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 9900원에 매일 술 한 잔.. 꽃·양말·침구까지 '취향 구독'

김보라 2018. 9. 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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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산되는 구독경제
초기엔 신문·우유·면도날 등 생필품
이젠 식품·화장품·車·취미도 서비스
전문가·AI가 골라주는 맞춤형 모델
"목돈 들여 제품 소유하지 않고도
새 트렌드 접할 기회" 2030에 인기

[ 김보라 기자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월 구독료를 내고 회원으로 가입한 뒤 물건이나 서비스를 받아 쓰는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가 확산하고 있다. 신문이나 우유, 각종 생필품을 정기 배송받는 게 전통적인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경제적 이익’과 ‘새로운 경험’이 구독 경제의 키워드다. 정해진 금액을 선불로 납부한 뒤 무제한으로 서비스나 상품을 이용한다. 구독 경제는 세계적으로 지난 5년간 연 200%씩 고성장하며 ‘소유하지 않는 소비’를 이끌고 있다.

‘월 9900원에 매일 술 한 잔이 공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데일리샷은 회원들로부터 월 9900원의 정기 구독료를 받는다. 데일리샷 앱(응용프로그램)에 가입하면 서울 강남, 신촌, 홍대, 이태원 등 핵심 상권 80여 곳의 펍이나 바에서 매일 한 잔의 술을 마실 수 있다. 술 종류는 수제 맥주, 칵테일 등 해당 매장이 지정하는 것으로 매일 바뀐다. 지난해 9월 정식으로 시작한 이 서비스 회원은 5000명을 넘어섰다. 매주 2~3곳의 술집이 회원사로 가입하고 있다. 이달부터는 부산 20여 곳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한다.

술뿐만 아니다. 연 6~8회 제철 제주 농수산물을 정기 배송하는 ‘무릉외갓집’, 월 1회 취미를 배달해주는 ‘하비인더박스’, 월 2회 꽃을 정기 배송하는 ‘꾸까’, 월 1~2회 깨끗한 새 침구를 배송해주는 ‘클린베딩’, 매주 잘 다려진 셔츠 3~5벌을 배송해주는 ‘위클리 셔츠’, 매달 화제의 책을 10권 읽을 수 있는 ‘밀리의 서재’까지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이 국내 구독 경제를 이끌고 있다.

그래픽=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술집에서 멘토까지 ‘무한 구독’

초기 구독 경제는 신문과 잡지, 우유, 영양제, 면도날, 생필품 등이 주요 품목이었다. 2011년 등장한 미국 면도날 정기배송 스타트업 ‘달러 셰이브 클럽’은 월 9달러를 내면 매달 4~6개씩 면도날을 집으로 배송해 성공을 거뒀다. 이후 매달 5달러에 칫솔모를 보내주는 ‘큅’, 월 30달러에 일회용 콘택트렌즈를 배송해주는 ‘허블’, 여성용품을 보내주는 ‘롤라’ 등이 줄줄이 등장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서비스가 대거 나왔다. 하지만 정기배송 모델은 고정된 수요층 외에 더 이상 늘지 않는 한계가 분명해 문을 닫는 곳도 생겼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이 개인 취향을 분석해 서비스하는 맞춤형 구독 모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몸 상태 등을 꼼꼼히 전달하면 영양제를 조합해 매달 배송해주는 ‘케어오브’, 화상 통화로 피부 상태를 진단해 매달 맞춤형 화장품을 보내주는 ‘큐롤로지’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월 1만4900~4만2300원에 피부 맞춤형 화장품을 배송해주는 ‘먼슬리 코스메틱’, 남성의 피부 상태에 맞춰 면도기와 면도날, 면도크림을 배송해주는 ‘핸섬박스’ 등이 나왔다.


핵심은 ‘경제적 이익’과 ‘재미’

구독 경제의 키워드는 ‘이익’과 ‘재미’로 압축된다. 맥킨지 설문조사에 따르면 구독 경제 이용자의 가장 큰 가입 이유는 ‘재미와 흥미’였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서’(25%),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서’(24%)라고 응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절반 가까운 사용자가 호기심과 새로운 경험 등을 위해 선택했다는 얘기다. ‘경제적 이익 때문에’(19%), ‘편리해서’(12%)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이 골라주는 ‘큐레이션 모델’은 구독 경제의 큰 축이다. 월 구독료를 내면 무엇이 배송될지 모르지만, 새로운 트렌드에 도전하고 경험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국내에서는 수제 맥주 배송 스타트업 ‘벨루가’가 월 2회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수제 맥주 4병을 임의로 골라 배송한다. 돌로박스와 베이컨박스 등은 반려동물의 수제 간식과 장난감 등을 매달 바꿔가며 보내준다. ‘윙클로젯’은 3만9000원을 내면 소비자 기호에 맞춘 여성 의류 세 벌을 보내준다. 1주일 동안 입고 반납하면 되고, 세탁할 필요도 없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30대 직장인 신모씨는 “비싸게 옷을 산 뒤 유행이 바뀌어 몇 번 못 입은 옷들이 옷장이 쌓였었는데, 새 옷을 매일 바꿔 입을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하비인더박스는 취미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취미생활을 가이드할 이색 상자를, 플라이북은 매달 추천 책과 좋은 영화, 음식 안내서를 보내준다.

경제적 이익을 돌려줘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는 소셜커머스업체 위메프가 운영하는 W카페다.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5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민서희 씨는 그동안 한 달 평균 커피값으로 12만~15만원을 지출하다가 올 들어 이 카페의 무제한 패스에 가입한 뒤 커피값이 월 4만9900원으로 확 줄었다. 선불로 돈을 내면 한 달간 강남과 송파, 경기 판교까지 총 6개 지점에서 3시간마다 1잔씩 무료로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다. 위메프 관계자는 “전체 방문객 중 약 20%가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재구독률이 70%에 달한다”고 말했다.

왜 사지 않고, 가입하는가

20~30대를 중심으로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으려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블룸버그는 미국에서 청소년 시기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현 20~34세 연령층을 ‘경기 침체를 겪은 세대’라는 뜻의 ‘리세션 제너레이션’이라고 부른다. 금융위기가 보유 자산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을 목격한 이들은 부모 세대와 달리 차나 집 등 목돈이 들어가고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경계하는 세대라는 뜻이다.

대학생 전문매체 대학내일이 국내 20대의 트렌드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20대는 ‘소유에 의미를 두지 않고, 렌털이나 중고를 마다하지 않는 세대’로 분석했다. 소유가 중요하지 않고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얼마나 잘 찾아 쓰고 잘 즐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트렌드 변화 주기가 점점 빨라지는 것도 구독 경제의 성장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3~5년에 걸쳐 나타나던 변화가 수개월 안에 일어나면서 소비자의 피로도가 높아진 데다, 금방 유행이 바뀌기 때문에 후회하는 경험도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황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유 경제와 구독 경제를 통해 경제적 선택의 위험을 없애면서 소비의 개념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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