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세 떠나 9년 수련 "위안 주는 소리꾼 될 것"

광주광역시/김경은 기자 2018. 9. 18.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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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방울국악제 대상 정상희씨

"세 번째 도전 만에 대상을 받았어요. '최고의 경쟁자는 나 자신'이란 각오로 저를 시험해 보고 싶었거든요. 막상 무대에 서면 제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올지 몰라 끝나는 순간까지 벌벌 떨었지만, 진짜 소리꾼이라는 세상의 인정을 받았으니…. 좋은 목소리를 주신 엄마 그리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겉으론 담담했고, 속으론 뜨거운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17일 오후 세 소리꾼이 경합한 임방울국악제 결선 무대에서 연노랑 한복을 입고 노래한 정상희(39)씨는 경연자 중 가장 높은 점수(98.6점)를 받으며 판소리 명창부 대상인 대통령상을 거머쥐었다. 2년 전 처음 출전해 최우수상(방일영상)을 받았으나, 지난해에는 같은 상을 한 번만 받을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아쉽게 최우수상을 놓쳐야 했다. 그리고 올해 세 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순금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정씨는 "한 해 한 해 도전할 때마다 실력이 쑥쑥 느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심사위원 7인의 점수가 공개될 때마다 환호를 쏟아냈다.

제26회 임방울국악제 결선 무대에서 판소리‘춘향가’중‘초경이경’대목을 부르고 있는 정상희씨. 그는“무대에 오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리고 춘향의 심정에 빙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영근 기자

이번 대회에서 그는 동초제 판소리 '춘향가' 중 '초경이경'을 불렀다. 어사가 된 이몽룡이 거지 꼴을 하고 월매와 향단이를 앞세워 옥중에 있는 춘향이를 만나는 대목이다. 절절 끓는 목소리로 사설을 토해낼 때마다 객석에선 "잘한다" "얼쑤" 등 추임새가 터져 나왔다. 정씨가 이 도령의 손을 덥석 잡고 "아이고, 도련니임!" 하고 부르는 대목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전북 정읍이 고향인 정씨는 아홉 살 때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스승은 전북 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 보유자인 김명신 명창이다. 전남대 국악과(97학번)를 졸업하고 스물두 살 때인 2001년 상경했지만, 돈 없고 '빽' 없는 병아리 소리꾼에게 삶은 하루 벌어 하루 풀칠하기도 빠듯한 생활 전선(戰線)이었다. 간간이 무대에 서고, 제자도 맡아 가르치길 9년, 30대로 접어들자 고비가 왔다. "어차피 돈도 못 버는 거 '오롯이 내 공부를 해보자!' 다짐했죠. 내가 왜 소리를 해야 하는지, 최고가 되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스스로를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2010년 세상과 연을 끊다시피 하고 산에 들어갔다.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소리를 했다. 온몸에 땀이 줄줄 솟는 여름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퍼붓는 함박눈에 길이 막혀 오도 가도 못한 채 소리만 해야 하는 겨울도 버겁긴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9년을 보내고 나니 수양한 기분이랄까…. 다섯 바탕 중에서도 길다고 소문난 동초제 '춘향가'는 다 부르려면 여덟 시간 넘게 걸려요. 완창 한 번 하고 나면 애라도 낳은 것처럼 온몸이 아프고 뼈마디가 늘어져요. 그래도 하루 이틀 쉬고 나면 또 부르게 돼요. 누가 들어주지 않아도 소리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6년 전 생애 첫 음반인 '정상희 민요 1집'을 냈고, 2년 전엔 '춘향가'를 완창했다. "제 삶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도 소리 안에서 재미를 찾을 거고요. 내년 봄쯤 판소리 '적벽가'를 완창할 계획이에요. 1년에 한 바탕씩 완창하는 게 목표인데 주위에서 다들 뜯어말려요, 하하! 제 소리를 듣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소리꾼이 되고 싶습니다."

[제26회 임방울국악제 수상자]

◇판소리 명창부▷ 임방울대상(대통령상) 정상희▷최우수상(방일영상) 정혜빈▷우수상 신정혜▷준우수상 김문희

◇판소리 일반부▷ 최우수상 김정훈▷우수상 이진솔▷준우수상 조동문▷장려상 이나경

◇가야금병창▷ 최우수상 김서윤▷우수상 이래경▷준우수상 김가연▷장려상 이주아

◇농악▷ 대상 우도농악담양보존회▷최우수상 김천농악단▷우수상 지산농악보존회▷준우수상 고창방장농악단

◇시조▷ 최우수상 양연화▷우수상 장창용▷준우수상 이혜정▷장려상 강재일

◇무용▷ 최우수상 하나경▷우수상 이수지▷준우수상 류일훈▷장려상 나윤정

◇기악▷ 최우수상 강태훈▷우수상 조소정▷준우수상 이승호▷장려상 이준희·김성근

◇퓨전판소리▷ 최우수상 전통국악앙상블 놀音판▷우수상 강윤숙의 재즈여행▷준우수상 나비▷장려상 뽀삐와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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