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 전 벌어진 6.25 전쟁..이제는 '종전'을 말한다 [박수찬의 軍]
1950년 9월 15일 새벽 인천 앞바다. 어둠을 뚫고 수많은 함정들이 인천 월미도 인근 해역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북한군 1000~2000여명이 지키고 있는 인천을 점령하고 서울로 진격하는 것이었다. 미 해군 제7함대가 주축이 된 유엔군 함정 261척과 미 육군 제10군단 예하 한국군 2개 연대를 포함한 7만여명으로 구성된 지상군 부대는 이날 새벽 월미도를 공격, 점령한 뒤 인천 시내로 진격했다. 6.25 전쟁의 판도를 바꿨던 인천상륙작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행사는 올해도 어김없이 열리지만 행사를 둘러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와 핵실험이 중단되고, 남북 군사당국 간 신뢰구축 등에 대한 협의가 진행되는 등 평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남북 정상이 4.27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연내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1950년 9월 15일은 전쟁의 공포가 뒤덮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군은 38선 전역에서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전차와 전투기도 없었던 한국군은 수류탄을 들고 북한군 T-34 전차를 공격하는 등 필사적으로 맞섰으나 서울을 내주고 후퇴해야 했다.
8월 26일 인천상륙작전 주력부대인 제10군단이 편성됐다. 10군단은 미 제1해병사단과 제7보병사단으로 구성됐다. 7보병사단은 병력이 부족해 한국인 청년 8000여명을 선발, 일본에서 훈련시킨 후 배치했다. 이들이 카투사(KATUSA)의 시초다. 한국군에서는 제1해병연대와 제17연대가 참가했다.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맥아더의 계획은 9월 9일 미 합참의 승인을 받았다. 승인과정에서 미 합참과 해군, 해병대는 인천상륙작전을 강하게 반대했다. 인천 앞바다가 간만의 차가 매우 심해 9월은 15일부터 3일만 상륙이 가능하고, 이때를 놓치면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맥아더는 아군뿐만 아니라 적도 상륙작전은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므로 이를 역이용하면 전략적 기습효과를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해 관철시켰다. 그 결과 상륙이 시작된 지 하루만인 9월 16일 교두보를 확보하고 서울을 향해 진격, 28일 서울을 탈환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군과 유엔군은 23일 낙동강 전선에서 북진을 시작했다. 강하게 반격하던 북한군은 인천과 서울 등이 함락됐다는 소식에 무너졌고, 한국군과 유엔군은 상륙작전 개시 후 악 보름 만에 38선 이남을 모두 회복한 뒤 북진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시점까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다. 북한군은 10만 명의 병력을 잃었으며,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시점까지도 전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중공군에 전쟁 주도권을 내줘야 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며, 전쟁의 공포가 한반도를 뒤덮었다.
◆2018년 9월 15일, 종전선언이 이뤄질까
인천상륙작전이 실시된 지 68년이 지난 2018년 9월 15일, 오는 18~20일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 직후 북한 비핵화 협상이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개최되는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큰 의제는 비핵화와 군사적 긴장완화다. 이 의제들은 종전선언이라는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미국의 대북 군사적 압박과 제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북한은 미국의 태도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18일 “반대파들이 득세하여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싱가포르 공동성명도 외면하고 대통령이 약속한 한갓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종전선언마저 채택 못 하게 방해하는데 우리가 무슨 믿음과 담보로 조미관계의 전도를 낙관할 수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종전선언의 무게감을 낮춰 미국의 호응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북한은 미국에 의한 체제 안전을 보장받은 이후에 핵문제를 협상테이블에 올리려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핵시설 신고 등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줄 건 다 주고도 북한 비핵화에 실패하면 미국에 대한 위협은 그대로 남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물러서기 힘든 대목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식의 논쟁으로 보이지만 종전선언이라는, 누구도 거부하기 힘든 대명제라도 외교전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면 물러설 수 없는 것이 국가간 협상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의 복안은 무엇일까. 종전선언을 둘러싼 북한과 미국의 입장차를 좁힐 방법이 있을까.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6일 대북특사단 방북 결과와 남북정상회담 일정을 설명하면서 “남북 간에 진행중인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대화를 계속 진전시켜 나가고, 남북정상회담 계기에 상호 신뢰 구축과 무력충돌 방지에 관한 구체적 방안에 합의하기로 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 간에 신뢰가 구축되고 우발적 무력충돌을 방지하는 장치들이 마련된다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위험은 낮아지게 된다. 북한이 ICBM 시험발사나 핵실험을 재개하지 않는 한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도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종전선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무력충돌 가능성을 낮춤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효과가 가능하다. 체제를 위협하는 요소가 줄어들게 되면 북한도 핵무력 유지를 고집할 필요가 낮아져 북미 비핵화 협상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군사적 신뢰구축과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는 쉬운 일이 아니다. 외교관계에서 가장 속도가 느리게 진행되는 분야가 군사 분야다. 그만큼 높은 수준의 신뢰가 구축되어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번 신뢰가 구축되면 그만큼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장점도 있다. 한반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면 종전선언의 명분도 자연스레 생기는 만큼 문재인정부는 지지부진한 북미 비핵화 협상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종전선언 문제를 재래식 군사력 통제 및 축소 등을 포함한 국방 분야로 돌파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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