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술집에서 써도 될까요? 업무추진비의 모든 것

2018. 10. 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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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 업무추진비 논란 톺아보니

심재철 "업무추진비로 사우나 이용은 규정 위반"
청와대 "평창올림픽 업무 과정에서 이용" 반박
기획재정부 지침엔 '사우나'는 제한 업종 포함

심야 술집에서 결제, 규정 위반은 아냐
청와대 "긴급 현안 논의로 불가피하게 사용"
권익위는 '음주 목적 사용 제한' 권고

특수활동비·특정업무경비도 감시 사각지대
법원 판례는 "공개해야" 원칙
청와대·국회 모두 업무추진비 공개로 논란 해법 찾아야

[한겨레]

청와대 업무추진비 자료 입수 경위에 대한 수사를 받고 있는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달 27일 오전 의원실 압수수색 등과 관련해 문희상 국회의장을 항의 방문한 뒤 의장실을 나서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용 자료를 입수해 일부 공개한 일로 여야가 뜨거운 정치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심 의원은 청와대가 규정을 어기고 업무추진비를 부적절하게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청와대는 모든 것은 적법하게 사용했다고 맞섭니다. 청와대 직원들이 갔다는 사우나, 와인바 등은 업무추진비로 가도 되는 곳일까요? 애초 업무추진비는 어디에 쓰라고 한 돈일까요. 또 공개는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요. ‘심재철 공방’에서 드러나는 업무추진비 쟁점을 짚어보겠습니다.

1. 업무추진비는 무엇?

업무추진비는 쉽게 말하면 ‘공무(公務)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입니다. 세부적으로는 ‘사업추진비’와 ‘관서업무추진비’로 나뉩니다. 사업추진비는 ‘외빈초청 경비, 해외출장지원 경비, 공식 회의 및 행사 경비, 사업추진에 특별히 소요되는 연회비 등 제 경비’를 말합니다. 관서업무추진비는 ‘대민·대 유관기관 업무협의, 당정협의, 언론인·직원 간담회, 체육대회, 종무식 등 관서업무 수행에 소요되는 경비’입니다.

기획재정부의 예산 집행 지침에 따르면, 업무추진비를 쓸 땐 집행목적·일시·장소·대상 등을 적은 증빙서류를 작성해야 합니다. 건당 50만원 이상이면 주된 상대방의 이름과 소속을 반드시 기재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같이 밥 먹은 사람 이름을 제출하란 얘기입니다. 업무추진비는 ‘클린카드’라 불리는 정부구매카드로 사용합니다. 흔히 말하는 ‘법인카드’ 같은 것이죠.

2. 사우나, 와인바에서는 못 쓰나?

이 ‘클린카드’는 아무 데나 쓸 수 없습니다. 기재부 지침에서는 카드 사용이 금지된 업종이 총 5개(유흥업종, 위생업종, 레저업종, 사행업종, 기타업종)입니다. 유흥업종은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라 접객요원을 두고 술을 판매하는 일반유흥주점, 무도시설을 갖추고 술을 판매하는 무도유흥주점’으로 명시했습니다. 단란주점, 룸살롱, 나이트클럽, 칵테일바 같은 곳을 말합니다. 위생업종은 ‘이·미용실, 피부미용실, 사우나, 안마시술소, 발 마사지, 스포츠마사지, 네일아트, 지압원 등 대인 서비스’라고 규정했습니다. 레저업종은 ‘골프장, 골프연습장, 스크린골프장, 노래방, 사교춤, 전화방, 비디오방, 당구장, 헬스클럽, PC방, 스키장’이고, 사행업종은 ‘카지노, 복권방, 오락실’, 기타업종으로 성인용품점, 총포류 판매점이 있습니다.

