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2000억 틸팅열차·해무열차, 사실상 차량기지에 방치

강갑생 입력 2018.10.02. 02:01 수정 2018.10.02.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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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860억 들여 틸팅 개발 착수
곡선서 속도 안줄이고 빠르게 주행

영동,태백선 투입해 시간단축 노려
정부의 선로직선화 탓 틸팅 무용지물
해무, 2013년 최고 시속 420km 돌파
서울~부산 1시간반에 수출도 목표
해무 다닐 선로와 신호 등 개량 안해
국토부, 추가 고속화에 부정적 기류
송석준 의원, "2000억 상당 부분 낭비,
연구개발과 정책 연계 더 강화해야"
오송차량기지에 장기 보관 중인 해무열차와 틸팅열차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오른쪽 붉은 줄이 있는 열차가 틸팅이고, 왼쪽 노란색 정비열차 뒤편에 있는 열차가 해무다. [중앙포토]
총 20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개발한 첨단 틸팅(Tilting)열차와 초고속 해무(HEMU-430X) 열차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돼 방치되고 있다. 이들 열차의 개발 완료를 전후해 정부 정책이 바뀌면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탓이다.

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송석준 의원(자유한국당)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틸팅열차·해무열차 개발 현황과 활용방안' 자료에 따르면 틸팅열차 개발에 860억원, 해무열차에는 1140억원가량이 투입됐다. 모두 합하면 2000억원이 넘는 규모다. 하지만 두 열차는 현재 별다른 활용 방안 없이 충북 오송에 있는 한국철도시설공단 오송차량기지에 장기 보관 중이다.

2001년 개발에 착수한 틸팅열차는 모터사이클 선수처럼 곡선 구간을 돌 때 안쪽으로 차체를 기울이는 방식을 통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첨단 기능을 지녔다. 대부분 열차가 곡선구간에서 탈선을 막기 위해 속도를 크게 줄이는 것과 달리 틸팅은 시속 180㎞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실제로 산악지형이 많은 영국, 이태리, 스웨덴 등에서는 틸팅열차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틸팅열차는 곡선 레일의 안쪽으로 8도 가량 기울어진 채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중앙포토]
애초 국토부는 틸팅열차를 2012년께 중앙선, 태백선, 충북선 등 곡선 구간이 많은 노선에 우선 투입해 운행 시간을 최대 20%가량 단축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당시 국토부 고위 관리는 "틸팅열차는 고속철도의 신선을 건설하지 않고도 기존 철도의 속도를 높이는데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열차 개발과 성능시험을 거의 끝마치고 실전투입을 기다리던 2011년 갑자기 정부 방침이 변경됐다. 국토부가 발표한 '제2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서 틸팅열차 투입 대상이었던 노선들을 개량해 모두 직선화·고속화하기로 한 것이다. 이후 틸팅열차의 핵심인 틸팅 기술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시속 420㎞를 돌파해 프랑스(575㎞), 중국(486㎞), 일본(443㎞)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빠른 속도를 올린 해무열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07년 개발에 착수한 해무열차는 2013년 3월 최고 시속 421.4㎞를 기록하며 순항하는 듯했다.
2012년 열린 해무의 공식출고식에서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오른쪽에서 세번째) 등 관계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해무는 KTX처럼 맨 앞과 뒤의 동력차가 차량을 끌고 가는 동력집중식이 아니라 동력이 각 차량에 나뉘어 있어 별도의 동력차가 필요 없는 동력분산식 차량으로 외국의 초고속열차도 대부분 이 방식을 쓰고 있다.

앞서 2012년 5월 열린 해무열차 출고식에서 당시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중국,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고속열차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430㎞급 고속열차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연간 250조원 달하는 세계시장을 선점할 수있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부산을 1시간 30분 만에 주파하고 수출도 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후 해무열차가 제속도로 달리기 위해 필요한 선로·전차선·신호시스템 개량사업이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신설된 호남고속철도 일부 구간에 시험선이 만들어진 게 전부다. 게다가 해무열차 상용화를 위해 필요한 선로개량 규모와 비용 추산을 위해 철도시설공단이 지난해 추진하던 연구용역도 국토부에서 중지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오송차량기지에 장기 보관 중인 해무열차. 흰색 바탕에 검은색이 눈에 띈다. [중앙포토]

익명을 요구한 국토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고위 관료들 사이에 현재도 고속인데 여기서 더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겠느냐는 부정론이 적지 않다. 해무에 관심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해무열차의 운명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토부 철도정책과 김의연 사무관은 "해무 개발을 통해 동력분산식 열차 기술을 확보해 시속 250㎞와 320㎞급의 실용화 모델을 만든 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고 해명했다.
송석준 의원

하지만 정작 중요한 속도 관련 기술이 사장되고 있는 데다, 국내에서도 쓰지 않는 열차는 수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해 송석준 의원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해 놓고도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아 결국 세금만 상당 부분 낭비한 셈이 됐다"며 " 향후 연구개발을 할 때는 정책과의 연계성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