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美매체 VOA에 돌연 "나가라"

선정민 기자 2018. 9. 1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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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 등록 기준에 안 맞아" 일부 기자에 "단톡방서 빠져라"
VOA, 최근 판문점선언 오역 지적

청와대가 14일 국내에서 취재 중인 미국 매체 미국의 소리(VOA) 방송 소속 일부 기자에게 "보도 지원을 하기 어렵고, 외신 기자들이 가입해 있는 '청와대 단체 카톡방'에서 나가 달라"고 했다. 청와대 직원과 외신 기자 등 140여 명이 가입한 해당 카톡방은 청와대 브리핑과 공지(公知), 취재 관련 문답 등이 오가는 곳이다.

청와대 해외언론비서관실은 이날 "외신 기자 등록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기자가 있는 것 같다"며 VOA 측에 이 같은 입장을 전했다. 이와 관련, VOA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VOA 한국어 서비스는 한국어로 기사를 내기 때문에 우리가 소관하는 매체가 아니다. (카톡 방에서) 나가야 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현재 서울에서 활동 중인 VOA 기자 3명 중 한국계 기자 한 명을 지목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해당 기자가) 외신 기자 등록 운영 규칙상 지원 대상인 '서울에 지국을 둔 상주 특파원' 등에 속하지 않으며, '불특정 다수'가 쓰는 공용폰으로 카톡방에 가입돼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대해 VOA 측은 "해당 기자는 한국어 능통자로서 라디오·인터넷 뉴스를 취재·보도하고 있다"며 "잦은 순환근무 특성상 여러 명이 사용한 것처럼 보일 뿐 1대의 정당한 '업무용 휴대폰'을 사용 중"이라고 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VOA가 최근 북한산(産) 석탄의 국내 밀반입 의혹, '판문점 선언 오역(誤譯) 논란' 등 현 정부에 껄끄러운 보도를 한 것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특정 보도나 특정 기자를 문제 삼는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미 워싱턴DC에 있는 VOA 본사는 이날 청와대의 이의 제기를 보고받고 경위 파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단체 카톡방에서 나가라고 했던 기자는 미 본토를 오가며 3개월 단위 순환근무 중인 취재기자다. 청와대는 영어 뉴스를 담당하는 미국인 기자와, 영상 취재를 주로 담당하는 한국계 기자는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VOA 측에선 "(청와대가 문제 삼은) 취재기자의 전임자가 '석탄 의혹'을 활발히 보도한 게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고 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본지에 "외신 기자 등록과 관련한 내규에 따라 서울 지국에 상주하지 않거나 아·태 지역에 소속돼 서울에서 활동하지 않는 경우 의무 지원 대상은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VOA 측은 "(해당 기자는) 작년에 '3개월 순환근무' 등 조건을 청와대에 설명하고 카톡방에 들어갔다"고 했다. 앞서 청와대는 VOA에 '외신'에 해당한다고 보고 국내 언론 대응을 하는 춘추관이 아닌 해외언론비서관실에 등록하라고 안내했었다.

한 외신 기자는 "국회 출입 경력 등을 요구하는 현행 제도로는 해당 기자는 ('국내 기자'로서) 춘추관 등록조차 거부당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기자 교체 주기가 잦은 경우에는 제대로 된 등록·지원이 어렵다"며 "그 경우 청와대 정보가 오가는 단톡방에 상주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VOA는 1942년부터 77년째 한국어 방송 중이며 라디오, TV, 인터넷을 통해 48개 언어로 전 세계 2억3000여 만명에게 국제 정세와 미국의 정책 등을 전하고 있다. VOA 직원 대부분은 미 연방 공무원이다. 미 의회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지만 편집권의 독립을 표방하고 있다.

북한 관련 뉴스를 많이 다뤄 온 VOA는 지난 7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위 전문가 패널 보고서를 인용해서 '북한산 석탄'의 국내 반입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지난 12일에는 남북이 공동으로 유엔에 제출한 판문점 선언 영문본에 대해 "'연내(年內) 종전 선언 합의'란 내용을 담고 있어 북한의 해석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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