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만 'S급 인재' 빨아들이는 中 반도체.."한국도 예외 아니다"

이상훈 기자 입력 2018.09.17. 17:27 수정 2018.09.1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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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D램 점유율 15년새 ⅓토막
산업 망가져 올해만 300명 중국행
韓기업 인수로 성장 BOE와 비슷
국내 주력산업 보호·인재관리 절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라인 모습. /서울경제DB
[서울경제] 최근 대만의 조사 업체 H&L 매니지먼트컨설팅 타이페이에 주목할만한 통계가 나왔다. 올 들어 8월까지 대만의 수석연구원급 300명 이상이 중국 반도체 기업으로 회사를 옮겼다는 내용이다. 주로 메모리 업체에서 많이 건너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연구원이 7,000명 정도고 여기에서 수석 연구원급 이상이 전체의 10%(700명)라고 치면 이 중 43%가 나간 셈이다. 어마어마한 인력 유출로 볼 수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한때 한국과 경쟁하던 대만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몰락으로 대만 기술인력의 중국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국내 업체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 대만의 위세는 대단했다. D램 분야에서 난야·윈본드·파워칩 등 3개사가 대표격으로 활동했다. 시장 점유율도 12%에 육박했다. 2010년에도 6.7%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에 완전히 밀렸다. 그나마 난야(3.2%, 2018년 6월 기준)가 체면치레를 하지만 윈본드의 점유율은 고작 0.7%에 불과하다. 둘을 합쳐봐야 3.9%라 최고 시절의 3분의 1토막이다. 메모리 산업이 이렇게 쪼그라들다 보니, 기술 인력도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대만 엔지니어의 중국행이다.

조짐은 일찌감치 보였다. 지난 2015년 난야를 이끌던 대만 메모리업계의 대부 찰스 카오 사장이 중국 업체 칭화유니로 옮기며 금이 가기 시작한 둑은 3년만에 무너졌다. 전문가들은 대만의 기술인력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 달성을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임원은 “중국이 그간 기술력 부족을 엔지니어 스카우트를 통해 해결해 왔다”며 “특히 언어와 문화 측면에서 이질감이 전혀 없는 대만인은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작게는 기업, 크게는 주력 산업을 보호하고 키우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중국의 디스플레이 업체 BOE가 국내 업체 하이닉스의 LCD 사업인 하이디스를 인수해 삼성·LG디스플레이를 위협할 만큼 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도 국내 디스플레이 기업이 액정표시장치(LCD)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전환하면서 방황하는 국내 인력에 대한 중국의 입질이 계속되는 상황”이라며 “국내 산업이 망가지면, 그간 쌓아왔던 기술 역량이 일거에 훼손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다른 관계자는 “중국이 올 하반기에 겨우 낸드를 개발했고, D램은 내년 상반기에나 내놓을 것으로 예상될 만큼 걸음마 단계인 데도 메모리 업계 최대 다크호스로 중국이 꼽히는 이유는 대만 엔지니어의 흡수가 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비메모리 업체와의 협업도 눈에 띈다. 특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는 대만의 아성에 가깝다. TSMC가 시장점유율 50.41%(2017년 기준)로 1위, UMC가 8.16%로 3위다. 삼성전자(6.72%, 4위)보다 앞선다. 중국 메모리 업체 푸젠진화의 경우 최근 UMC와 공동으로 56억 달러를 투자해 중국 진장시에 D램 생산공장을 짓고 있을 정도로 중국과 대만의 밀월은 이제 수면 위로 완전히 올라온 상태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이제는 ‘중화권의 반도체 굴기’로 개념을 확장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진단을 귀담아들어야 할 시점까지 왔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실무자는 “중국으로서는 미국과의 통상분쟁으로 기술 격차 축소에 더 혈안일 수밖에 없다”며 “대만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한 인력 유출부터 말 그대로 S급 인재 영입까지 대만 인재 활용에 사활을 걸 것”이라고 말했다.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우리로서는 초 격차를 유지해 산업 주도권을 계속 쥐고 가야 인재 관리도 쉽다”며 “인력 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기업은 낭패를 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