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나쁠까 차가 나쁠까, 죄수에게 매일 먹였더니

김성희 2018. 9. 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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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4)
18세기 유럽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창 인기를 끌던 커피의 유해성을 두고 논란이 일자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3세는 한 살인범에게 죽을 때까지 날마다 커피를 마시도록 하고, 다른 살인범은 차를 마시도록 했다. 누가 먼저 죽나 비교해 커피의 독성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3세(좌). 그는 한창 인기를 끌던 커피의 유해성을 두고 논란이 일자 커피의 독성을 증명하고자 했다. 이 이야기는 『세계 상식 백과』(우)에 나오는 이야기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이를 감독하기 위해 두 명의 의사가 임명되었는데 이 긴 실험 동안 가장 먼저 죽은 사람은 두 의사였다. 다음으로는 1792년 왕이 암살되었고, 그 뒤 수년이 지나 두 살인범 중 한 사람이 먼저 죽었다. 83세였는데 차를 마셔온 쪽이었다.

이건 『세계 상식 백과』(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커피 논란과 관련해 종종 이야기되는 일화다. 물론 일상에서 늘 주고받는 인사말, “차나 한잔할까” 하면 으레 커피를 떠올리는 우리나라에선 더는 커피의 유해 여부가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지 않지만 말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7위의 커피 수입국이며 커피 시장은 연 10조 원에 이른다. 커피 전문점이 전국에 10만 개가 있으며, 국민 일 인당 연 512잔을 마신다는 통계도 나왔다. 가히 ‘커피 공화국’이라 할 만하니 굳이『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잔 할까』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커피에 관해 알아보는 것이 무용하지 않을 터다.

더구나 한때 와인을 두고 그랬던 것처럼 커피 믹스는 상것, 아메리카노는 양반으로 치는 등 커피 감식안을 갖추는 것이 취미의 고상함이나 ‘교양’의 척도로 받아들여지니 말이다.

커피가 이토록 사랑받으니 자연 커피에 관한 책도 수두룩하다. 커피를 소재로 한 책까지 들면 천 단위를 헤아린다. 그중 지식이란 측면에서 차분하되 그리 딱딱하지 않게 역사와 문화, 정치·경제까지 들려주는 『커피북』(니나 루팅거 외 지음, 사랑플러스)이 재미와 흥미를 갖췄다.

『커피북』, 니나 루팅거 외 지음, 사랑플러스. [중앙포토]

커피 원산지가 에티오피아가 원산지라든가, 처음 발견한 이가 칼디(고대 아랍어로 ‘뜨겁다’란 뜻)란 염소 지기였다든가, 영어나 프랑스어 그리고 이탈리아어에서 커피를 뜻하는 말이 터키어 카베(Kabeh)에서 유래되었음은 어지간한 커피 애호가들에게 상식에 속한다 하겠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커피를 ‘뜨거운 음료’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1000년에서 1300년 사이 일이지만 그 훨씬 전인 575년에서 850년 사이에 일종의 전투식량으로 처음 먹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에티오피아 갈라 부족 전사들이 빻은 커피 씨앗을 동물성 지방과 섞어 동그랗게 뭉쳐 도보여행이나 전투 때 신속한 기복 회력을 위해 먹었다고 한다.

미국이 커피 세계화의 ‘일등 공신’이자 세계 최대의 커피 소비국이 된 것도 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의 전투력 향상을 위해 커피를 대량 보급한 것이 계기가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 또한 전시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근로자들을 ‘각성’ 시키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사실도 마찬가지다.

또 있다. 17세기에 영국에 처음 등장한 커피하우스는 1페니를 주고 커피 한 잔만 주문하면 오랫동안 신문을 읽거나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유용한 지식을 얻고 나눌 수 있었기에 ‘1페니 대학’이라 불렸단다. 불온세력이 힘을 키운 ‘양산박’이라 하겠는데 프랑스 대혁명 뒤에는 이 같은 ‘살롱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제 구문이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1호점'. 창업자 하우드 슐츠는 집도 직장도 아닌 장소를 현대인들에게 제공해 성공했다. [사진 스타벅스 홈페이지]

문화현상으로도 꼽히는 ‘스타벅스’도 그 맥을 잇는단다. 창업자 하우드 슐츠는 유럽식 고급 커피를 미국에 소개한 덕분이 아니라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가 만들어낸 ‘제3의 장소’, 그러니까 집도 아니고 직장도 아닌 장소를 현대인들에게 제공한 것이 성공 비결이란 게 지은이의 설명이다.

‘민트 모카 칩 프라푸치노’ 같은 국적 불명의 음료를 수상히 여기고 미국 등 고작 네 곳에서 매년 1360만 톤이나 되는 커피를 로스팅하는 업체가 전 세계에 신선한 고급 커피를 공급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표하긴 한다.

19세기 영국 작가 아이작 디즈레일리는 “커피하우스의 역사가 곧 그 나라 예와 도덕과 정치의 역사다”라고 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커피는 이제 문화의 일부다. 커피가 인체에 주는 생리적 효과보다 커피 마시는 행위의 사회적 측면이 더 중요하니 말이다. 그래도 커피가 교양과 문화의 잣대가 되는 것은 어째 불편하다. 음식이라면 또 몰라도.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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