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로스 만나 "미국 고용 기여" 25% 관세 예외 설득
평양행 포기하고 워싱턴행 선택
USTR대표 등 고위 관료들 면담
"FTA 합의했는데 장벽 없어야"
NAFTA 개정안 예외 적용도 제안
지난 14일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지 이틀만의 행보였다. 18~20일 제3차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단에 참석할 것이란 예상도 있었지만 정 수석부회장은 방북도 포기하고 미국 방문을 택했다. 그만큼 사안이 중대했다는 얘기다.
정 수석부회장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행정부 및 의회 관계자들과 연쇄 회동을 가졌다. 18~19일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을 만난 데 이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면담했다. 정 수석부회장이 미국 행정부 고위 관료들을 찾은 건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무역확장법 232조와 관련해 국내 자동차 업계의 의견을 전달하고 호혜적 조치를 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다. 정 수석부회장은 조니 아이잭슨 조지아주 상원의원도 만나 협조를 부탁했다. 조지아주는 기아차 공장이 있는 곳으로 아이잭슨 상원의원은 여당인 공화당 소속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번 방문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에 양국이 합의한 만큼 추가적인 관세장벽이 생기지 않도록 해줄 것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FTA 개정안은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철폐할 예정이던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25% 관세를 2041년까지 유지하되 기존의 무관세 혜택과 미국산 부품 사용비율 상향 조정은 막아냈다. 하지만 무역확장법 232조가 발동되면 기존 FTA 개정안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 수석부회장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 FTA 개정안이 우선될 수 있도록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정 수석부회장은 무역확장법 232조, NAFTA 개정안 등과 관련해 한국산 자동차가 관세부과 예외를 인정받도록 미국 행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한·미 FTA 개정안에서 한국이 미국 안전기준을 통과한 미국산 자동차를 연 5만대까지 수입할 수 있도록 한 점도 강조했다. 한국이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장벽을 낮췄기 때문에 호혜적 입장에서 미국도 한국산 자동차에 혜택을 달라는 의미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이 미국에 두 곳의 생산시설(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차 조지아 공장)을 만들어 고용을 창출하는 등 미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도 부각했다. 현대·기아차가 두 곳의 생산공장과 협력사를 통해 고용한 인력은 5만명이며, 딜러 등 간접 고용한 인력을 더하면 8만5000여명에 달한다.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최종 발동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관세장벽이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판단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수석부회장이 방북 일정까지 빠져가면서 미국 방문에 나선 것은 그만큼 미국 관세장벽의 리스크가 급박하고 크다는 판단에서”라며 “무역확장법 232조가 한국 자동차 산업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위협요소란 점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차 조지아 공장도 방문했다. 최근 현지 생산에 들어간 신형 싼타페 생산라인도 집중적으로 점검했다고 현대차그룹 측은 밝혔다. 정 수석 부회장은 주말쯤 귀국할 예정이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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