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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극복' 정부 홍보물에도 독박육아 버젓이..항의일자 삭제 [기타뉴스]

김지혜 기자 입력 2018.09.23. 16:02 수정 2018.09.24. 12:17

[경향신문]

대한민국정부 트위터 계정 갈무리

횡단보도 앞, 보행 신호를 기다리던 한 여성이 바쁘게 뛰어갑니다. 하이힐에 정장 차림, 회사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차림새입니다. 그녀가 발걸음을 재촉해 도착한 곳은 어린이집. 다른 아이들은 이미 귀가를 마친 늦은 시간인지 한 아이만 홀로 남아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엄마!” 아이의 반가운 목소리를 듣는 여성의 얼굴에 안도와 안쓰러움, 미안함이 뒤섞인 미소가 떠오릅니다.

집으로 가는 길 여성은 아이에게 “우리 지아 오늘 뭐했어?”라고 묻지만 답이 없습니다. 길 맞은 편에 유모차를 끌고 걸어오고 있는 다른 여성에게 시선이 꽂혀있기 때문입니다. 지아는 말합니다. “엄마, 나도 동생 있었으면 좋겠다.” 여성은 곤란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리고 화면 위에 떠오르는 자막, “지금 당신은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지셨나요?”

지난 18일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이 대한민국정부 트위터 계정 등을 통해 공개한 ‘저출생 극복 프로젝트’ 홍보 영상의 일부입니다. 다둥이 부모들에게 출산 고민을 ‘카운슬링’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이 프로젝트 영상은 게재 직후부터 되려 ‘저출산 독려 프로젝트’가 아니냐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트위터에 올라온 누리꾼들의 의견을 정리해 이 홍보 영상의 문제점을 짚어보겠습니다.

■엄마는 ‘독박육아’ 중

영상 속에서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이는 오직 여성뿐이다. 대한민국정부 트위터 계정 갈무리

@****_D

영상에 어떻게 아이 아빠가 한 번도 안 나오나요? 엄마 혼자서 육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자연스러운 사회가 부담스럽고 싫어서 그걸 개선해달라는 것 아니었나요? 여전히 아이를 낳는 일은 오로지 여자들의 몫이라고 캠페인 영상에서부터 외치는데 누가 맘 편히 이 나라에서 아이를 낳겠어요.

@***_kkk

아이의 육아는 모두 여성의 몫이다 이거죠? 역시 정부가 얼마나 성차별적인지 잘 알겠습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출산, 육아에 관한 이 영상에 애아빠는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지요??? 그렇다고 미혼모 지원하는 정책이 제대로 있는 나라도 아닌데. 참 출산을 지양하는 행보네요.

@*****erlieberin

생각해보니까 두 배 빡치네. 평생 이따위 광고 만들면서 북치고 박치고 장구를 쳐봐라. 낳는 것도 여자, 키우는 것도 여자, 고생하는 것도 여자, 일찍 퇴근해서 애 픽업 하는 것도 여자, 육아 고민하는 것도 여자. 도대체 이 영상 어디서 보호자와 부모로서의 남성의 책임을 이야기하고 있나? 절대 애 안 낳을 거다.

다수의 누리꾼들이 지적하듯, 이 영상에 등장하는 육아의 주체는 오직 여성뿐입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와, 동생이 갖고 싶다는 아이의 투정을 듣고, 다른 부모에게 출산 카운슬링을 받는 모든 일을 주인공 여성 홀로 해냅니다. 남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유모차를 끄는 양육자도 여성 혼자입니다. 누리꾼들은 여성에게만 출산과 육아에 대한 과중한 책임을 지우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영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여성에게만 출산·육아를 떠맡기는 현실에 문제의식 없는 정책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의견입니다.

■그런데 카운슬링은 남성이?

출산 고민에 빠진 여성에게 다둥이 부부가 카운슬링을 해준다. 그러나 상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남성, 곁에 있는 여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정부 트위터 계정 갈무리

@*****opgod

한국사회에 가족은 아이와 엄마밖에 없나보다~ 그래놓고 카운슬링 부분에서 조언하는 역할은 또 남자가 말하고 그 남자 옆에서 부인으로 추정되는 분은 끄덕끄덕... 남자는 육아에 참여도 안하면서 무슨 할 말이 있길래 주절거려요?

