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상생 방안이 노조와해로 둔갑?..'노조와해공작' 논란 포스코 문건 뜯어보니

김기찬 2018. 10. 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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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건, 민주노총, 한국노총 노조 상호비방전 우려
"모두가 동반자, '틀림' 아닌 '다름 인정해야" 지적
노조가 문제삼은 강성노조의 폐해 관련 내용
전문가 "회사로선 폐해를 경계하는 게 당연"
문건, 신생 금속노조 편의 지원 명시..노사 소통 강조
정부 노동정책과 강성노조 비판 내용
..경제신문 사설 등을 정리한 것으로 확인

지난달 25일 추혜선 의원(정의당)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는 "포스코가 노조 와해 공작을 펴고 있다"며 회사의 문건과 직원의 업무수첩을 공개했다. 회사 측은 "노사 관계 안정을 기반으로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통상적인 인사노무업무"라고 맞받았다.

이 문건은 포스코지회 소속 노조원 5명이 23일 밤 포스코 노무협력실 직원들이 사내 연수원에서 작성 중이던 것을 몸싸움 끝에 빼앗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직원 2명은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이 일로 2명이 절도와 업무방해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고, 3명은 자수해 조사를 받았다. 회사는 이들에 대한 징계에 착수했다. 문건 입수 과정에서의 불법성은 추후 사법당국의 수사 결과에 따라 처리될 전망이다.

문제는 이 문건이 노조와 정의당의 주장처럼 노조를 무너뜨리기 위한 공작이었는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중앙일보가 노조가 공개한 문건과 직원 업무수첩, 문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고받은 업무연락 내용을 입수했다.

이 문서는 '경영진 비리 등 의혹제기에 대한 엄정대처 필요' '직책자 갑질행위 및 군대식 조직문화 개선' '양 노총 상호비방전 양상에 대한 대응'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 우려' '강성노조의 부작용(H자동차와 H제철 사례)' '화해와 시대적 분위기에 역행하는 강성노조' 등의 분야로 나누어져 있다.

이 가운데 노조가 문제 삼는 것은 '강성노조는 노동자 자주통일 결의, 사드해체 요구, 선거 시 특정정당 지지 등 근로자의 권익향상과 관련없는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그간 노사관계에 깊숙이 개입해 왔지만 유연하고 효율적인 노동시장은 만드는데 있어서는 되레 후퇴한 측면이 많다' '(경영진 비리 의혹에 대한 엄정대처 항목의) 이를 방치할 경우 직원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여기게 될 수 있으며 결국에 회사 신인도 저하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등의 내용이다.

하지만 이들이 문제를 제기한 내용 중 상당수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건에 보도 출처도 명시돼 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한 것처럼 적힌 대목은 매일경제신문이 5월 25일 보도한 사설을 정리한 것으로 이 사실을 문건에 적어놨다. 포스코가 자의적으로 만든 내용이 아니라는 얘기다.
노조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회사가 비판하고 있다며 제시한 문건 내용 전문. 이는 매일경제신문이 5월 25일 보도한 사설을 정리한 것. 이 사실을 제목 아래에 적시해 놓았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 교수는 "노조가 제기하는 경영비리의혹 등에 대한 반박은 대법원에서도 보장하는 회사 측의 언론자유에 해당하는 행동"이라며 "이를 노조탄압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강성노조로 인한 부작용이나 우려에 대한 경계는 회사로선 당연히 할 수밖에 없다"며 "부당하게 노조활동에 관여하거나 위축시키는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 문건은 오히려 "내부 임직원끼리의 인신공격, 갈등조장은 시대적 흐름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경쟁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게 되면 노사공멸의 길로 이어질 수 있다"며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경계하고 있다.

직장 내 상급자의 갑질 행위 근절을 위해 직원의 제보와 같은 작업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또 직책자의 힘을 이용한 희롱(이를 문건에선 '힘희롱'이라고 적고 있다)과 같은 갑질 행위 근절 방안을 담고 있다. 행사 동원 금지, 회식문화 개선, 품격있는 언행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갑질에 대한 제보를 직원들에게 부탁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새로 생긴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 지회)와 한국노총 노조 간의 갈등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양 노총이 조직화 사업에 주력하는 가운데 상대 노조를 비방하는 갈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건전한 비판을 넘어선 비방으로 노노갈등이 심화할 경우 회사의 내부 결속력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어느 단체를 지지하는지를 떠나 같은 회사에서 함께 가야 할 동반자임을 인정하고 모두가 발전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생 노조(금속노조)가 교섭권을 가지지 못하더라고 노조에 제공하는 통상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비방전은 결국에 직원과 회사 모두에게 악영향만 끼칠 뿐이며 '틀림'이 아닌 '다름'에 대한 인식부터 출발해야 한다"고도 했다. 어느 한쪽의 노조를 지지하기보다 두 노조 간의 화합과 전체 회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내용인 셈이다.
노조가 노조 와해 공작의 증거라고 내세우는 직원의 수첩 내용. 제철소장 등에게 주어지는 미션이 노사 화합을 위한 것인지, 노조의 주장대로 외해공작인지의 여부가 나타나 있지 않다. 수첩의 전반적인 내용은 노사관계와 업무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포스코 노무협력실 직원의 수첩에 적힌 업무보고 작성을 위한 토의 및 검토 내용. 노조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를 경계하고 있다.
노조 측은 직원의 업무수첩에 적힌 내용도 문제 삼고 있다. 특히 '행정부소장 또는 제철소장의 미션'으로 '우리가 만든 논리가 일반 직원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작업'은 노조 와해공작의 증거라는 입장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 미션이 문건에서 적시한 건전한 노사관계 형성을 위한 내용이라면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실제로 본지가 입수한 수첩에는 '적법한 조합활동을 채증하는 것은 문제'라며 노조활동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심지어 '부노(부당노동행위)로 걸리면 끌려다니게 된다'며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경계했다. 특히 신생 금속노조를 의식한 듯 '교섭권이 없는 소수노조에도 회사의 지원이 필요하다. 사무실과 타임오프(전임자 근로시간면제), 집회, 선전전, 조합활동 계속'이라고 적고 있다. 지난달 23일 문건 작성을 위한 내부 업무협의 내용에도 "교섭권을 가지지 못한 노조에도 일정 수준의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사 철학을 가져야 하고, 퇴근 후에라도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정비 업무 개선을 위해 노경(노조와 경영진) 태스코포스(TF)를 구성해 개선을 검토'한다는 내용도 있다.

박지순 교수는 "문건과 수첩의 내용이 노조의 활동을 보장하고, 노사 화합을 도모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며 "특정 세력을 지원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준모 교수는 "노사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사용자로서의 노사관계 전략 논의를 지배개입 또는 노조와해라고 하는 것은 기업의 인사관리 전체를 불법이라고 호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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