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일본?..왕벚나무 원산지 110년 논란 종지부

강찬수 2018. 9. 1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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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제주시 봉개동의 자생 왕벚나무. 천연기념물 159호로 지정돼 있다. [사진 국립수목원]
일본 왕벚나무의 기원이 제주도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으나, 유전체 분석을 통해 일본 왕벚나무와 제주 왕벚나무가 서로 다른 별개의 종(種)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110년을 끌어온 논란이 다소 허무하게 종지부를 찍게 됐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원장 이유미)은 명지대·가천대팀과 함께 제주도에 자생하는 왕벚나무 유전체(게놈)를 완전히 해독했고,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을 세계적 저널인 '게놈 바이올로지' 9월호에 게재했다고 13일 밝혔다.
'게놈 바이올로지' 홈페이지에 소개된 제주도 자생 왕벚나무 관련 논문 [사진 국립수목원]
제주도 왕벚나무 유전체는 모두 8개의 염색체상에 있는 2300만개의 DNA 염기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두 4만1294개의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번 유전체 분석 결과, 제주도 왕벚나무는 제주에 자생하는 올벚나무를 모계(母系)로 하고, 벚나무 또는 산벚나무를 부계(父系)로 해서 탄생한 1세대(F1) 자연 잡종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일본 도쿄와 미국 워싱턴 등에서 자라는 일본 왕벚나무의 유전체와 비교 분석한 결과,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뚜렷이 구분되는 별개의 식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왕벚나무(일본명 요시노 벚나무)는 올벚나무를 모계로 하고 오오시마 벚나무를 부계로 해서 수백 년 전 인위적인 교배를 통해 만들어진 잡종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 자생 왕벚나무의 탄생 과정 [자료 국립수목원]
제주도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둘 다 잡종이지만 별개인 종이다.

연구팀은 제주에서 자연 잡종인 왕벚나무가 탄생한 것은 타가수분을 통해서만 번식하는 벚나무 종들이 제주도라는 섬의 고립된 환경에서 서로 다른 종 간에도 꽃가루받이를 허용함으로써 번식이 가능해진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연구를 이끈 명지대 문정환 교수는 "제주 왕벚나무는 잡종이 되면서 모계와 부계에는 없는 우수한 형질을 나타내는 '잡종강세'를 보여준 사례"라며 "꺾꽂이나 접붙이기로 번식하면 형질이 유지되지만, 종자로 번식하면 유전 형질이 분리돼 우수함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이번 자생 왕벚나무 유전체 해독을 통해 왕벚나무를 둘러싼 원산지와 기원에 관한 논란을 마무리할 수 있는 해답을 얻은 셈"이라며 "이번 연구 결과는 국내 특산 자생 왕벚나무 중 우수한 나무를 선발하고 보존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수목원 장계선 연구사는 "야생 수목의 유전체를 완전하게 해독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처음"이라며 "국내 식물 유전체 해독과 정보 분석 능력이 세계 최상위 수준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110년 된 왕벚나무 기원 논란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159호 왕벚나무가 지난 4월 화사하게 꽃을 피웠다.[제주도 제공=연합뉴스]
왕벚나무 기원을 둘러싼 논란의 뿌리는 19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프랑스인 에밀 타케 신부가 제주에서 자생 왕벚나무를 발견한 것이다.

이어 1932년 일본 교토대학 고이즈미 박사도 제주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에 따라 제주의 자생 왕벚나무가 일본으로 건너갔을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반면 일본 학자들은 일본 내에도 왕벚나무 자생지가 과거에 있었는데 사라졌을 뿐이라고 맞섰다.

하지만 오랜 기록만 있고 실제 제주 왕벚나무 자생지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1962년에 마침내 제주 왕벚나무 자생지가 발견됐다.

이후 일본 왕벚나무의 기원이 제주 왕벚나무라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으나, 이번 연구 결과로 논란 자체가 무의미해진 것이다.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은 "국내에 조경수나 가로수로 보급된 왕벚나무 가운데 대부분은 제주 자생 왕벚나무가 아니라 일본 왕벚나무일 가능성이 있다"며 "일본 왕벚나무를 제주 왕벚나무로 점차 바꿔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 연구사는 "DNA 바코드로 유전자를 확인하면 일본 왕벚나무인지 제주 왕벚나무인지 확인이 가능하다"며 "제주 왕벚나무 번식도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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