@****myun

고민은 엄마만하는데 심지어 카운슬링은 남자가 하고 있네요 ㅋㅋㅋㅋㅋ

이 영상이 홍보하는 프로젝트는 문체부가 주관하는 ‘지상최대의 고민, 카운슬링 프로젝트’라는 상담 프로그램입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 정부가 직접 선정한 다둥이 부모들로부터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입니다. 문제가 된 영상 말미, 출산 고민에 빠진 여성이 부부로 보이는 남녀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리꾼들은 이 장면에서 뒤늦게 등장한 ‘남성’이 조언의 역할을 독점하고 있다며 비판했습니다. 여성 혼자 양육과 출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정작 출산 카운슬링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이는 남성이라는 설정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남성이 여성에게 아는 척 설명을 늘어놓는 ‘맨스플레인’이 출산과 육아 분야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냐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저출산, 근본적인 대책을 내놔라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은 ‘지상 최대의 고민 카운슬링(http://i2love.co.kr/)’ 사이트를 운영하며 해당 정책을 홍보 중이다. 대한민국정부 트위터 계정 갈무리

@*****ojung

둘째 낳으면 첫째가 안 외로울 거 같나요? 첫째가 가지게 된 박탈감이 너무 커서 놀이치료도 3년 했어요. 그거 나라에서 지원도 안해주잖아요.

@******_3139

꼭 필요한 광고 목적이었다면 출산률이 낮은 이유부터 제대로 파악하셔야죠. 무조건 광고 하나 만들어서 홍보한다고 출산률이 오릅니까? 해결방안 하나도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출산이라는 자체가 일생일대의 고민이라고 표현하는지요. 출산이 여자몫도 아니고 정부에서 이 광고에 성차별을 넣었네요.

@*****nu

저출산이 카운슬링과 사연경쟁으로 해결되는 줄 아시나봐요. 너무 한심하고 이게 과연 정부의 정책인지 의심스럽습니다. 광고는 광고대로 한심하고….

@*****wan

저출생을 극복하고 싶다면 당장 여성 인권문제 해결으로부터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여성은 인간 취급도 못 받는 지금 세태는 싹 다무시하고 애 낳으라고 강요만 해대니 당연히 여성을 애 낳는 기계 취급한다고 생각하죠.

누리꾼들이 이 영상과 ‘카운슬링 프로젝트’ 자체가 저출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는 겉핥기식 대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 다둥이 부모들에게 상담을 받는다한들, 애 낳기 힘든 사회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성에게 일과 출산, 육아의 책임을 미루는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와 높은 집값, 낮은 임금, 적은 일자리 등으로 결혼조차 힘든 청년 세대의 현실 등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사회의 토양부터 바꿔나갈 때 저출산 문제가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소통실 “아빠의 육아를 다루는 영상 준비 중, 문제 없다”…그러나 해당 트윗 삭제

논란이 커지자 해당 영상을 제작·배포한 문체부 국민소통실 관계자는 “아빠의 육아를 다루는 영상을 별도로 준비를 하고 있다”며 ““출산의 주도권과 선택권이 여성에게 있다고 생각해 여성 배우를 기용한 것일 뿐, 여성에게만 육아와 출산 책임을 지우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국민소통실은 총3편의 저출산 정책 홍보 영상을 추가로 공개할 예정입니다. 여기에는 ‘아빠의 육아 휴직 일상 취재’편도 포함돼 있어 육아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남성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이를 적극적으로 권장할 것이라고 합니다.

‘다둥이 부모의 카운슬링’이라는 프로젝트가 저출산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냐고도 물었습니다. 관계자는 “여러가지 문제로 출산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기존에 경험했던 사람들이 조언이나 충고를 해준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추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육아 장면에서는 등장하지 않던 남성이 카운슬링에서만 주도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남성만 나서는 것이 아니라, 다둥이 부부가 함께 카운슬링을 해준다는 프로젝트의 취지를 나타내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문제가 될 것이 없다”던 정부. 그러나 대한민국정부 트위터 계정은 경향신문의 취재 직후인 21일 오후 돌연 해당 영상이 담긴 홍보 게시물을 삭제했습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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