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기 든 에스더, 박근혜 탄핵 반대 때 전면에 등장

입력 2018. 9. 27. 05:06 수정 2018. 9. 3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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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① 혐오 확산 진원지
동성애 표적삼고 '종북 게이' 퍼뜨려
보수단체 한국자유연합도 또 다른 축
보수 기독 청년 세력 집중 양성

[한겨레]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는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가 나란히 등장했다. 애국(태극기)과 반공(성조기)에 선민(이스라엘기)의 상징이 더해진 것이다. 사진은 2017년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당시 서울광장에서 열린 구국기도회 한 장면. (유튜브 화면 갈무리)

극우와 기독교가 만나는 곳에 ‘가짜뉴스 공장’이 있었다. <한겨레>는 두달 남짓 ‘가짜뉴스’를 생산·유통하는 세력을 추적했다. 가짜뉴스가 유통되는 유튜브 채널 100여개, 카카오톡 채팅방 50여개를 전수조사하고 연결망 분석 기법을 통해 생산자와 전달자의 실체를 찾아 나섰다. 가짜뉴스를 연구해온 전문가 10여명의 도움을 받으며, 가짜뉴스 생산·유통에 직접 참여했던 관계자들을 만났다. 가짜뉴스의 뿌리와 극우 기독교 세력의 현주소를 해부하는 탐사기획은 4회에 걸쳐 이어진다.

태극기와 성조기는 각각 ‘국가주의’와 ‘반공’을 대변한다. 한국 기독교의 단골 상징물이다. 2017년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때는 이스라엘기가 추가됐다. 이스라엘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당시 인터넷에서 큰 화제를 불러 모았던 이스라엘기 등장은 한국 보수의 세력 교체와 극단화 현상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탄핵 반대 집회 확산 과정을 잘 아는 기독교 인사들은 당시 이스라엘기의 등장이 ‘에스더기도운동’(에스더)과 관련이 깊다고 말한다. 에스더 주최 강연에 자주 등장하는 논리 가운데 한민족을 이스라엘 12부족 중 하나인 ‘단’ 부족 계보로 보는 ‘한민족 선민론’이 있다. 이단 시비가 있는 교리 해석인데, 악의 소굴에서 승리하기 위한 영적 전쟁을 강조하며 우리가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강조한다. 북한 사역을 중시하는 이유는 북한 민족 역시 선택받은 민족이므로 김씨 지배체제로부터 우리가 구원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기는 ‘선민’ 담론의 상징물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기의 탄핵 반대 집회 등장을 이른바 ‘기독교 신극우’가 전면에 떠오른 장면으로 해석한다. 십여년 전만 하더라도 이단 취급을 받던 교리가 우파 기독교의 새로운 주류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우파 기독교의 세대교체는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침체와 관련이 있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목사의 (탄핵 반대) 집회 참석 권유에 신자들이 노골적인 저항과 불만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신자 동태에 민감한 목사들이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길 주저한 배경이었다. 김 실장은 이를 “교회의 축이 극우주의에서 중도 보수로 옮겨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대 변화에 따라 ‘반공 기독교’의 시대가 저문 탓에 제아무리 권한이 막강한 대형 교회 목사라도 합법적으로 탄핵당한 대통령을 신앙의 이름으로 적극 지지하긴 어려웠다는 얘기다.

대형 교회의 태극기 집회 참여 저조 현상은 현장에서도 확인됐다. ‘100만 애국 세력의 궐기’를 예고했던 2017년 1월7일 탄핵 반대 집회 당시 주최 쪽은 목사 1000명 참여를 예상해 가운을 준비했다. 하지만 “목사 참가율이 턱없이 부족해 일반 참가자들에게 목사 가운을 나눠주는”(김진호 실장) 촌극을 빚기도 했다. 한기총 등 개신교 연합체들은 이어 3·1절에 열리는 ‘구국기도회’에 “500만명이 참석할 것”이라고 호언했지만 허언에 그쳤다.

동원하지 못한 교인들의 공백은 노인과 탈북자들 그리고 에스더를 비롯한 기독교 내 청년 극우 활동가들이 메웠다. 대형 교회 목사가 아닌 에스더와 청년 극우 활동가들이 태극기 집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건 박근혜 탄핵 국면에 이르러 우파 진영 핵심 세력의 교체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에스더로 대변되는 이른바 ‘미디어 선교’ ‘인터넷 사역’ 집단이 ‘넷(Net)우익’을 넘어 한국 극우주의 행동 대열의 새로운 주력으로 떠오른 것이다.

에스더는 2007년 ‘북한 인권과 통일을 위한 기도 운동’ ‘탈북자 사역’ 등을 모토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곧장 차별금지법 반대 캠페인, 동성애 반대 활동, 인권조례 폐지 운동 등 애초 목표와 다른 활동을 시작했다. 조직 운영은 이용희 대표를 중심으로 폐쇄적이었지만, 보수 기독교인들의 자유로운 연합체를 표방하며 대중 강연과 청년교육사업, 대형 집회와 콘퍼런스, 포럼 등을 꾸준히 개최해 하부를 다졌다.

조직화 사업에서 이들이 개발한 가상의 적이 바로 ‘동성애’다. 종교사회학자 김현준씨는 “에스더가 만들어내 기독교에서 유행한 말이 바로 ‘종북 게이’다. 일각에서는 에스더가 과잉대표화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빨갱이 혐오의 시대적 기한이 다해가고 기존 대형 교회들의 성장이 정체됐을 때 개신교의 새로운 적으로 동성애를 지목하고 인터넷상에 적극 유포해 이를 현재적 혐오 모델로 끌어낸 것이 에스더”라고 평했다. 실제 에스더는 2011년 서울시와 경기도 교육청이 발의한 학생인권조례를 동성애 옹호 조례로 규정하며 기독교적 반대 논리를 만들어냈다. 에스더는 이 무렵 방영된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동성애를 미화한다며 반대 캠페인을 주도해 ‘문화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에스더는 처음부터 정치엔 무심하지만 기독교적 사회 정의에 관심이 높은 청년들을 포섭 대상으로 삼았다. “네가 바로 선민이며, 내가 너를 큰 자로 세우겠다. 네가 하는 일을 우리가 이루겠다” 등의 승리 서사를 강조하며 그들을 우익으로 양성했다. 한 에스더 전 활동가는 “이용희 에스더 대표가 내부 강연에서 ‘에스더 청년 양성은 주사파의 청년세력 양성에 착안해 벤치마킹을 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에스더의 또다른 축인 김성욱 한국자유연합 대표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알파팀’ 등 민간여론조작 사업을 받아 수행하며 “보수 기독교적 가치관에 투철한 청년 우익 논객 양성”을 활동 목표로 제시했다. 이들과 함께 10년여간 활동했던 한 인사는 “에스더의 목적은 특정 정치관을 가진 청년 세력을 양성해 사회에 침투시키는 것이었다. 편향된 자료나 심하게는 음모론을 지속적으로 듣고 배우기를 지속하다 보면 ‘최순실 게이트’ 같은 사건이 터져도 일말의 의심을 하지 않고 계속 따르게 된다”고 말했다.

에스더 활동을 오래 들여다본 한 기독교 인사는 “에스더의 문제는 가짜뉴스다. 기독교발 가짜뉴스는 기독교인의 적대와 혐오를 겨냥한 일종의 분노 증폭 장치다. 행동하지 않는 ‘샤이 보수’를 행동하는 보수로 이끄는 통로, 미끼상품이 바로 가짜뉴스”라고 말했다.

김완 박준용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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