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 주민들 "세월호 위해 4년 참았다, 우리도 이젠 먹고살아야"

진도/김승재 기자 2018. 9. 1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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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소 철거 미뤄지며 진도 항구 개발 지연.. "답답하고 화나"

'진도항 공사로 인해 (분향소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의 발걸음과 함께 이곳을 지켜 내겠습니다!'

10일 오후 찾은 전남 진도군 팽목항 세월호 분향소 바깥에는 이런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지난 3일 세월호 유가족 30여 명이 분향소에 걸린 희생자 사진을 가져갔지만 이날도 유족 1명과 지역 시민단체 회원 4명이 분향소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 9일 오후 손님이 한 명도 없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의 한 식당에 직원이 홀로 앉아 있다. 팽목항 상인들은“세월호 사고 이후 관광객 발길이 끊겼고 간간이 추모객만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김승재 기자

사고로 숨진 단원고 고(故) 고우재군의 아버지 고영환(51)씨는 "이곳에 기억의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약속이 없으면 분향소를 철거할 수 없다"고 했다. 전교조 등 광주·전남 지역 노조, 시민단체들은 최근 '팽목항 4·16(세월호 침몰일) 공원추진위원회'를 만들어 "항만 개발 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분향소 자리에 4·16공원을 조성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애초 세월호 유족들은 세월호 선체가 인양되면 분향소를 철거한다고 했다. 선체 인양 작업은 지난해 4월 종료됐다. 철거되는 줄 알았던 분향소 자리에 기념 공원을 세우겠다는 주장을 접한 진도 주민들은 화를 감추지 못했다. 팽목항 인근 상인들은 "자식 잃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남 같지 않고 시민단체 사람들도 좋은 일 한다고 생각했지만, 반의 반 토막 난 매출이 4년 반 가까이 회복이 안 되는데 이제는 우리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팽목항에서 식당과 민박집을 운영하는 양은하(53)씨는 "사고 첫해엔 유가족, 공무원, 기자들이 회의하고 일하라고 식당과 민박집을 무료로 개방하고 내가 지내는 방까지 내줬다"고 했다. "집안 살림이 어질러지고 전기요금이 20만원 더 나와도 아깝다는 생각을 안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씨는 "더는 그런 마음이 아니다"라고 했다.

양씨는 "유족들은 대부분 떠났는데 시민단체라는 사람들이 와서 상갓집 분위기를 만들어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라고 했다. 관광객은 사라지고, 세월호 추모객이 와도 30분 정도 있다 음료수 한잔 마시고 떠나기 때문에 매출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팽목항에서 15년째 낚시점을 해온 박원근(76)씨는 기자를 보자마자 "정말 화가 난다"고 했다. "장사가 안돼 2년간 가게 문을 닫았다가 2016년에 영업을 재개했는데 한 추모객이 '추모 공간에서 낚시 가게를 해서야 되겠느냐'며 면박을 줬다"고 했다.

진도군에 따르면 팽목항을 찾는 관광객 수는 세월호 사고 직전인 2013년 21만명에서 2015년 17만명, 2017년 8만명으로 줄곧 내림세다. 팽목항 선착장의 박선영(49) 소장은 "안산시도 올해 초 상인들 장사 안된다고 세월호 관련 시설물을 다 치우기로 했는데, 진도에만 계속 추모 시설을 두는 건 납득할 수 없다"며 "사고가 진도가 아니라 큰 도시인 광주나 목포에서 났더라도 이렇게까지 주민 입장을 무시했을까 싶다"고 했다.

팽목항 확장·개발은 진도 주민들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20년 전부터 요구해온 사업이다. 2012년 7월 1단계 공사를 마친 이 사업은 세월호 사고로 중단됐다. 2016년 10월부터 2단계 개발 공사를 시작해 2020년 9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분향소 철거가 미뤄질 경우 이곳에 들어설 여객 터미널 건설은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 모인 '4·16가족협의회' 관계자는 "팽목항 일대에 4·16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일부 유가족과 시민단체의 요구인데 우리가 간섭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지역 경제가 침체되자 일부 주민은 "인양된 세월호 선체를 진도에 들여와 추모객이라도 오게 하자"고 했다. 세월호선체진도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장길환(54)씨가 주도하고 있다. 진도에서 농원을 하는 장씨는 세월호 민간자원봉사팀장을 맡아 유가족들과도 가까운 편이었다. 장씨는 "유가족들이 세월호 선체를 단원고가 있는 안산시로 가져가겠다는 입장이어서 진도 유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세월호 선체를 진도에 유치하는 활동을 한 뒤로는 4·16가족협의회 관계자들이 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주민들은 "이제 진도가 아니라 세월호 섬이 됐다"고 했다. 팽목항 방파제 200여m 길에는 각종 추모 조형물이 줄지어 서 있고, 방파제 끝에 있는 등대엔 대형 노란 리본도 새겨져 있다. 팽목항에서 4.16㎞ 떨어진 곳에는 '세월호 기억의 숲'도 조성돼 있다. 오는 2021년 3월에는 팽목항 인근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국민해양안전관이 개관할 예정이다. 국비 270억원이 들어간 이곳엔 해양안전체험시설, 유스호스텔, 해양안전정원(추모공원), 추모 조형물이 들어선다.

진도군은 2013년 팽목항의 공식 명칭을 진도항으로 바꿨다. 진도를 대표하는 항구라는 것이다. 하지만 2014년 세월호 사고가 나면서 새 이름은 자리 잡지 못했고, 지금도 팽목항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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