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국인'도 군대 꼭 가야 돼요? [이슈+]

김태훈 2018. 9. 9. 10:1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선천적 복수국적자, 군대 안 갔다와도 한국 국적 포기 가능해지나?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지난 6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현역 입영 대신 대체복무를 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린 가운데 이번에는 이른바 ‘어쩌다 한국인’의 병역의무 이행을 완화시켜주는 방안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어쩌다 한국인’이란 한국인 사이에 태어나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사실상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거의 100% 외국인에 가까운 정체성을 지닌 이들을 뜻한다.

일례로 A(23)씨는 1995년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한국인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출생과 동시에 한국 국적과 미국 시민권을 동시에 취득한 이른바 ‘선천적’ 복수국적자다. A씨는 남성인 만큼 우리나라 병역법에 따라 18세가 된 2013년 1월 제1국민역에 편입됐다.

◆현행 국적법, ‘복수국적 남성은 군대 갔다와야 국적이탈 가능’ 규정

9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현행 국적법 12조 2항은 ‘남성은 제1국민역에 편입된 때로부터 3개월 이내에 국적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 병역 의무를 해소한 후에야 외국 국적을 선택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A씨는 미처 이 규정을 몰랐는지 2013년 3월 말까지도 한국 국적과 미국 시민권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한국에 가서 군에 입대하거나 아니면 군복무 면제판정을 받는 등 병역의무를 해소하지 않으면 미국 시민권을 선택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는 한국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현행 국적법이 국적을 이탈할 국민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2015년 재판관 5(합헌) 대 4(위헌) 의견으로 해당 국적법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5명은 다수의견에서 “법대로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A씨가 잘못한 것”이라며 “국적 이탈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반면 재판관 4명은 소수의견에서 “A씨는 주된 생활 근거를 외국에 두고 있고 한국 국민의 권리를 향유한 바 없으며 한국에 대한 진정한 유대 또는 귀속감이 없이 단지 혈통주의에 따라 한국 국적을 취득했을 뿐”이라며 “국적 이탈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적이탈 시기 놓쳤다 외국서 취직도 못해… 재외동포들 원성 자자

A씨처럼 국외에서 출생한 후 국내와 왕래도 거의 없이 국외에만 장기 거주하는 선천적 복수국적 남성 중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국적 포기 시기를 놓쳤다가 한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사람 구실’ 못하게 된 사례가 적지 않다. 또다른 선천적 복수국적자 B씨도 ‘18세 되는 해의 3월 말’로 규정된 국적이탈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외국 사관학교 입학과 공직사회 취업을 제한당하자 한국 정부에 시정을 하소연하는 청원서를 냈다. 재외동포사회는 A씨나 B씨 같은 사례를 들어 ‘국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1948년 정부 수립 직후에 제정된 국적법은 그동안 총 14회에 걸쳐 개정되었다. 다만 병역의무자의 국적이탈 제한 등에 관한 조항은 2000년대에 개정이 이뤄지고 나서 이미 상당한 시일이 지났다. 법무부는 올 들어 ‘국적제도개선 자문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선천적 복수국적자 중 군대에 갔다오지 않은 남성들의 국적이탈 요건에 관해 집중적으로 검토해왔다. 비록 합헌 결론이 나긴 했지만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이 4명으로 합헌(5명)과 거의 비슷하게 나왔던 헌재 결정의 여파를 어떻게든 감안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정당한 사유 있으면 병역 이행 전 국적이탈 허용해야" 개정안 발의

국회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오는 11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선택제도 개선’이란 주제로 국적법 개정안 토론회를 연다. 이번 토론회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와 공동으로 개최한다. 오정은 한성대 교수가 사회를 맡고 이 의원이 직접 마련한 개정 법안을 발표한 뒤 재외동포재단 김민기 전문위원, IOM이민정책연구원 민지원 부연구위원, 법무부 반재열 국적과장, 석동현 변호사, 병무청 이연우 자원관리과 서기관, 미국 한인커뮤니티변호사협회 이종건 부회장,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정인섭 교수 등이 참여한 가운데 토론을 벌인다.

이 의원은 “과거 복수국적자의 국적선택제도를 악용해 군복무를 피한 가수 유모씨 사건과 병역의무 이탈을 노린 일부 사회지도층의 이른바 ‘원정출산’이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며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편법적 병역면탈 방지를 위해 도입한 현행 국적법 조항은 당초의 입법 목적을 달성하고 있지만 ‘보완 필요성이 높다’는 여론과 민원도 꾸준히 제기돼왔다”고 밝혔다. 이어 “2015년 헌법재판관 4명이 낸 의견 등을 반영해 국적을 이탈하지 못한 정당한 사유나 기간 경과 후에 국적을 이탈해야 하는 불가피한 사유가 있다면 법무부 장관이 국적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적이탈을 최종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개정안을 마련했다”며 “글로벌 시대에 재외동포의 권익과 국민의 법감정을 균형 있게 반영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