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젊은 예술인 미래 걸린 '병역특례 감축' 신중해야

2018. 9. 17.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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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197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했던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왼쪽 사진). 그의 병역을 둘러싼 논란은 현행 예술·체육계 병역 특례 입법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으로 병역 면제를 받고 활발하게 활동 중인 피아니스트 조성진. 경기도문화의전당·유니버설뮤직 제공

17세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1971년 국제 콩쿠르 우승하며 세계적 주목 받았지만 병역 문제로 한동안 귀국 못해
이후 73년 ‘병역 특례법’ 신설… 예술인 특례 대상·자격 명확
연평균 혜택 인원 30명 불과, 고작 수십 명 軍 보충하느니 국적·커리어 유지 도움 줘야

예술·체육인들의 국방의 의무를 둘러싼 문제는 1970년대 클래식 음악계에서 처음 불거졌다. 젊고 재능 있는 연주자가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면서다.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은 17세이던 7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22세이던 76년에는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했다. 1, 2위가 모두 옛 소련 음악가에게 돌아갔지만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예후디 메뉴힌은 끝까지 “1등은 강동석”이라고 외치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현지 언론들은 소련의 정치적 텃세만 아니었다면 한국에서 온 동양인에게 우승이 돌아갔을 것이라고 대서특필했다. 강동석은 스캔들의 중심에 섰고, 세계 유명 콘서트에서 단골로 초청받는 연주자가 됐다. 81년 프랑스 파리의 롱티보 콩쿠르는 고작 27세에 불과했던 강동석을 심사위원으로 초청하며 이 스캔들에 신빙성을 더했다.

약소국의 설움을 개인의 재능으로 극복했건만, 강동석은 금의환향은커녕 귀국조차 못했다. 병역 문제를 기피했다는 죄목 때문에 여권조차 갱신하지 못했다. 가진 재능이라곤 음악뿐이었던 그에게 음악과 단절된 3년의 군 복무는 직업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는 강동석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두 번째 스캔들이 되었고, 미국은 그에게 기꺼이 시민권을 주었다. 이후 사면된 그는 83년에야 귀국해 첫 독주회를 열었다. 하지만 1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그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들이 됐다.

73년 도입된 ‘병역의무의 특례규제에 관한 법률’에 예술 및 체육 분야가 신설된 것은 강동석 스캔들의 영향이 컸다. 해외 콩쿠르 입상자를 포함시키는 내용은 그보다도 늦은 83년에 추가돼 실제로 96년까지 수혜자가 없었다. 2017년까지 이 법령으로 병역혜택을 받은 예술인은 총 796명으로, 연평균 편입인원이 약 30명에 불과하다. 전체 대체복무 인원이 연간 2만8000명 수준인 것을 고려할 때 턱없이 적은 비율이다.

이처럼 예술인 보충역이 적은 이유는 일정 요건이 되면 기관이나 회사에서 임의로 추천할 수 있는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에 비해 예술 분야는 특례 대상과 자격이 명확하게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인정하는 국제 예술경연대회 2위 이상 입상자, 혹은 국제대회가 없는 국악 같은 분야의 경우 국내 예술경연대회 우승자, 그리고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 이수자만이 보충역 대상이다. 음악의 경우 원래 유네스코에 등록된 123개 국제 음악경연대회를 모두 인정하다가 2015년 29개 대회로 대폭 축소했다.

그럼에도 지난 10년간 예술계 전체 수혜자가 285명으로 증가 추세를 보인 것은 그만큼 한국 예술계의 수준이 향상된 결과이지 법적 요건이 완화되어서가 아니다. 이는 체육계도 마찬가지다.

병역 특례요원 감축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6년 국방부가 출산율 저하 등을 이유로 병역 특례를 단계적으로 감축하겠다고 발표한 뒤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교육계, 산업계도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과학기술계는 매년 수천명이 혜택을 받는 이공계 병역 특례제도가 우수 인력의 해외 유출을 막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강동석 사례처럼 문화예술계에도 해당된다. 남녀 모두에게 국방의 의무를 부여하는 이스라엘은 실력 있는 음악인들의 국적 및 커리어 유지를 위해 ‘아웃스탠딩 뮤지션’ 제도를 도입해 군복무를 면제해주고 있다. 그 수혜자 중 한 명이 현재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인 피아니스트 아비람 라이케르트이다.

무엇보다 최근 문화예술계 병역 특례 수혜자들은 대부분 평범한 중산층 가정 출신들이다. 체육계 수혜자 중에는 저소득층이 훨씬 더 많다. 손흥민처럼 몇 억원대의 연봉을 받는 체육인은 극소수다.

국회는 국민들의 상실감에 편승해 법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숙고해보길 바란다. 열심히 노력해서 정당한 자격을 얻은 예술계나 체육계 젊은이들의 미래를 담보 삼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1년에 고작 수십 명의 예술·체육인들로 군대를 보충하느니 복무 중인 수백만 군인들의 인권과 처우를 개선하는 편이 국민 절대다수에게 진정한 이득 아닐까.

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문화정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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