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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70주년.. '여수 전국문학인대회'

조용호 입력 2018.09.18. 03:12
“제주 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하여 출동 대기 중이던 국군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의 봉기로 발생된 여순사건은, 그 진압과 토벌의 과정에서 수많은 양민들이 부역자로 몰려 학살되었다. 그들의 억울함을 위무하고 화해와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자, 사건 발생 60주년을 맞아 시민사회단체와 여수시는 희생자들의 매장지 근처에 작은 위령비라도 세워보자는 뜻을 모았다. 하지만 위령사업은 계속 지지부진하였는데, 비문의 중심이 되는 ‘학살’이라는 단어를 ‘희생’으로 바꿔야만 한다는 게 그들의 방침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인이자 유족의 한 사람으로 나는 그 비문을 새로 짓는 일을 맡게 되었다/ ……/ 이 여섯 점 침묵 속에 그들의 원혼과 유족들의 통한을 한 줄도 빠짐없이 모두 새겨넣었다.”
여수시 만성리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에 모인 한국작가회의 사무국장단. 이들은 70년 만에 처음으로 가해∙피해 당사자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 진행할 ‘위령식’ 이후, ‘진영’을 넘어서서 참가하는 전국 문인들과 함께 여수에서 새로운 화해와 상생을 도모할 예정이다.

1948년 10월 19일 일어난 ‘여순사건’이 올해로 70주년을 맞는다. ‘반란’으로 규정되어 그동안 그 과정에서 희생된 1만여 명의 죽음은 공식적으로는 묻혀져 왔다. 김진수(59∙여수 민예총 회장, 한국작가회의 이사) 시인은 올 초 출간한 여순사건 관련 시집 ‘좌광우도’(실천문학사)에 수록한 시편 ‘나말이어라’에 ‘학살’도 ‘희생’도 빼버린 말줄임표 점 6개만으로 비문을 새긴 사연을 진술했다.

이 말줄임표가 말로 발화되어 70년 만에 비로소 가해와 피해자 양측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위령식’을 갖는다. 이와 함께 비극을 예술로 승화해 상생과 화해의 계기를 맞기 위한 ‘여수 전국문학인대회’를 10월 20~21일 여수 시에서 연다. 여수시의 지원을 받아 진보적인 문학단체인 한국작가회의는 물론이고 한국문인협회 등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200여명에 이르는 문인들을 초청해 여수시 일대에서 세미나와 추모콘서트, 여순사건 유적 탐방 등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2500여 회원을 거느린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이경자)는 전국 지회와 지부 사무국장단 회의를 지난 주말 여수에서 열었다. 경남 부산 광주 대전 제주 등지에서 모인 사무국장단 20여 명은 70년 만에 열릴 여순사건 위령식과 다음 달 여수에서 전국 문인들이 모여 진행할 문학인대회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한창훈(55∙소설가) 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문인들의 역할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눈 뒤, 이들은 다음날 여순사건 참극의 현장들을 둘러보았다.

이날 이들을 초청한 김진수 여수 민예총 회장은 작가회의 사무국장단을 이끌고 여수시 만흥동 ‘형제묘’와 ‘희생자 위령비’를 둘러보면서 “한 해 1500만명에 이르는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엄청난 관광지로 부상한 여수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아픈 상처 하나는 70주년을 맞은 여순 사건”이라면서 “아픔에 발목 잡혀 있을 게 아니라 객관적 시각을 가진 예술인들이 모여 정리를 하면서 역사 앞에 모두가 피해자임을 드러내 화해를 시도할 때 비로소 그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수 전국문학인대회 취지를 설명했다. 

여순사건 당시 희생된 이들의 ‘형제묘’를 찾은 문인들.

공식적으로 기록된 희생자 125명을 묻은 ‘형제묘’는 군경이 좌익으로 분류된 인물들을 끌고 와 몰살한 현장이다. 돌멩이로 덮여 있던 곳이 20여 년 전에야 봉분 형태로 꼴을 갖추게 된 곳이다. 이들은 그나마 공식적으로 기록된 처형자들이지만 여수시 종산초등학교(현 여수중앙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양민들을 손가락질과 차림새로만 분류해 죽인 뒤 묻은 만성리 희생자 터는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주검들이 아직도 고혼으로 묻혀 있다. 이곳에는 여순사건 60주년을 맞았던 10년 전에야 위령비를 세웠고 그나마 비문은 ‘학살’과 ‘희생’ 사이에서 실종되고 말줄임표 6개만 새겨져 있는 현실이다.

김진수 시인은 “시커멓게 엉겨 붙어 형체 잃은 주검을/ 낱낱이 수습할 수 없었던 통한의 유족들은/ 천만 근 연좌 무덤 독담불에 몰래 가서/ 그렁그렁 흙을 덮고 형제 묘라 불렀다”고 ‘형제 무덤’에 기술했다. 형제 무덤에 묻힌 이들의 유족들은 그들끼리조차 70년 내내 연좌제의 서슬에 눌려 서로 원망하며 가슴을 졸였다고 김 시인은 전했다. 제주 4∙3사건 진압을 거부했던 군인들의 ‘반란’은 이승만 정부의 철권 반공통치의 기틀을 다지는 중요한 계기로 작동했고, 지금까지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죽음들을 남겨둔 상태다. 이제 겨우 “이른바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한 자리에서 ‘위령식’을 갖게 된 마당에 그 단초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작금 한국 문학인들의 큰 책무”라는 게 ‘여수 전국문학인대회’를 준비하는 이들의 다짐이다.

여수= 글∙사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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