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8시간 일하면 월 200만~300만원은 벌어야"

이보라 기자 입력 2018.09.18. 21:22 수정 2018.09.19.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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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되돌아보고 쓰다’ 펴낸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 안진걸씨
ㆍ이명박·박근혜 때 최다 기소 기록…그 숨가빴던 행적 담아내
ㆍ민생경제연구소 설립 “평범한 사람의 행복 위해 쉬지 않을 것”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이 14일 서울 청계천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는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렸다. 확인하지 않은 카카오톡 메시지는 수십개. 수첩에는 방송 출연을 포함한 일정이 빼곡히 적혔다. 참여연대 사무처장 시절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으로 불린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지금도 별명대로 산다.

지난 4월 20여년 몸 담았던 참여연대를 나온 그가 처음으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되돌아보고 쓰다>(북콤마)란 책을 최근 펴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가장 많이 민형사 기소를 당해 ‘최다 기소자’로 기록된 그가 숨 가쁘고 치열한 행적을 생생히 담았다.

참여연대를 나온 뒤에도 바쁘다. 서민중심 경제를 연구하는 민생경제연구소 활동에 몰두한다. 하루 8시간 일하면 적어도 200만~300만원은 벌고, 가족과 함께 주말과 저녁을 보내는 삶, 소주 한잔에 돼지고기도 먹고, 영화관에도 가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삶. 그는 “시민 대다수가 이런 삶을 누릴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14일 서울 종각 부근 카페에서 안 소장을 만났다.

시민사회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거창하지 않다. 대단한 신념이나 확고한 이론은 없었다. 어린 시절 주변 어른들이 피땀 흘려 일하는데도 집이 망해 빚을 지고 도망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생 시절인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등록금 인하를 주장하다 구속된 총학생회장을 석방해달라고 한 것뿐인데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부당하게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미안함이 커져만 갔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친 후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노숙인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동시대에 태어났는데 누구는 죽고, 저는 살았어요. 술도 마시고, 결혼도 하고…. 돌아가신 분들께 너무 미안하죠. 억울하고 가난한 사람들. 내가 그들의 자식이고 나도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1999년 1월 참여연대에 들어갔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부터 2015년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와 2016·2017년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주요 집회 현장의 선두를 늘 지켰다. 그러다보니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최다 민형사 기소를 당했다. 2008년 광우병 집회 때 첫 구속자였다. “연행될 때 목을 졸려봤어요. 숨이 콱 막히더라고요. 이러다 죽을 수 있겠구나 싶어 두려웠어요.” 사무실이나 집을 압수수색당할 때는 가족과 동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 같아 미안했다. 불법 채증을 당하는 건 기본이었다. 경찰이 거리에서 자신의 차량을 수배차량이라며 멈추라 할 때 ‘왜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야 할까’란 생각이 들어 괴로워했다.

안 소장과 동료, 여러 단체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온 만큼 사회는 조금씩 달라졌다. 2008년 광우병 집회 때 야간 미신고 집회를 주최한 혐의로 기소되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해 야간집회 금지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다. 올해 초 이동통신 요금 원가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안 소장은 상가임대차보호법 문제, 프랜차이즈 갑질 문제, 총선 낙선 운동 등에서도 어김없이 최일선에 섰다. 그때마다 점심시간 아끼려고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사람들이 안쓰러워할까 봐 참여연대 사무실 탕비실에서 몰래 먹곤 했다.

사회운동을 하다보니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다. 아내와 딸은 돈 때문에 할 수 없는 게 많았다. 아름다운가게 간사인 아내는 이해하는 편이지만 중학교 1학년 딸은 아직도 아버지 활동을 탐탁지 않아 한다. 가족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딸이 네 살 때인 2008년에 광우병 집회 때문에 구치소에 들어갔죠. 딸이 면회 와서 엉엉 울었어요. 그걸 보니 집회에 가지 말았어야 했나 싶기도 했고….” 그래도 딸이 학교에서 친구와 ‘(박근혜 대통령) 그만 퇴진하시죠’라고 크레파스로 적은 대자보를 만들었을 때는 반갑고 고마웠다.

참여연대에서 나온 그는 현재 80여개 시민단체에 소액 기부를 한다. 총 액수만 한 달에 약 80만원. 열악한 시민단체 사정을 듣고 가입하다 보니 수가 늘었다. 이젠 시민단체에 들이는 돈만큼 가족에게 들이는 돈도 늘리겠다고 가족과 약속했다고 한다.

안 소장은 역사책에 2008년 광우병 집회부터 2018년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까지를 하나의 큰 촛불혁명으로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8년 집회를 시민들의 1차 항쟁으로, 이후 소강 국면이다가 2016년 촛불집회라 불린 2차 항쟁이 나타났다고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안 소장은 촛불혁명이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그나마 이뤘으나 경제적 민주주의 실현은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양극화를 해결하려면 최저임금을 올려 서민 소득을 높이고, 대기업 갑질을 없애 공정경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 대다수가 가난한 서민인 지금 ‘가난한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의 시대로 가야 한다고 했다.

“유토피아를 바라는 게 아니에요. 단지 평범한 국민들이 주 5일, 하루 8시간 일하고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누렸으면 해요. 영화도 보고 술도 먹으며 일상을 즐길 뿐 아니라 아이를 낳고 키울 때 고통받지 않는 사회요. 그러려면 강력한 민생복지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때까진 멈추지 않을 겁니다.” 1시간여 인터뷰를 마친 그는 이날도 점심식사를 대충 해결하고 출연 예정인 방송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