에게 말하는 것을 보여준다. 코끼리들은 사람이 하는 말의 어조를 이해한다. 차분하게 말하면 그들도 차분해진다. 모든 마훗들이 이곳에 올 수 없지만 입소문으로 이런 방법이 퍼질 것이다.”

현재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환자들을 소개해달라.

“‘에카차이’는 지난해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고 퇴원했지만 올해 다시 왔다. 그 사이 주인이 바뀌었는데 밥도 먹지 않고 누워서 잠도 안 잔다고 했다. 지난 1월부터 바닥에 누워 잠을 자지 않고 있다. 누우면 스스로 일어날 힘이 없기 때문인데 나쁜 징후다. 44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65살처럼 보일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 그래서 차분히 혼자 두고,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다. 병원에 와서야 긴장을 풀고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 병원에서는 신체적 증상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보보’는 우리 병원의 평생 입원 환자다. 우리가 직접 구출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 방문객은 일절 받지 않는다. 내가 보보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소리를 내면서 내가 말하는 모든 문장에 반응한다. 멀리 떠나 있을 때는 직원을 통해 휴대전화 스피커폰으로 내 목소리를 들려주는데 보보는 그 말을 듣는다.”

람빵 FAE 코끼리 병원에서 지내는 코끼리들은 관광·벌목 현장 등에서 신체적, 정신적 외상을 입은 뒤 치료를 받고 있다.

코끼리와 어떻게 대화하나.

“어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절대 큰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아시아코끼리의 친구들 재단 창립 초창기에 직원들이 코끼리에게 ‘야’라고 했다. 내가 직원들에게 ‘타니’라는 이름이 있으니 이름을 부르고 말을 걸라고 하면 웃어넘기곤 했다. 얼마 전 한 직원이 타니 옆에 서서 ‘나 머리 잘랐는데 어때?’하고 묻자 그의 친구들이 놀렸다고 한다. 농담이 아니라 코끼리는 대꾸할 수 없을 뿐 우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와 개, 새에게 말을 하듯이 코끼리에게도 말을 걸 수 있다. 코끼리는 다만 몸집이 아주 매우 클 뿐이다. ‘모탈라’는 이 병원에 온 지 한 달쯤 됐을 때 휴대전화 스피커폰으로 ‘사와디카’(안녕)하고 인사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코로 전화기를 만질 정도로 말에 반응했다.”

타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코끼리 병원으로 자주 견학 온다고 들었다. 그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뭔가.

“내가 어릴 때 사랑에 빠진 만화영화 ‘덤보’ 이야기를 해준다. 서커스단에서 태어나 귀가 너무 커서 놀림 받던 아기 코끼리가 그 큰 귀로 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내용이다. 우리 모두가 같지 않고,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해한다. 그리고 내가 여덟 살에 수린에서 봤던 ‘코끼리 삼촌’ 교통사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병원 설립 3년 후 TV 인터뷰에서 그 일화를 얘기한 뒤 우연히 그 코끼리 삼촌의 주인을 만났다. 할아버지가 된 그는 작은 소녀였던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30년 뒤 그 아이가 자라 아픈 코끼리를 돕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다.”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코끼리 이야기가 있나.

“태어난 지 7달 됐을 때 지뢰를 밟고 다친 ‘모차’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모차는 지금 13살이다. 그는 여기서 평생을 살았고, 플라스틱 의족을 착용한 첫 번째 코끼리다. 아직 10대이고 성장 중이다. 모차는 살기 위해 싸웠고, 우리는 모차를 위해 함께 싸웠다. 용기, 그리고 생명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사실 얼마 전 모차의 이야기를 담은 영어 동화책이 나왔다. 제목이 ‘모차, 절대 포기하지 않는 코끼리’다. 모차는 ‘별’이라는 뜻이다. 모차가 병원에 실려 온 날 밤하늘에 별이 가득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글·사진 치앙마이(타이)/ 이슬기 애니멀피플 동남아시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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