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쿠르드 손실액 4,627억.."문제 없다"는 석유공사

장훈경 기자 2018. 9. 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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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기준, 'MB 자원외교'로 인한 손실액은 13조 6천억 원입니다. 석유공사, 광물공사, 가스공사 등 3개 공사가 투자한 돈은 모두 43조 4천억 원인데 3분의 1 정도를 날린 셈입니다. 문제는 확정된 손실만 그 정도라는 것입니다. 손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불어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자원외교 실패의 핵심으로 '과대평가'를 꼽습니다. 비용은 적고 수익은 많을 거라고 평가해 무리한 인수를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실 자산을 사들이고 난 후 공사들이 보인 행태에 대한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공기업 특유의 책임 회피 경향으로 부실을 다음 대로 떠넘기려는 모습이 지속돼 왔다는 것입니다. '일단 나만 피하고 보자'는 안일함 속에 손실이 계속 늘었다는 비판입니다.

SBS 탐사보도팀이 주목한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취재진에 제보한 석유공사 직원들은 "석유공사가 '공사=MB 자원외교 피해자'라는 프레임이 깨질 것을 두려워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피해자여야 한다는 생각에 내부의 잘못은 덮는데 급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손실이 나도 국민의 혈세로 감당하면 된다는 식의 행태가 지금도 계속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제보자들은 이라크 쿠르드 사업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습니다.

● MB 자원외교 1호 사업, 2008년 쿠르드 유전 개발

이라크 쿠르드 유전사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원외교 1호 사업입니다.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2월 당선인 신분으로 쿠르드 자치정부 총리를 만나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추진 방식이 좀 특이합니다. 석유공사는 쿠르드에 발전소와 변전소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해주는 대신 탐사 광구 8곳을 받습니다. 유전 개발이 전문인 석유공사가 경험도 없는 건설까지 맡은 것입니다. 석유공사는 탐사에 성공하면 원유를 받아 수익을 챙기고, 실패해도 보장 원유를 받기 때문에 '손해보지 않는 계약'이라는 것을 꾸준히 강조해왔습니다.

지난달 30일, 1차 성적표가 나왔습니다. 석유공사는 2018년 상반기 결산 결과 발표에서 "이라크 쿠르드 사업의 보장 원유 대금 지불 지연으로 4천627억 원의 손상차손이 발생했다"고 했습니다. 손해는 없을 거라던 기존 주장과 달리 4천억 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한 것입니다. 공사가 쿠르드 사업에 투자한 돈은 모두 1조 3천억 원입니다. 공사는 "투자금에서 손해액 4천627억 원을 뺀 나머지 8천3백억 원어치의 보장원유를 받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공사의 발표만 보면 8천3백억 원의 보장원유를 받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2008년 이명박과 쿠르드 총리의 모습

● 8천3백억 보장원유, 쉽게 받을 수 있을까

석유공사는 최근 쿠르드에 약속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모두 마쳤습니다. 변전소는 지난 6월에 공사를 끝냈고, 발전소도 지난달 준공 완료했습니다. 약속한 1조 3천억 원의 투자를 모두 끝낸 것입니다. 하지만 석유공사가 현재까지 회수한 금액은 100억 원 남짓에 불과합니다. 탐사 결과 원유가 나온 2개 광구에서 원유가 발견돼 얻은 수익입니다. 물론 당초 예상치보다 턱없이 낮은 양이었습니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투자금의 채 1%도 회수하지 못한 상황인 것입니다. 하지만 석유공사는 문제가 없다고만 합니다. 쿠르드 자치정부로부터 3천480만 배럴의 보장원유를 받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석유공사의 주장과 달리 보장원유를 받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선 석유수출 통제권을 쿠르드 자치정부가 아닌 이라크 중앙 정부가 쥐고 있습니다. 중앙 정부가 송유관을 잠그면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석유공사는 "이라크 중앙정부와는 협상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백승훈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라크 정부가 추구하는 석유정책과 결을 달리하는 계약을 맺는 것이어서 향후 외교적 충돌이나 갈등을 빚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쿠르드 정부가 3천480만 배럴이라는 엄청난 양의 원유를 줄만큼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큽니다.

● 지난 10년은 뭐하고…"시간 끌기 협상"

석유공사는 이미 2012년쯤부터 쿠르드로부터 받은 탐사광구의 실패를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공사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한창 진행하고 있을 때입니다. 하지만 공사는 이 기간을 허투루 날려버리고 2017년부터서야 보장 원유를 어떻게 받을지 쿠르드와 논의하고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원유를 받을지 세금은 누가 내야 할지 논의할 게 산더미인데 쿠르드 쪽에 투자를 다 끝낸 상태여서 협상의 지렛대가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2028년이 지나면 한 방울의 보장원유도 받을 수 없습니다. '보장원유를 받으면 된다'는 말만 되풀이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란 것입니다.

석유공사 내부에서는 "실패에 따른 책임을 피하기 위해 시간 끌기용 협상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2028년까지 남은 10년 동안 사람들의 관심이 적어질 때까지 협상을 질질 끄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공사는 올해 쿠르드 사업 손실액이 4천627억 원이라고 발표해 놓고도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SBS '끝까지 판다'팀의 취재가 시작되고 나서야 지난 10년간 계약을 담당한 직원을 인사 조치한 게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통상적인 인사운영 계획에 따른 조치"라며 발뺌하기 급급했습니다. 해외자원개발 문제를 오래 들여다본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장원유를 전부 받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면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 빨리 계약을 마쳐야 한다"며 "사업 진행 상 문제를 따져 책임을 묻는 작업도 하루빨리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8천3백억 원까지 날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장훈경 기자roc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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