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노무현-김정일 합의한 서울-백두산 항로, 문재인-김정은이 뚫었다

전수진 2018. 9. 2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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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20일 방북을 마치고 귀환하면서 평양을 거치지 않고 백두산 삼지연 비행장에서 곧바로 서울로 돌아오는 항로를 택했다. 서울-삼지연 항로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합의한 백두산 관광의 핵심 포인트다. 당시 채택된 10ㆍ4 선언문은 6조에 ‘남과 북은 백두산 관광을 실시하며 이를 위해 백두산-서울 직항로를 개설하기로 하였다’고 돼 있다.

평양정상회담 사흘째인 2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2018.9.20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 대통령이 약 11년 후,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항로를 뚫은 셈이 됐다. 문 대통령은 서해 직항로를 처음으로 사용한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서울-삼지연 항로를 개척한 기록도 남기게 됐다.
이날 서울-삼지연 항로의 비행 소요 시간은 약 2시간이었다. 문 대통령이 탑승한 공군2호기는 3시30분에 삼지연 비행장을 출발, 5시36분에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노무현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2007년 10월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손을 맞잡아 들어 올리고 있다. /평양=청와대 사진기자단

2007년 정상회담 대화록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남측 사람들이 뭐하러 평양 왔다 다시 비행기 타고 (백두산에) 갈 필요가 있는가? 서울에서 직항으로 백두산으로 가면 되지 않나”라며 백두산 관광을 선언문에 넣자고 제의했다. 노 대통령도 “(남측) 국민들이 아주 좋아할 것”이라며 화답했다.
2007년 남북 정상의 대화에 이어 20일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도 백두산 관광에 시동을 걸자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남쪽 일반 국민들도 백두산으로 관광 올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며 “이 (첫)걸음이 되풀이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오늘은 적은 인원이 왔지만 앞으로는 남측 인원들, 해외동포들이 와서 백두산을 봐야한다”며 “분단 이후에는 남쪽에서는 그저 바라만 보는 그리움의 산이 됐으니까”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이었던 2013년 10월, 세종문화회관에서 노무현재단 주최로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문 의원 뒤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뉴스1]

그러나 백두산 관광 재개까지는 갈 길이 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087호와 2094호가 벌크캐시(bulk cash, 대량 현금)의 대북 유입을 금지하고 있는데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이 박왕자씨 피격 사건으로 중단된 것도 미해결 과제다. 남측 관광객 박왕자씨는 당시 군사통제구역 안에 들어갔다가 북한 초병에게 피격당해 숨졌고, 정부는 이후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의 백두산 등정은 꽁꽁 얼었던 백두산 관광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0일 브리핑에서 “두 정상 내외가 백두산에 섰다는 장면만으로도 굉장히 감동이 있다”며 “한민족의 시원(始原)이라 할 수 있는 장소이기에 상징이 크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백두산 천지를 산책하며 물에 손을 담그고 있다. 2018. 9.20.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백두산행이 갑자기 결정되면서 외투 등을 급히 공수하기 위해 정부는 수송기를 20일 새벽 서울에서 평양으로 보냈는데, 이 수송기는 서울로 돌아오면서 예상치 못한 선물을 싣고 왔다. 김정은 위원장이 보낸 송이버섯 2t이다. 김정일 위원장도 남북 정상회담 후 송이버섯을 선물로 보냈는데 2000년엔 3t, 2007년엔 4t을 각각 보냈다.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이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기념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송이버섯 2t을 미상봉 이산가족에게 추석 선물로 보낸다고 20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에서 마음을 담아 보낸 송이버섯이 부모형제를 그리는 이산가족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인사말을 선물에 담았다. [연합뉴스]

윤영찬 수석은 “김 위원장이 선물한 송이버섯이 오늘(20일) 새벽 5시36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했다”며 “아직까지도 한을 풀지 못한 미상봉 이산가족들에게 모두 나누어 보내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고령자를 우선해 4000명을 선정, 각 500g을 추석 전에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서 마음을 담아 송이버섯을 담아왔다. 북녘 산천의 향기가 그대로 담겨있다”며 “보고픈 가족의 얼굴을 보듬으며 얼싸안을 날이 꼭 올 것이며 그날까지 건강하시길 바란다”는 내용의 카드를 함께 보냈다.
백두산=공동취재단,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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