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군발 두통',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심한 통증에 눈물·콧물

민태원 기자 입력 2018. 10. 2.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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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보다 더 심한 고통
군발 두통은 두통 유형 가운데 통증 강도가 제일 세다. 환자들은 ‘머릿속이 불에 타는 것 같다’ ‘송곳으로 머리를 찌르는 것 같다’는 증상을 주로 호소한다. 사진=게티이미지

흔한 편두통·긴장형 두통보다 발병 흔치 않고 지속 시간 짧아
방치하는 경우 많아 치료 늦어 심하면 자살 충동까지 느껴
적극적인 치료가 절실하지만 국내에 허가된 요법 많지 않아
가장 효과적인 산소 흡입 치료… 건보 혜택 못 받아 고비용 부담

직장인 남성 A씨(32)는 5년 전 새벽 왼쪽 눈 안쪽과 관자놀이(눈과 귀 사이 움푹 들어간 곳)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파 잠에서 벌떡 깼다. 심한 통증은 1시간 뒤 사라졌지만 한 달간 매일 같은 고통을 겪었다. 그 후 두통이 더 이상 생기지 않으면서 A씨는 아픈 기억을 한동안 잊고 지냈다.

2년 뒤 극심한 두통이 다시 시작됐다. 통증은 점점 거세졌다. 한때 실신해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군발 두통(群發 頭痛·Cluster headache)’이라는 생소한 병명을 진단받은 것도 그때였다. A씨는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똑같은 두통 탓에 힘겹게 살고 있다.

10년째 군발 두통을 겪고 있는 B씨(42)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생각을 하기도 했다. 몇 년 전 의사가 권해 준 ‘산소 흡입 치료’를 통해 지금은 증상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게 됐지만 두통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군발기’가 되면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다. B씨는 “일이 바빠 산소 충전을 제대로 못할 때는 그저 머리를 움켜쥐고 통증이 사라지기만을 기도할 뿐”이라고 했다.

군발 두통은 모든 유형의 두통 가운데 통증 강도가 가장 세다. 그래서 ‘자살 두통’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군발 두통 환자들이 겪는 고통은 통증평가척도(VAS·0∼10점으로 점수화)에서 9.3점으로 나타나 출산 통증(7.5점)보다 훨씬 높은 걸로 확인됐다.

일반인에게 흔한 ‘긴장형 두통’의 통증 척도는 3∼5점, 그보다 심한 편두통은 6∼7점 정도다. 군발 두통 환자들은 ‘송곳으로 머리를 찌르는 것 같다’ ‘눈을 도려내는 것 같다’ ‘머릿속이 불에 타는 것 같다’고 호소한다.

대한두통학회 조수진(한림대의대 동탄성심병원 신경과 교수) 부회장은 1일 “군발 두통 환자들은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반복적으로 겪기 때문에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언제 다시 증상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 우울증, 불안장애 등 정서적 문제까지 이중고에 시달리기 일쑤”라고 실상을 전했다.

군발 두통 환자들은 긴장형 두통이나 편두통 환자보다 불안감, 우울증,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 해외 연구에서 군발 두통 환자의 우울증 위험이 일반인보다 약 3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주예수병원 신경과 최윤주 전문의는 국내 군발 두통 환자의 약 85%가 결근이나 업무능률 저하, 퇴직을 경험했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군발 두통이 사회생활 등 환자의 삶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진단하는 데 8년 걸려

성인의 70∼80%가 1년 중 한 번은 경험할 만큼 두통은 우리에게 익숙한 질환이지만 군발 두통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긴장형 두통(50%)과 편두통(30%)이 국내 두통 환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군발 두통은 0.1% 정도에 그친다.

다른 두통 유형에 비해 환자 수가 적긴 해도 최근 군발 두통 환자는 증가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군발 두통 진료 환자가 2010년 7532명에서 2016년 1만1125명으로 6년 사이 47.7% 늘었다. 질환이 생소한 탓에 병원을 찾지 않는 이들까지 감안하면 실제 환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에서 많이 나타나는 긴장형 두통이나 편두통과 달리 군발 두통은 남성에서 4배 정도 많이 발생한다. 사회활동이 왕성한 20∼40대 청·장년층에서 흔하다.

