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북 "이재용, 우리가 오시라 했다", 남 "우리가 전적 결정"

평양공동취재단·전병역 기자 2018. 9. 1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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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경제인의 방북을 어느 쪽이 요청하거나 결정했는지 놓고 이견이 표출됐다. 북측은 “우리가 오시라고 했다”고 하자, 남측은 거듭 “경제인 방북은 전적으로 우리가 결정한 일”이라고 부인하고 나섰다. 사소한 차이로 비칠 수 있으나, 이는 국제사회 대북제재 국면 와중에 남북 경협을 거론하는 자리여서 안팎에 껄끄러운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방북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최태원 SK그룹 회장(두번째)이 18일 평양에서 북한 리룡남 내각부총리와 만나 얘기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청와대는 19일 이 부회장의 방북은 북한이 아닌 우리 측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청와대 고위 당국자는 기자들 질문에 “우리 쪽에서 요청한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북한이 이 부회장을 특별히 집어서 방북을 요청한 적 없었는지 질문에 “네, 없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전날에도 “경제인들의 방북과 관련해서 북측의 요청이 있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사실은 전혀 아니다”며 “방북 수행단 결정은 전적으로 저희 정부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프레스센터에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방북 수행단 결정은 전적으로 우리 정부에서 결정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윤 수석은 “남북관계의 미래를 위해서 경제인들의 수행단 참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었다”며 “우리 경제인들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단지 이번뿐만이 아니다. 이전에 있었던 모든 정상회담에서도 경제인들이 다같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전날 방북 경제인들이 평양시 인민문화궁전에서 리룡남 내각부총리와 면담하던 자리에서 벌어졌다.

이 부회장은 “평양은 처음 와봤다. 마음에 벽이 있었는데 이렇게 와서 직접 보고 경험하고 여러분을 뵙고 하며 ‘이게 한민족이구나’라고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호텔 건너편에도 한글이 쓰여 있고, 우연히 보니 평양역 건너편에 새로 지은 건물에 ‘과학중심 인재중심’이라고 쓰여 있었다”며 “삼성의 기본경영 철학이 ‘기술중심 인재중심’이다”며 친근감을 표했다. 이 부회장은 “더 많이 알고, 신뢰 관계를 쌓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리 부총리가 “우리 이재용 선생은 보니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이던데”라며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서도 유명한 인물이 되시기를 바란다”고 하자, 이 부회장이 웃으며 “알겠다”고 답했다. 삼성전자는 2000~2010년 평양에서 대동강TV라는 이름으로 부품을 가져간 뒤 조립하는 위탁가공 생산한 경험이 있으나, 그밖에 남북 경협에는 소극적이었다.

문제는 황호영 북한 금강산국제관광특구 지도국장이 이 부회장과 인사하던 중 불거졌다. 황 국장이 “많이 봤습니다”라며 “우리가 오시라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이는 북측이 이 부회장의 방북을 먼저 요청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대목이어서 논란을 불렀다. 다만 황 국장의 발언이 이 부회장만을 대상으로 한 말인지,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경제인들 모두를 지칭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지난 2000년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와 달리 이번에 처음 삼성그룹 총수가 직접 방북한 사실에 비춰 황 국장의 말은 일단 이 부회장을 지칭했을 개연성이 높다. 한국 재계 대표주자인 삼성의 총수가 처음 평양에 갔다는 자체부터 국내외에 던지는 메시지가 상당히 크다.

또한 황 국장의 발언 시점도 다른 해석을 불렀다. 경제인이 평양에 도착한 뒤, 인민문화궁전 면담 전에 미리 윤 수석이 ‘남측의 결정이었다’는 점을 굳이 강조한 뒤에 황 국장이 말했기 때문이다.

북측이 의도적으로 한 것인지, 단순 실수인지부터 불명확하다. 실제로 북측이 먼저 초청을 한 것인데 남측의 저자세로 보고 불만을 표출한 것인지 갖가지 추측을 낳고 있다. 또는 남측이 먼저 경제인 방문을 제의하자 북측이 오라고 한 것인지, 그 과정에 이 부회장을 특히 지목한 것인지, 원래 방북 제의 명단에 이 부회장이 들어 있는데 이를 보고 북측이 이 부회장이 와도 좋다고 했다는 뜻인지 논란을 가려줄 필요가 생겼다.

이번 발언이 그렇잖아도 북한 비핵화 진전을 통한 유엔 제재가 풀리기 전에 남북 경협 논의에 곱잖은 시선이 나오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비판을 불렀다는 지적이 많다. 어느 쪽이 먼저 요청한 것보다는 남북 간 경제협력 방안을 큰 틀에서나마 논의하는 자체의 의미에 흠집을 낼 수 있어서다. 이와 관련 북측이 입장을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평양공동취재단·전병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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