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70년대 '오일 쇼크', 그리고 후쿠시마 '핵 쇼크'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 2018. 9. 19.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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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의 밑그림 – 녹색전환연구소 5주년 기념 기획연재] ②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

 과연 '에너지전환'은 무엇을 의미하나? 청와대와 산업부는 애초에 "탈원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다가, 핵산업계 등의 강한 저항이 잇따르자 "에너지전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때문인지 에너지전환을 핵발전소를 대신하여 재생에너지를 확대한다는 의미로 좁게 이해하는 경향이 자리잡았다. 산업부 장관의 언론 기고가 잘 보여준다. "에너지전환 1년"을 평가하면서, 핵발전의 축소와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구도를 통해서 '에너지전환'이 성공적으로 추진 중에 있다고 설명했을 뿐이다. '신산업'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 가능성을 강조한 것이 그나마 에너지전환의 다른 측면을 잠시 보여주었을 뿐이다(백운규, 2018). 에너지전환을 이렇게만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에너지전환' 담론은 1970년대 초반에 세계를 강타한 '오일 쇼크'로부터 촉발되었다. 큰 충격을 받은 세계 각국은 기존과 다른 방식의 에너지정책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전환에 관한 혁신적인 개념들이 만들어졌다. 에너지전환론의 선구자인 애머리 로빈스(Amory B. Lovins)는 1976년에 "에너지전략: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도전적 논문을 썼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화석연료(와 핵에너지)에 기반을 둔 중앙집중적인 대규모 에너지 시스템을 통해서 공급하고 있는 현행 에너지 시스템을 "경성 에너지 경로(hard energy path)"라고 부르며,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민주주의도 위축시킬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대신 에너지효율화를 통해서 에너지 수요를 줄여가면서 지역분산적인 재생에너지를 이용하는 "연성 에너지 경로(soft energy path)"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로빈스 주장과 한국 정부의 에너지전환론을 비교했을 때, 당장 발견할 수 있는 차이는 에너지 수요 감축에 대한 관심이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비중을 높이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한국도 1970년대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석유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정책을 재검토하는 기회가 있었다. 한 방향은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핵발전소의 도입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태양광(열)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개발과 에너지효율화 정책이었다. 전자는 1978년 고리1호기를 성공적으로 건설하면서 지배적인 흐름으로 자리를 잡았고, 후자는 A/S가 제공되지 않아 흉물로 남은 태양열 집열판만 남긴 채 곧 잊혀졌다. 또한 1980년대의 저유가 국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약적인 경제성장의 시기를 거치면서 에너지효율화 정책도 사실상 사라졌다. 1980년대에 대거 건설된 핵발전소의 전력을 소비하기 위해서 여러 차례에 전기요금을 낮추기까지 했다. 그렇게 오일쇼크로 잠시 열렸던 기회의 창은 금세 닫혔고, 에너지전환 담론도 자리잡지 못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야 점차 체계적인 '에너지전환'의 담론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1970-80년대에 건설된 핵발전소는 점차 지역주민들의 우려와 비판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결국 1990년대 안면도에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 계획은 격렬한 주민 저항을 야기했으며, 전국적인 반핵운동도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한 초창기 에너지전환 담론은 반핵운동에 공명하면서 핵발전소의 위험성과 기술권위주의를 폭로하고 비판하는데 집중했지만, 1990년대 말부터 재생에너지 이용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부각시키면서 본격적인 '에너지전환'의 담론을 주조해나갔다. 1999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출간한 <새천년을 향한 환경․보건․복지 정책> 보고서에 실린 김종달(현재 경북대 교수)의 글이 대표적이다.

그는 기존 정책 아래서는 에너지 소비량과 온실가스 배출량만 급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 이유로 △급격한 수요증가 및 해외의존도 심화, △설비투자수요의 급증과 투자재원의 심각한 부족, △국내 및 국제 환경규제(특히,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탈탄소 규제 포함) 강화, △(에너지 시설의) 입지문제의 심화를 들어, 에너지전환의 시급성을 주장했다. 여기서 에너지전환은 두 개의 축을 세워 얻어질 수 있는 목표로 설명되었다. 즉, 재생에너지 이용 확대뿐만 아니라,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에너지 소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이유는 정부가 "단순한 긴축 위주의 선언적, 규제 위주의 정책 또는 수급불안기에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대책 위주의 절약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지나친 공급 위주의 에너지정책으로 절약이 인적․물적 재원 배분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체에너지' 보급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유사하다.
그는 에너지전환을 위한 '지속가능한 에너지정책'의 방향을 제시하였다(<표 1> 참조). 재생에너지 이용 확대와 에너지 절약/효율화 정책을 강조하는 것 외에도, '중앙집중화'되고 '대규모'의 에너지 공급체제를 '분산'되고 '적정 규모'의 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기존의 중앙집중식 에너지 사회시스템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 지역 특성에 맞는 지역 단위의 균형 있는 에너지 공급체계가 이루어져야 하며, 지역 단위의 에너지자립도와 에너지 수급의 효율성이 제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방자치를 언급하면서 "다른 부문에서 부분적인 지방화가 시도되고 있는 반해, 경제성장과 환경보존 딜레마의 중심에 있는 에너지는 완전히 중앙에서 계획․집행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하면서, "지방주민과 지방자치단체의 참여를 제도화할 수 있는 에너지체제의 지방화 디자인"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한편 에너지전환의 방향뿐만 아니라 과정 및 전략에 대해서도 토론하고 있다. 당시의 에너지정책은 기존의 에너지공급 중심 방향과 에너지산업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연구개발 투자, 보조금 지급 등의 수단으로 재생에너지 이용을 확대하려는 '제도적 적응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방식으로는 "에너지 절약과 재생가능에너지가 기존 에너지에 대한 완전한 대안으로서 선택되는 전환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고, "오히려 기존 에너지시스템을 보완"해주면서 "기존 에너지 시스템을 오히려 공고히 해주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였다. 사실 이런 '제도적 적응 전략'은 문재인 정부 내에서도 관찰되며, 에너지전환의 속도와 방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에너지전환을 단순히 '에너지원의 변화'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에너지전환은 다양한 차원을 가진 변화로 이해해야 한다. 에너지원의 변화 차원은 이미 충분히 이해되고 있다. 오히려 그것만으로 이해하고 있어서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차원은 충분히 주목받고 있지 못하다.