군발 두통은 왼쪽이나 오른쪽 중 한쪽 머리가 심하게 아프고 아픈 머리 쪽에 눈(결막)충혈과 눈물, 콧물, 코막힘, 땀 등 자율신경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두통 강도가 심할수록 동반되는 눈물이나 콧물 증상이 뚜렷하다. 통증은 자율신경증상이 나타난 쪽의 눈 뒤 혹은 관자놀이에서 시작돼 앞머리, 턱, 귀로 서서히 퍼지는 양상을 보인다. 새벽 같은 특정 시간대와 봄, 가을로 접어드는 환절기에 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긴장형 두통과 편두통은 수 시간에서 심하면 수일까지 증상이 이어지는 반면 군발 두통은 한 번 시작되면 10분 정도 통증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평균 1∼2시간, 최대 3시간 안에 잦아든다. 편두통과 긴장형 두통의 경우 머리 양쪽에 통증이 나타나는 것도 군발 두통과 차이다. 조 교수는 “군발 두통은 1∼3개월에 걸쳐 매일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수개월에서 수년간 증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진단이 늦거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대다수 군발 두통 환자들은 통증이 생긴 후에도 오랫동안 방치하고 치료에 소극적이다. 대한두통학회가 지난해 11개 대학병원에서 군발 두통 환자 200명을 조사했더니 두통 증상이 처음 시작된 연령은 평균 30.7세였으나 병원을 방문한 시기는 평균 38.1세로 나타났다. 환자가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기까지 약 8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대한두통학회 김병건(을지의대 신경과 교수) 회장은 “군발 두통은 통증이 매우 심하지만 일반인이 흔히 알고 있는 두통과 달리 지속 시간이 짧고, 눈물 콧물 코막힘 같은 증상이 동반되다 보니 환자들이 다른 질환으로 오인해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이어 “군발 두통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 진통제로 해결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니므로 의심되면 반드시 신경과 전문의와 상담해야 한다. 이때 본인이 겪은 두통의 강도나 지속 시간, 눈물·콧물 등의 증상 동반 여부를 정리한 ‘두통 일기’를 작성해 지참하면 진단에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군발 두통은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국내 환자들에겐 치료법의 선택 폭이 넓지 않다. 미국의 경우 주사 약물이나 코 흡입제, 신경자극기 등 두통 완화에 효과적인 다양한 치료법이 허가돼 활용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군발 두통의 치료는 두통이 시작됐을 때 통증을 완화해 주는 급성기 치료와 두통이 지속되는 기간(군발기)에 통증 강도와 빈도를 조절해 주는 예방 치료로 이뤄진다.

군발 두통은 15분∼3시간의 짧고 심한 통증이 특징이므로 빠른 효과를 나타내는 치료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급성기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산소 흡입 치료’를 꼽는다. 이는 두통 시작부터 고농도(100%) 산소를 분당 6∼12ℓ씩 15분간 흡입하는 방식이다. 효과가 미흡하면 분당 15ℓ로 흡입량을 늘려야 한다.

조 교수는 “분당 12ℓ씩 산소 흡입 치료를 받은 78%의 환자가 15분 내에 통증 감소 효과를 보인 것으로 보고됐다”고 말했다. 다만 집에서 산소 치료를 받을 시 화재 발생에 유의해야 한다. 치료 전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주변 물품을 정리하고 치료 중 흡연은 절대 금해야 한다.

산소 치료가 어려울 경우 먹는 약물을 쓰기도 하는데 효과가 늦고 적다는 단점이 있다. 효과 빠른 약물 주사제가 산소 치료의 유일한 대안으로 꼽히지만 국내에는 아직 허가돼 있지 않다.

산소 치료, 제도적 지원 절실

또 다른 문제는 산소 치료마저도 정작 환자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행 법규상 군발 두통 환자의 진료를 담당하는 신경과 전문의에게 ‘재택(在宅) 산소 치료’에 대한 처방 권한이 없는 데다 산소 치료를 위해 정리된 처방전 양식도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들이 가정용 산소 치료에 필요한 고가의 장비(산소통, 마스크, 코흡입호스 등)를 개별적으로 사거나 대여해 쓰고 있다. 의사들은 산소 치료를 권장하고 사용법을 알려줄 뿐 적극 개입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두통 발생 시 환자들이 알아서 할 수밖에 없어 안전사고 발생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신경과 배대웅 교수는 “제도적으로 포괄적 지원이 이뤄지는 일부 유럽국가나 올해부터 군발 두통 환자의 재택 산소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한 일본과 달리 국내에선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보니 환자들이 비싼 비용을 들여 스스로 치료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환자들은 산소가 소진될 때마다 지역의 의료용 산소 충전소를 직접 방문해 산소를 충전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감내해야 한다.

군발 두통 환자가 통증 지속 기간 동안 산소 치료를 위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장비 구입과 산소 재충전 비용 포함)은 사람에 따라 적게는 75만원, 많게는 225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조 교수는 “군발 두통 환자의 산소 치료에 대한 국가 지원체계가 미비해 치료비용 부담도 고스란히 환자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면서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은 아니지만 열악한 치료 환경 향상을 위해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아가 군발 두통을 ‘희귀질환’으로 분류해 환자의 치료와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다양한 치료법 연구와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병 인구 2만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 인구를 알 수 없는 질병의 경우 희귀질환으로 지정돼 정부의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대한두통학회는 지난해 하반기 복지부에 군발 두통에 대한 희귀질환 지정 검토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아울러 재택 산소 치료에 대한 신경과 의사의 처방권 부여와 건강보험 적용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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