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통계 조작의 유혹④] "통계기관 수장 강제사임?..통계조작 가능성 커질 것"

조진형 2018. 9.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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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조작의 유혹④] 루이스 마르티네즈 미 시카고대 교수 인터뷰
루이스 마르티네즈 미국 시카고대 해리스스쿨 교수.
“국가의 통계기관 수장이 정권의 압력을 받고 사임하는 일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2004년 제 모국(母國)인 콜럼비아에선 통계청장이 ‘범죄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한 뒤 사임했지요.”

루이스 마르티네즈 미국 시카고대 해리스스쿨(공공정책대학원) 교수(34)는 정치 체계에 대한 실증 분석에 정통한 정치경제학자다. 콜럼비아 안데스대를 졸업해 2016년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그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인공위성으로 관측한 ‘야간 불빛’을 활용해, 독재 정권의 국내총생산(GDP) 조작 사실을 밝혀낸 연구를 발표했다. 위성 불빛을 ‘1인당 국민 소비’로 치환해 추정했을 때, 독재 정권의 GDP가 민주주의 국가에 비해 더 빠른 증가율을 보이는 등 ‘GDP 부풀리기’가 의심된다는 게 연구의 핵심이었다.
한국에선 황수경 통계청장의 돌연 경질을 계기로 국가 통계 관리에 대한 신뢰 문제가 떠오르는 가운데, 본지는 지난 12일 마르티네즈 교수를 e메일 인터뷰했다.

그는 “민주주의 국가의 통계기관 수장은 어떤 상황에서든 양심에 따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며 “만약 수장이 불명확한 사유로 강제 사임됐다면, 이는 ‘국가 통계가 조작될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Q : 연구의 취지는.
A : “야간 불빛을 활용한 대다수 기존 연구는 국가별 경제 활동의 변동을 추정하기 위한 목적이다. 비슷한 아이디어에서 착안한 내 논문은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갔다. 원천적으로 조작이 불가능한 ‘야간 불빛’을 활용해, GDP 왜곡 가능성이 있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를 비교 검증한 것이다. 또 내 연구는 국가 통계가 조작되는 메커니즘과 제도적 장치까지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지난 2012년 촬영된 NASA의 항공 위성사진. 후진국에 속하는 북한은 불빛이 흐릿하다. 한국(남한), 일본 등과 대조적이다. [로이터=연합뉴스]

Q : 논문에 따르면 GDP 등 경제 지표 조작은 주로 독재 정권에서 발생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통계 조작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얘긴가.
A : “내 연구는 독재 정권의 GDP 왜곡이 (민주주의 국가에 비해) 만연한지 검증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안타깝게도 이 연구의 방법론을 통해 민주주의 국가가 실제 GDP를 왜곡하는지 여부를 일일이 파악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물론 모든 민주주의 국가의 경제 지표 수준이 같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에 활용된 국제인권감시단체 자료를 살펴보니 미국과 한국의 민주주의 지표 모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두 국가의 통계 조작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암시한다.”

Q :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A : “두 나라 모두 선출된 의회와 행정부, 법원과 독립적인 중앙은행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 두 정부의 경제 지표가 믿을 만하다는(reliable)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같은 민주주의 국가라도 의회제에 비해 대통령제 국가에서 GDP 왜곡 가능성이 다소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튼튼한 의회제 민주주의로는 서구 유럽 국가를 들 수 있고, 다소 약한 대통령제 민주주의로는 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Q : 권력의 통계 조작 행위를 적발해내는 학계의 노력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A : “특정 연구가 실질적인 정책 대안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정짓긴 어렵다. 다만 내 연구를 통해 몇몇 정책적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예컨대 개도국들은 세계은행(WB) 국제개발협회(IDA)로부터 융자 지원 등을 받은 ‘이후에만’ GDP를 왜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뒤집어 얘기하면, 이들 국가는 융자 지원을 받는 동안 통계를 조작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빈국 자격으로 금전 지원을 받는 이득이 경제 지표를 왜곡하려는 유인을 상쇄시킨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지난달 경질된 황수경 전 통계청장. [연합뉴스]

Q : 당신이 태어난 콜럼비아는 과거 독재정권 산하였다. 유년기 경험이 연구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A : “가끔 특정 논문을 읽다보면 ‘논문이 묘사한 현상이 내 모국에서 어떻게 벌어질까’란 궁금증이 든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콜럼비아와 상관이 없다. 인플레이션을 과소 집계했다가 경제 위기에 놓인 최근의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 사례가 이번 연구의 계기다. 이들 국가는 민주주의적 통제가 점차 힘을 잃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뢰할 만한 국가 통계가 발표되기 위해선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Q : 최근 한국에선 통계청장이 경질됐다. ‘현 정부의 경제 성장 기조를 뒷받침하지 못한 통계 지표를 공표한 괘씸죄’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A : “그런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지난 2004년 콜럼비아의 시자르 카바렐로 통계청장은 ‘(윗선으로부터) 범죄율을 발표하지 말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폭로한 뒤 사임하기도 했다. 중요한 사실은, 시민권이 기반된 민주주의 국가의 공무원들은 양심에 따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권으로부터의 불이익을 우려할 필요 없이 말이다.”
(※카바렐로 통계청장이 언급한 ‘범죄율 조사’에 따르면, 콜럼비아 주요 도시의 치안 수준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콜럼비아 언론 세마나는 전했다. 예컨대 전년도(2003년) 수도 보고타에서 1시간에 44건의 강도 사건이 발생했다. 칼리에선 주민 100명 중 12명이 범죄 피해를 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콜럼비아 국민 세 명 중 두 명이 범죄 피해를 입더라도 신고할 의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세마나는 전했다.)

Q : 그게 무슨 말인가.
A : “만약 통계기관의 장(長)들이 강제로 사임했다면, 이는 ‘정권의 통계 조작 가능성이 커진다’는 경고 메시지(ring the alarm)로 해석할 수 있다. 국민 입장에선 정부가 통계 조작을 벌이는지 감시하는 계기가 된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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