기획재정부의 2018년도 예산집행지침 가운데 업무추진비 관련 부분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지난달 28일 청와대 직원의 ‘미용업’ 결제에 대해 “평창 동계올림픽 관계자 격려비용이다. 당시 모나코 국왕 경호팀이 혹독한 추위에 고생하고 마무리 과정에서 관계 경찰·군인을 위해 직원 2명이 리조트 목욕시설에 (함께) 가서 사우나를 하고 왔다. 그 비용이 한 사람당 5500원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지침을 보면 ‘사우나’가 의무적 제한업종에 속합니다. 심 의원은 이를 근거로 규정 위반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해당 지침은 ‘사우나 등 대인서비스’라고 명기돼 있는데, 이는 대인서비스 접대와 향응을 금지하는 취지이지, 단순 목욕이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합니다. 보통 의무적 제한업종은 카드사에서 결제가 안 되도록 막습니다. 이번 사례는 청와대 직원이 이용한 목욕시설이 ‘미용 관련 서비스업’으로 분류돼, 카드사에서 사용 제한을 두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획재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비서실을 포함한 주요기관의 업무추진비 사용 실태 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했습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감사실에서 사실관계를 확인 후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심 의원은 또 청와대 직원들이 밤늦게 와인바,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 등에서 업무추진비를 쓴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업무와 관련 없는 곳에 세금을 쓴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기재부 지침에는 △비정상시간대(밤 11시 이후 심야시간대 등) △법정 공휴일 및 토·일요일 △관할 근무지와 무관한 지역에서 클린카드(업무추진비)를 원칙적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다만 불가피한 경우는 사유서 등 증빙자료를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청와대는 “국가 주요 현안 논의를 위해 불가피하게 심야나 주말에 간담회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일반식당 영업이 끝나 부득이 사용한 것”이라며 한·중 정상회담 사전 협의를 위해 외교부 공무원들과 회의하면서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는 사유서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 직원들이 갔다는 와인바나 이자카야 등은 앞서 소개한 기재부 지침의 ‘의무적 제한업종’에 속하지 않으므로 법적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세금으로 고가의 술집이나 레스토랑을 가는 것에 대한 도덕적 비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4년 “의무적 제한업종은 아니지만 업종이 주점으로 분류되는 업소에서 음주 목적의 부적정 사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며 “기타 주점에서 음주 목적 사용 제한”을 전 정부 기관에 권고한 바 있습니다.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9월2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청와대 '업무추진비 의혹'과 '회의 자문료 의혹'과 관련한 해명 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3. 업무추진비 공개는 어디까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관의 정보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치거나 공무 수행이 현저히 어려워지는 경우, 사생활 침해 등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공개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업무추진비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공공기관 경영정보 사이트인 ‘공공기관 알리오’에서는 각 기관장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관기관 업무협의, 3건, 150만원’ 같은 간략 정보만 공개합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하면 조금 더 자세한 내역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2003년 한 지자체장 업무추진비 공개 소송에서 “개인정보를 제외한 세부항목별 집행내역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한 바 있습니다. 최근에는 서울행정법원이 국회 업무추진비 공개 결정을 하면서 “국회 본래 기능인 입법활동 관련 통상 지출이 예상되는 경비로, 공개하더라도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하게 해칠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이 부분 정보공개로 국민 알권리와 국정 운영 투명성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는 과거 정부부터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업무추진비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안보 관련 중요 업무를 하는 청와대 고위직의 동선이 노출되면 업무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보공개법에서 규정한 공개 금지 항목 외 부분은 국회와 협의하면서 공개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4. 업무추진비만 문제일까?

심재철 의원이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사용을 문제 삼자, 평소 정부·국회 등 주요 기관의 세금 낭비 사례를 감시해온 시민단체들이 도리어 “심 의원부터 업무추진비·특수활동비를 공개하라”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사실 시민단체들은 일찍부터 업무추진비뿐만 아니라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를 대표적인 ‘눈먼 돈’ 사례로 지적하며 국회를 상대로 업무추진비·특수활동비·특정업무경비 정보공개 소송을 벌이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입장에서는 청와대 업무추진비 사용의 문제를 따지는 심 의원이 정작 ‘제 눈의 들보는 못 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수활동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합니다. 범죄수사나 첩보활동 특성상 ‘비공식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 돈을 말합니다. 업무추진비만큼 증빙 절차가 까다롭지 않아 ‘쌈짓돈’, ‘눈먼 돈’으로 인식됐습니다. 최근에는 ‘기밀활동’과 관련 없는 국회가 연간 60억원 규모의 특수활동비를 쌈짓돈처럼 운영해온 사실이 드러나 ‘전면 폐지’ 수준으로 특활비를 삭감했습니다.

‘특정업무경비’는 각 기관의 수사·감사·예산·조사 등 특정 업무수행에 소요되는 실 경비에 충당하기 위해 지급하는 경비를 말합니다. 사용내역 증빙을 첨부해야 하지만 특수한 경우는 증빙이 어려운 이유와 함께 지출 내역만 기재해도 됩니다. 이 비용 역시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과거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재판관 시절 받은 특정업무경비를 개인 계좌로 넣어 금융상품에 투자한 사실이 밝혀져 낙마하기도 했죠. 특히 국회의 특정업무경비 집행내역은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에 따르면 국회 특정업무경비는 그동안 어디에 지출했는지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지난 2013년 실시된 감사원 감사에서도 국회가 해당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감사원도 집행실태를 확인하지 못한 예산항목이었습니다. 지난 8월30일 서울행정법원은 국회의 특정업무경비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했고 국회가 항소를 포기해 조만간 특정업무경비 사용내역이 공개될 예정입니다.

반면 업무추진비는 국회가 1심에서 공개 판결을 받고도 불복해 항소로 버티고 있습니다. 다른 정부기관이나 지자체의 업무추진비 공개소송에서 개인정보를 제외한 업무추진비를 공개하라고 한 대법원 판례가 있는데도 말이죠. ‘심재철 공방’이 더는 소모적인 정쟁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국회도 판결 취지에 따라 업무추진비를 공개하고, 청와대도 안보와 관련된 불가피한 부분을 제외한 통상 업무에 쓴 업무추진비는 투명하게 공개해 개선책을 찾아나서는 게 최선의 방법일 것 같습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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