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퀴어축제 차량이 사람 덮쳤다? '가짜뉴스 공장' 또 걸렸다

2018. 10. 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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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제주퀴어축제 기독교단체가 또 훼방
스스로 트럭 밑으로 들어가 안 나오기도
동성애·난민 혐오 가짜뉴스 유통 채널 블로그에선
"차량이 사람 덮쳤다"..SNS 타고 확산

[한겨레]

29일 열린 제2회 제주퀴어문화축제 거리행진 도중 반동성애 집회 참가자가 행진용 트럭 아래에 들어가 있다. 사진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 제공

동성애·난민 혐오 가짜뉴스의 발원지로 지목된 ‘에스더기도운동’(이하 에스더)의 가짜뉴스를 주요하게 유통하던 채널인 ‘지엠더블유(GMW) 연합’ 블로그’에서 또 한 번 동성애 관련 가짜뉴스를 만들었다가 적발됐다.

‘GMW 연합’ 블로그는 29일 오후 6시께 ‘제주퀴어문화축제 차량 목회자 밀고 지나가 119 출동, 의식 불명’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제주퀴어문화축제 차량이 사람을 덮쳤다”고 주장했다. “인천퀴어축제에서는 목회자를 수갑 채워 잡아가더니 이제는 차량으로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제주경제신문> 유튜브 영상 갈무리.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닌 가짜뉴스다. 실제로는 반동성애 ‘목회자’가 차량 밑에 스스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반동성애 ‘목회자’는 사람들이 끌어내려고 해도 나오지 않았다. 이를 현장에서 본 축제 참가자들의 항의가 잇따르고 당시 상황을 담은 뉴스 영상까지 공개되자 GMW연합은 뒤늦게 블로그 글을 수정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수정되기 이전의 블로그 글이 여전히 돌아다니고 있다.

■ 축제 참가자들 “멈춰있는 차량 밑에 스스로 들어갔다”

이들이 가짜뉴스 소재로 삼은 것은 29일 제주시 신산공원에서 열린 제2회 제주퀴어문화축제.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의 인권과 성적 다양성을 알리는 행사로 2000년 서울에서 처음 개최된 뒤 대구, 전주, 인천 등 전국 각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축제에는 조직위원회 추산 400명(행진 700명)이 참석했다.

이번 제2회 제주퀴어문화축제에서도 다른 지역 축제와 마찬가지로 인근에서 ‘동성애 혐오’를 내세운 맞불 집회가 열렸다. 제주도기독교교단협의회 등 500명은 ‘동성애는 인간의 천부적인 권리인 인권이 아니다’, ‘피땀 흘려 세운 나라 동성애로 무너진다’와 같은 팻말을 들고 찬송가를 부르며 ‘동성애 혐오’ 목소리를 높였다.

29일 제주시 신산공원에서 열린 제2회 제주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거리 행진을 위해 공원 밖 향해 달리고 있다. 사진 김민수씨 제공

그러자 충돌이 이어졌다. 오후 3시30분께 축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거리행진을 위해 참가자들이 공원을 빠져나가려고 하자 맞불 집회 쪽에서 공원 입구에 모여 행진을 막으려고 했다. 축제 참가자인 기록활동가 김민수(31)씨는 “맞불 집회 쪽에서 길을 막아 1시간 정도 대기했다. 경찰 협조로 공원을 나와 행진을 다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행진용 트럭 앞쪽 도로에 5~7명이 드러누웠다. 이들 때문에 차가 멈춘 상황에서 ‘반동성애’ 깃발을 든 남성이 순식간에 트럭 밑으로 들어갔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씨는 “이 남성은 ‘나오라’며 밖에서 내민 손도 뿌리치고 자신의 몸을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며 이 남성이 자발적으로 트럭 밑에 들어갔음을 강조했다. 김씨가 묘사한 당시 상황은 <제주경제신문>이 29일 밤 9시께 공개한 현장 영상에도 고스란히 찍혀있다. 이보다 앞선 오후 6시16분 민간 통신사 <뉴시스>도 ‘동성애를 반대하는 한 시민들이 퍼레이드 차량 밑으로 들어가 행진을 막고 있다’는 설명을 단 사진을 내보낸 바 있다. 축제 현장에 있던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도 오후 6시34분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려 “가만히 서 있는 트럭 아래에 굳이 들어간 것”이라며 “경찰들이 서 있는 폼을 보면 알겠지만 차가 사람을 친 상태라면 저렇게 태평하게 있을 리가 없다. 가짜뉴스에 속지말라”고 당부했다.

■ 무엇을 근거로 ‘가짜뉴스’ 만들었나

그렇다면 GMW연합 블로그에 올라온 가짜뉴스는 무엇을 근거로 삼고 있을까. 처음 올라온 글은 트럭 아래 사람이 누워있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사진을 첨부하고 “위 사진의 차량이 퀴어문화축제 측 차량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아래 동성애 축제를 반대하는 시민이 깔려 있다”고 썼다.

