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는 없고 '흥미'만 남고.. 진짜 인문학은 죽었다?

김정훈 기자 2018. 9.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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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주목 받는다] ② 인문학 열풍의 이면
언어·문화·역사·철학 등을 연구하는 인문학이 변방에서 주류 문화콘텐츠로 떠올랐다. 각종 강연에서 인문학은 인기만점 주제가 됐고 관련도서는 줄줄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갈증에 허덕이는 사람들, 그들의 갈등이 충돌하며 각박해진 세상…. 이런 세상에 지친 이들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자아와 실존을 찾아 나선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인문학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길잡이가 돼가는 분위기다. <머니S>는 창간 11주년을 맞아 우리 사회의 신선한 수맥을 뚫고 있는 인문학을 조명해봤다. 인문학이 왜 각광받는지, 그에 따른 부작용은 없는지 살펴봤다. 또 인문학을 실생활에서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편집자주>

대형서점 인문학 서적 코너./사진=김정훈 기자

[인문학이 주목 받는다] ② 인문학 열풍의 이면

최근 각종 기업, 관공서, 교육기관 등에서 최고 인기 강연 주제는 인문학이다. 자아를 찾고 내면의 발견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자는 '성찰'의 바람이 불면서다. 특히 2년 전 한 케이블방송사의 인문학강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이제 문화계는 물론, 산업계에서도 인기 소비재로 떠올랐다. 물질적 풍요로움이 찾아온 현대사회에서 보다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찾으려는 현대인이 늘어나면서 인문학이 우리 경제·사회에서 하나의 소비재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마구잡이 인문학 소비에 일각에서는 불편함을 내비친다. 인문학 열풍에 편승하려는 허울뿐인 인문학 강연이나 서적도 늘었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인문학은 '진짜'일까.

◆'인문학 배우자' 열풍의 뒷면

기업이 인문학을 찾기 시작한 것은 2011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아이패드2 발표회장에서 “사람들은 그동안 기술을 따라잡으려 애썼지만 반대로 기술이 사람을 찾아와야 한다”면서 “애플은 언제나 이 둘이 만나는 지점에 존재했다”고 강조했다.

인간을 기준으로 한 기술의 발전이 애플의 지향점이라며 인문학과 기술공학의 융합을 자신들이 해냈다는 점을 부각했다. 잡스는 이 발표회 하나로 애플의 '인문기업 이미지'를 정립시키며 스마트폰 신화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후 많은 기업은 '인간을 돌아보자'를 주요 전략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인문학인재를 뽑겠다고 아우성쳤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인문학이 학문적인 가치로 인정받기보다는 기업의 이미지정립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박민영 작가는 자신의 저서 <반(反)기업 인문학>을 통해 현재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의 실체가 기업인문학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인문학은 '기업의 이익과 자기계발에 복무하는 인문학’으로서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인 정통 인문학과 달리 생존과 출세, 성공과 경제적 이익이 목적이다. 결국 인문학이 기업 자본의 포로가 됐다는 지적이다.
인문학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과잉소비다. 기업들은 인문학 인기에 발맞춰 직원에 대한 관련 교육을 늘렸다. LG그룹의 사내 교육 기관인 인화원은 최근 2~3년 동안 직원 대상 프로그램에 인문학 과목을 다수 추가했다. SK와 현대기아자동차 등도 인문학 관련 사내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삼성그룹은 몇년 전부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김호기 교수,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대표 등을 초청해 삼성 사장단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국내 최고 기업 사장단도 인문학을 배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대기업이 인문학을 찾자 강연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기업은 물론, 각급 관공서, 도서관, 평생교육센터, 문화센터 등에서는 다양한 인문학강연이 이어진다. 수요가 늘면서 지금 이 시간에도 인문학강연자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한 대형백화점에서 주최한 인문학강좌_사진=뉴시스DB

하지만 부작용이 만만찮다. 지난해 인문학 강연을 진행했던 대기업 관계자 A씨는 "1년에 3번 사내 복지 차원에서 강연을 연다"며 "당시 인문학이 인기여서 관련 강연자를 초청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직원들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고 설명했다.

강연자는 TV에도 몇번 출연한 적 있는 교수 출신 학자였다. 강연 제목은 <4차산업혁명과 인문학의 관계>지만 내용은 인문학과 거리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내용도 직원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재미도 없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A씨는 "강연내용은 인문학과 관계 없는 미래산업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며 "인문학의 광범위성을 감안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강의였다. 강연료만 수백만원이 들어가 고위층으로부터 쓴소리를 들었다"고 토로했다.

◆'흥미'와 '책'만 남은 인문학

문제는 A씨의 사례처럼 최근 인문학 강연이 인기를 끌자 너도나도 강연제목에 인문학을 붙인다는 점이다. 'ooo과 인문학' 'ooo관점에서 본 인문학' 등 인문학 딱지가 무분별하게 붙는다.인간에 대한 성찰을 기초로 한 인문학은 어떤 주제와 결합해도 큰 무리가 없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이어진다. 

강연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도 강사를 찾기 쉽고 주제도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술로 인문학을 설명하는 강연까지 등장했다. 재테크 강연을 주로 진행하는 한 개그맨출신 강연자도 최근 인문학 관련 강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강연이 심도있는 내용을 다루기보다 겉핧기 식에 그친다는 성토가 이어진다. 이런 현상은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인기를 끈 인문학강연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인문학을 일반인이 알기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강연이 인기를 끌다보니 대부분의 강연이 깊은 성찰보다 흥미 위주로 진행된다.

경기도의 한 문화센터 관계자는 "일부 인문학 강연은 전문가가 들었을 때 실소가 나올 수준"이라며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재미에 치중해 깊은 성찰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한 방송사에서 진행한 인문학강연에서는 강연자가 잘못된 지식을 바탕으로 강의해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이 강연자는 조선시대 예술품을 설명하면서 창작자를 다른 이로 혼동했다. 해당 강연자는 사회학과 교수로 주로 수능위주의 강연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분을 밝히기 꺼린 한 인문사회연구소 관계자는 "인문학은 좋게 말하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이 때문에 전문성이 약화될 수 있는 학문"이라며 "나 역시도 인문학이 무엇인지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인문학 전문가라고 간판을 내걸고 강연을 하는 사람이라면 깊은 성찰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강연을 해야한다"고 밝혔다.

오히려 인문학의 위기가 찾아왔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는 "학생들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문학 전공을 포기하는 추세다. 이대로 가면 인문학 열풍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위기다"라며 "흥미성 강좌와 자기계발 서적 등이 인문학의 모든 것으로 치부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질타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추석합본호(제558·5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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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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