에너지 이용의 의미 변화 차원부터 살펴보자. 우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에너지'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여 얻고자 하는 '에너지 서비스'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애머리 로빈스이 독일의 에너지 효율화 전문가인 패터 해니케 뷔페탈연구소장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소비자에겐 킬로와트시 자체가 아니라 따뜻한 주거 공간이나 차가운 맥주와 같은 에너지 이용이 의미가 있다. 이러한 에너지 서비스는 앞으로 훨씬 더 적은 양의 에너지와 비용의 투입으로 공급할 수 있다"

동일한 에너지 서비스를 얻는데 더 적은 에너지를 사용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며, 그것은 비용도 아끼게 해줄 것이란 주장이다. 이는 결국 에너지 효율화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지역/공간적 배치의 변화는 중앙집중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분산적인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는, 애머리 로빈스 이래 지속되고 있는 에너지전환론의 주요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한국의 맥락에서는 삼척, 영덕, 고리, 당진 그리고 밀양 등에서 발생하였던 대규모 발전 및 송전 시설을 둘러싼 주민 저항과 막대한 사회적 비용, 그에 대한 정부의 정책 학습에 따른 분산전원 확대 필요성 인식 등도 이 차원의 변화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이용 증가에 인한 전력망의 안전성을 확보를 위해서 전력저장장치(ESS) 등과 같은 유연성 자원을 확보․운영해야 할 필요성과 그에 따른 배전망운용자(Distribution System Operator: DSO) 출현 가능성에 의해서 보다 현실성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지방정부에게 에너지정책 결정 권한과 책임을 나누고 궁극적으로 시민들의 자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에너지 분권과 자치의 주장과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에너지 생산과 공급 시설을 소유․운영의 변화는 에너지전환을 촉진하고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적합한 사회적 구조를 탐색하는 관심과 연관된다. 에너지 기술의 개발과 발전은 이것과 함께 공진화하는 사회적 요소들과 연결되면서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어 간다. 에너지전환 연구자들은 "에너지 시스템을 녹색화하기 위한 중요한 도전은 우리 에너지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회조직의 변화"(Verbong and Geels, 2012: 204)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는 에너지(전력) 산업구조의 개혁 논의와 관련될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에너지산업의 구조 개혁에 관한 논의는 1990년대 말의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계획을 '에너지 민영화'로 규정짓는 노조 및 진보 진영은 '에너지공공성'을 주장하면서 이를 저지하려고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이런 갈등 속에서 에너지전환은 중요한 쟁점이 되지 못했으며, 그에 걸맞은 에너지산업의 구조 개혁에 대한 논의는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문제를 검토하지 않고 에너지전환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이용자의 행동과 규범의 변화는 에너지 시민성에 관한 논의와 연계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에너지 시스템 내에서는 에너지 사용자는 한전이 공급하는 에너지를 사용하고 요금을 지불하는 수동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저렴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만 받아서 이용할 수 있다면, 에너지가 어떻게 생산되어 공급되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에너지 소비의 결과가 대기오염 그리고 기후변화를 야기한다는 사실에 직면하고 소비자에게까지 공급되는 과정에서 다른 지역과 사람들의 희생이 따른다는 에너지 부정의를 목격하게 되면서, 에너지 이용자는 능동적인 '에너지 시민'으로 변화할 수 있다. 위험하고 부정의한 에너지정책 결정에 항의하고 에너지 자치를 추구하는 사회운동에 관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에너지 소비를 되돌아보면서 에너지 사용 행동을 변화시키거나 효율적 설비를 위해서 투자하기도 한다. 나아가 재생에너지 설비에 투자하여 스스로 전력을 생산하거나 협동조합 등을 통해서 재생에너지 사업에 참여하면서, '에너지 프로슈머'로 변화하기도 한다.

에너지전환, 에너지원의 변화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자. 가야할 길이 멀수록, 기초적인 논의부터 명확히 하고 나서야 한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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