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9월29일 PC통신 동호회를 기억하시나요 [오래전 '이날']

김서영 기자 2018. 9. 2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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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5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PC통신 하이텔 동호회「IP아카데미」의 초기화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8년 9월29일 PC통신에서 울고 웃고

20년전 경향신문에는 ‘PC통신 모임 확산… 낀 세대 3040대, 그들만의 사랑방’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는 당시 PC통신이 오프라인 동호회나 모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공간이 된 풍경을 전했습니다.

당시 보도는 “천방지축 10대, 뜻 모를 열정에 불타던 20대도 다 보내고 이제 ‘물결 같고 향 같은 나이’ 30대, 40대. 이쪽 저쪽에 치여 오갈 데 없다. 그러나 ‘낀 세대’가 무슨 잘못일 수 있는가.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PC통신 공간에 ‘그들만의 자리’를 만들고 있다”고 그립니다.

당시 나우누리 동호회였던 ‘황금시대(go goldage)’의 초기화면에 적힌 문구를 보시죠. “물결 타고 가는 남자/ 향을 타고 가는 여자/ 그런 사람들이 모여/ 낙서 한 줄 남긴다/ 모여서 노래하라/ 늘 새로운 삶이라고.”

30대 초반을 회원으로 하는 하이텔 작은 모임 ‘삼초방(go sg873)’ 자유게시판도 들여다보겠습니다. “동원훈련을 받기에는 조금 많은 나이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이기에 끝까지 낙오하지 않고 마칠 수 있었다.”

유니텔의 35세 이상 기혼자들 모임인 ‘낮도깨비 밤개구리(go view40)’의 한 회원이 올린 글입니다. “저기 가는 저 사람아 어딜 그리 바삐 가느냐. 옆도 보고 앞도 보고 뒤도 봐. 가다가 지치면 저 앞 언덕에서 잠깐 숨 좀 돌리고 가게.”

남성 30세 이상, 여성 27세 이상이 회원조건인 나우누리 친목동호회 ‘절반의 시작(gomid)’의 ‘장터’에는 출산준비물, 가정용물리치료기, 화장품 등이 올라왔습니다. 30대 이상 회원이 90%가 넘는 나우누리의 주부동호회 ‘나를 찾는 사람들(go jubu)’에는 요리정보 육아정보 건강정보 등 생활에 직결된 실용정보가 가득했다고 합니다.

확실히 10대나 20대가 주로 모이는 공간에 비해 연륜이 느껴집니다. 당시 경향신문은 이를 두고 “소쩍새 울던 봄 밤, 천둥 번개 치던 여름날을 버텨내고 이제는 ‘거울 앞에 선 누님’ 같은 성숙함이 엿보인다”고 평합니다.

30세 이상 독신자들의 모임인 하이텔 ‘독신공간(go sg1004)’의 시삽 신현제씨는 “PC통신을 이용하는 연령이 대체로 낮아 나이 서른만 돼도 도태되는 분위기라 이런 동호회가 늘어나고 있다”며 “회원들이 대체로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이들이라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것들,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찾는 경향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나이 서른에 도태라니, 잘 상상이 가지 않지만 PC통신이 들어오며 이에 호기심을 느끼고 활용할 줄 아는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의 격차가 시작됐다는 점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이렇게 30대 이상의 네티즌들이 자신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호회나 작은 모임은 유니텔의 ‘솔로예찬’ 하이텔의 ‘삼동회’ ‘홀로서기’ ‘이웃사랑’ ‘휴게텔’, 나우누리의 ‘30대의 지성과 사랑’ ‘새날열기’ ‘닮은 얼굴 마주보기’ 등 각 통신마다 점차 늘어가는 추세”라고 전했습니다. 또한 “이들 동호회의 생활정보방에는 세금이나 부동산, 생활경제 관련 내용이 많아, 젊은이들의 관심사와 얼마나 다른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 생활전선에 있기 때문에 시절의 아픔도 진하게 배어나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절반의 시작’ 시삽 이경열씨는 “요즘 게시판에는 부모 얘기가 많이 올라온다”며 “힘든 세상에서 기대고 싶은 존재를 그리워하는 심정이 표출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른들’의 정보와 삶의 희노애락이 오가는 공간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000년대 초 네이버, 다음 등 포털에 밀려 PC통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 시절 그 느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20년이 흘러 현재는 포털 뿐만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가 워낙 활발하고 다양하게 활성화 돼있지요. 지금으로부터 20년 후에는 또 어떤 형태의 온라인 공간이 등장할지 궁금해집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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