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일본엔 없는 '억울해서 나오는 눈물'

김미리·friday 섹션 팀장 2018. 9. 1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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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배신] [김미리와 오누키의 friday talk]

웃는 일보다 울 일이 많은 건 기분 탓일까요. 고독의 계절 가을이네요.

김미리(이하 김): 홋카이도 지진, 오사카 태풍…. 일본에 자연재해가 끊이질 않네요. 지진 뉴스 보다가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어요. 산사태 때문에 여동생을 잃은 남자가 시신 보고는 동생의 마지막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차분하게 말하더라고요. 한국 같으면 몸 가누지 못할 정도로 오열했을 텐데 너무 다르더군요. 어쩜 저리 냉정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오누키(이하 오): 왜 안 우느냐고요? 참는 거죠. 왜 안 슬프겠어요. 성인이니까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 거죠. 남녀노소 불문 같은 생각일 거예요.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울음 참는 걸 배우는 것 같아요.

김: 우는 모습을 왜 보이지 않는 걸까요.

오: 울음은 감정 표현의 하나인데 감정을 드러내면 타인과 충돌할 수 있잖아요. 그런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감정을 자제하는 거예요.

김: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어요. 감정을 나누며 의지하는 한국과는 정말 다르네요.

오: 너무 혼자만 참다 보니 오히려 좀 울자, 감정 좀 드러내자고 할 때도 있어요. 고베 지진 때 유행한 노래 가사에 '눈물 흘리는 만큼 강해질 수 있어'라는 대목이 화제가 될 정도였어요.

김: 제 눈에 안 우는 일본인이 신기하듯 오누키상 눈엔 잘 우는 한국인이 낯설기도 했겠어요.

오: 한국 사람이 잘 운다는 건 이미 알고 있어서 취재할 때 사고로 가족 잃은 유가족이 목놓아 우는 건 낯설지 않았어요. 다만 주변에서 자기 일처럼 함께 울어주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세월호 사건 때 외신 기자 회견이 있었는데 통역사가 감정에 북받쳐 통역을 못했던 장면도 인상적이었죠. 그런데 일본에선 보기 어려운 종류의 눈물이 한국에 있어요. 억울해서 나오는 눈물.

김: 억울하고 분해서 많이들 울지 않나요?

오: 한국어 배울 때 뜻을 가늠하기 어려운 단어가 '억울하다'였어요. 딱 일본말로 맞아떨어지는 단어가 없거든요.

김: 스포츠 경기 때 일본 선수들이 '져서 분하다'는 얘기를 하던데요. 비슷한 톤 아닌가요?

오: 한국 언론에서 '분하다' '억울하다'로 번역되는 일본 단어가 '悔しい(구야시이)'예요. 그런데 뉘앙스 차이가 있어요. 분한 대상이 남이 아니라 자신이에요.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해 후회되고 속상하단 의미예요. 반면 한국말로 '분하다'고 할 땐 원인이 외부에 있잖아요. 너 때문에, 저 사람 때문에 등등이요.

김: 그렇네요. 억울함은 나는 잘못이 없는데 타인의 잘못 때문에 빚어진 상황에서 생기는 감정이죠.

오: 일본 사람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억울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는 것 같아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가 너무 잦아서 순응하는 게 몸에 밴 듯해요.

김: 반면 한국의 시련은 주로 전쟁, 일제 강점 등 인간이 만든 인재(人災)네요. 명확한 적(敵)이 있고요. 그러니 적을 향한 억울함, 타인을 향한 분노가 자연스럽게 표출된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오: 한국 친구가 일본 사람들은 감정 표현을 그리 안 하는데 연애는 어떻게 하느냐고 하더라고요. 반대로 저는 한국에서 길 가다 연인들이 사람 보는 데서 싸우는 거 보고 놀랐어요. 저렇게 싸우고 어떻게 사귀나 싶었는데 불같이 울고 불며 싸우다 시간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지내고(웃음). 참, 한류의 주요 인기 요인 중 하나가 뭔지 아세요?

김: 꽃미남?

오: 한국 남자의 눈물이에요. 드라마에서 남자들이 우는 장면이 있는데 넘 신기한 거예요. 이렇게 남자가 사랑 (따위) 가지고 울기도 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데 게다가 꽃미남의 눈물이라니! 뭔가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일본 아줌마들의 마음을 적셨죠.

김: 음, 꽃미남의 따뜻한 눈물이라….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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