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서해 훈련중단구역 북 50km 남 85km .. NLL 무시했나

이철재 2018. 9. 20.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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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11월부터 적대 중단 합의
휴전선 5km내 포사격·훈련 중지
청와대 "실질적 종전선언 했다"
야당 "핵 두고 우리만 무장해제"


[9·19 평양선언] 군사적 긴장완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19일 평양에서 서명한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합의서)는 한반도 군사 지형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남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고, 더 나아가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도 상대방의 관할구역을 침입·공격·점령 행위를 하지 않기로 했다. 또 군비 통제를 논의하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공동위)를 만들기로 했다. “평양 공동선언에서 실질적인 종전을 선언했다”(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핵에 대응하는 성격이 있는 한국의 재래식 전력의 운용 제한을 합의했다는 점이다. 북핵 폐기는 어음인데 한국 재래식 전력 통제는 현금으로 줬다는 논란이 나올 수 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남북간 합의에 대해 “북한은 핵을 꼭꼭 숨겨놓고 있는데 우리는 모든 전력의 무장해제를 해버리는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대북 우위 재래식 전력 통제=남북은 합의서에서 어떤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정부 당국자는 “이는 불가침 선언”이라고 단언했다. 상대방을 겨냥한 군사훈련, 무력 증강, 다양한 형태의 봉쇄·차단·항행방해, 상대방에 대한 정찰행위 중지 문제를 앞으로 협의하자면서 공동위의 숙제로 남겨뒀다.

이는 남북이 군비통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군비통제는 군사력 전반을 남북이 협상을 통해 조절하면서 전쟁의 위험성을 줄여 나가는 절차를 말한다. 이를 통해 남북의 우발적 교전을 막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해소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간 한반도는 북한의 비대칭 핵전력 등을 한국의 재래식 전력과 미국의 핵우산으로 막는 구조였다.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자 주한미군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도입하는 식이었다.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가장 중요한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군축(무력증강 중지) 얘기를 꺼낸 것은 초보적 군비통제가 아니다”며 “충분한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연합훈련이나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와 같은 사안도 남북 공동위 테이블에 오를 수 있게 됐다. 신원식(예비역 육군 중장) 전 합참 차장은 “북한이 공동위에서 한미연합사령부의 군사작전을 하나하나 따지게 될 경우 연합방위 태세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미연합사와 남북 공동위가 충돌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11월 1일부터 서해5도 포격훈련 중단=이번 평양 정상회담에서 남북 간에 가장 구체적인 합의를 낸 게 군사 합의다. 합의서에 따르면 남북은 군사적 긴장과 충돌을 막기 위해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완충지대를 두기로 했다.

지상에선 MDL로부터 5㎞ 안에서 남북은 포병 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 기동훈련을 하지 않기로 했다. 또 모든 항공기가 접근할 수 없는 비행금지구역을 만들었다. 이 조치들은 당장 11월 1일 시행된다. 그런데 지상의 완충지대만 해도 기존의 비무장지대(DMZ·MDL 기준 남북으로 각각 2㎞ 안)보다 훨씬 더 넓다.

남북은 DMZ를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는 사업도 진행하기로 했다. 시범적으로 감시초소(GP) 11곳을 DMZ에서 철수하고 공동경비구역(JSA)을 비무장화하면서 DMZ 안에서 공동으로 유해를 발굴한다. 이는 사실상 그간의 정전체제를 남북 합의가 대신하는 게 될 수 있다.

◆MDL 근접비행 중단=국방부 당국자는 “합의서를 이행하더라도 우리 군사작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MDL 일대에 육·해·공 완충지대를 긋는다고 해서 군사작전에 차질을 빚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당장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보다 항공력이 상대적으로 우세한 한국의 팔을 묶는 조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비행금지구역은 일반 항공기의 경우 동부 지역은 MDL로부터 40㎞, 서부 지역은 20㎞ 구간에 마련된다. 헬기는 10㎞, 무인기는 15㎞(동부)와 10㎞(서부), 기구는 25㎞로 각각 적용 기준을 달리했다. 김형철(예비역 공군 중장) 전 공군참모차장은 “전반적으로 긴장완화에 도움이 된다”면서도 “간혹 북한의 이상 동향을 면밀히 살피기 위해 정찰기가 MDL에 근접할 수도 있는데 앞으론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무시했나=남북은 합의서를 통해 서해와 동해에서 우발적 충돌을 막는 완충수역을 만들었다. 그러나 서해에서 완충수역을 설정할 때 북방한계선(NLL)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는 논란을 일으킬 전망이다. 완충수역에서는 해상 포사격과 기동훈련을 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런데 합의서에 따르면 남북은 서해에서 남측 덕적도의 이북과 북측 초도의 이남까지의 수역을 완충수역으로 했다. 이 수역엔 백령도·연평도 등 서해5도가 포함된다. 국방부는 합의서 해설자료에서 남북 군 당국이 합의한 서해 완충수역 구간이 모두 80㎞라고 설명했다. 최종건 청와대 평화군비통제비서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서해 지역(완충수역)은 정확하게는 그 길이가 북측 40㎞, 우리 40㎞로 총 80㎞”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글 지도를 이용해 실제 거리를 재본 결과 초도(북한)에서 덕적도(한국)까지는 135㎞였다. NLL의 최북단인 백령도를 기준으로 하면 북한 초도까지 50㎞, 한국 덕적도까지 거리는 85㎞ 남짓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어떤 선을 기준으로 완충수역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국방부는 해명자료를 내고 “서해 완충수역은 포병·함포·해안포 등 군사적 위협이 집중된 지역을 포괄했다”며 “특정 선을 기준으로 상호 등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서도 국방부는 NLL 대신 ‘특정 선’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남북 간 완충수역이 NLL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남북은 합의서에서 평화수역과 시범 공동어로수역을 만들기로 했지만 기준은 공동위에서 정하기로 했다. 국방부 당국자는 “합의서에서 NLL은 의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평양=공동취재단,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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