그 뒤 <뉴시스> 사진을 인용하고 “카퍼레이드 차량이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도 그냥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뉴시스가 쓴 사진 설명하고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한 누리꾼이 댓글로 이 부분을 지적하자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뉴시스가 잘못 보도한 것”이라고 답변하기까지 했다.

에스더의 가짜뉴스 주요 유통 채널인 ‘지엠더블유(GMW) 연합’ 블로그 갈무리

또 자신들보다 앞서 “차량이 사람을 덮쳤다”고 보도한 한 언론의 기사를 인용하며 가짜뉴스의 신빙성을 높이려고도 했다. 인용한 기사는 대표적인 보수 유튜브 채널인 ‘정규재티브이’에서 만든 인터넷 매체 <펜앤드마이크>가 29일 오후 5시48분 내보낸 ‘제주 동성애축제 차량에 반대시민 깔려 119 출동’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이 기사는 반동성애 기독교 유튜브 채널 ‘케이에이치티브이’(KHTV)가 축제 현장을 찍은 생중계 화면을 갈무리해서 기사에 첨부한 뒤 “동성애 축제 차량이 이를 반대하며 가로막던 남성 시민을 차로 덮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케이에이치티브이’ 생중계 영상을 확인한 결과 이 영상에는 남성이 트럭 밑에 누워있는 모습만 확인될 뿐, 어떻게 트럭 밑에 들어가게 됐는지는 잡히지 않았다.

인터넷 매체 <팬앤드마이크> 기사 갈무리. 현재는 내용이 수정된 상태다. 출처 트위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케이에이치티브이’와 에스더와의 관계다. <한겨레>는 지난 27일 ‘동성애·난민 혐오 ‘가짜뉴스 공장’의 이름, 에스더’를 단독 보도한 바 있다. (▶한겨레 탐사기획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바로 가기)

그동안 에스더가 만든 가짜뉴스들은 △동성애 커플 주례 거부 목사 징역형 △메르스 에이즈 결합 슈퍼 바이러스 창궐 △동성애 합법화하면 수간도 합법화 등이다. 이들 주장은 이용희 대표(가천대 글로벌경제학과 교수)의 강연 자료나 에스더 공지사항에 올라온 내용이었는데, 각각 쪼개져 카카오톡 등으로 퍼지거나 유튜브 가짜뉴스 영상의 숙주가 됐다.

<한겨레> 분석 결과, 최근 개신교발 가짜뉴스 22개가 모두 에스더와 연결돼 있었다. <한겨레>는 개신교발 가짜뉴스가 유튜브에서 확산될 때 주로 유통되는 채널도 분석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케이에이치티브이’였다.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가짜뉴스를 재생산하는 방식이 이번에도 드러난 셈이다.

<펜앤드마이크>의 기사는 현재 해당 남성이 행사 차량을 ‘육탄 저지'하다 다쳤다는 내용으로 바뀌어 있다. 기독교 언론 <크리스천투데이>도 비슷한 시각 <펜앤드마이크>와 같은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가 현재는 내용을 수정했다.

이에 대해 ‘지엠더블유(GMW) 연합’ 쪽은 <한겨레>에 이메일을 보내와 “우리 단체는 에스더기도운동과 전혀 관련이 없는 독자적인 기독시민단체이다. 같은 기독교 단체로서 성경적으로 동의하는 주제에 대해 인용하거나 동의한 것은 있을 수 있다”며 “그럼에도 (기사에서) 에스더와 GMW 연합을 혼용하여 표기하면서 우리 단체를 에스더와 동일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명백히 ‘가짜뉴스’”라고 반박했다.

기독교 언론 <크리스천투데이> 기사 갈무리. 현재는 내용이 수정된 상태다. 출처 트위터

■ 축제 조직위 “가짜뉴스, 법적대응 논의 중”

문제는 가짜뉴스의 질긴 생명력이다. 지금도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GMW연합 블로그, <펜앤드마이크>, <크리스천투데이> 등의 링크를 건 “제주 동성애축제 차량에 반대 시민이 깔려 119가 출동했다. 부상자가 차 밑에 깔려 있는데도 트럭 위에서는 동성애자들이 10분간 춤추며 광란축제를 즐겼다”는 가짜뉴스가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

이에 대해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다. 자신들의 세를 모을 근거가 제일 중요한데 가짜뉴스가 그런 근거가 되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민수씨 역시 “40~50대들의 동성애 반대 성향을 굳히는 데 가짜뉴스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 위원장은 “현재 변호사와 함께 가짜뉴스 대응을 논의중”이라며 “이외에도 맞불집회 참가자들이 축제 참가자들 얼굴에 대고 욕설을 하거나 주먹을 휘두른 피해 사례가 취합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고소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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