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단독] 포스코, 조합원 1만8천명 노조를 이렇게 파괴했다

2018. 10. 2.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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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초 현장 주임 앞세워 조합탈퇴 압박
집까지 찾아가 "직장 잃는다" 가족들 회유도
1990년 출범 집행부에 향응성 접대 '무력화'
불과 두달여만에 대부분 탈퇴 민주노조 붕괴
1990~2000년대 재건 노력도 탄압으로 무산
"노사 모두 대립관계 탈피 상생 노력 필요"

[한겨레]

그래픽_장은영

포스코의 신설 민주노조 와해공작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과거 조합원 수가 1만8천명에 달할 정도로 강력했던 포스코 노조가 1990년대 초 갑자기 와해된 것은 회사의 조직적인 노조 파괴행위 때문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포스코의 포항·광양제철소에서 근무했던 김순식(58)씨는 2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포스코가 1991년 1월부터 생산현장 책임자인 주임들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조합 탈퇴서를 쓰도록 사실상 강제하는 방법으로 불과 두달여만에 노조를 무너뜨렸다”고 폭로했다. 당시 포스코는 박태준 회장의 정치활동으로 인해 황경로 부회장이 내부 경영을 맡고 있었다.

김씨는 “현장 주임들이 노조파괴 행위에 나선 것은 자발적인 게 아니었고, 경영진이 탈퇴서를 받지 못하면 회사를 그만두라고 압박했기 때문”이라며, “현장 주임들은 노동자들의 집까지 찾아가 가족들에게 노조탈퇴를 안하면 직장을 잃을 수 있다고 압박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또 “정준양 전 회장이 당시 포항제철소의 제1제강공장장을 맡고 있으면서, 노조파괴 행위에 가담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포스코는 공고 출신 노동자들의 병역특혜 취소, 조합원 주택융자금 혜택 제외, 포항제철소 조합원들의 광양제철소 전출 등 전방위적으로 조합원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노조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직후인 1988년 6월 설립됐고, 1990년 조합원 직접선거로 박군기 위원장이 선출되면서 본격적인 민주노조로 자리잡았다. 노조는 전체 직원 2만3천명 가운데 1만8천명이 조합에 가입하는 강력한 지지 속에서 현대중공업 등의 노조와 ‘대기업 연대회의’를 구성해 민주 노동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으나, 회사와 안기부 등 공안기관의 감시·탄압에 의해 1990년대 초 갑자기 붕괴됐는데, 지금까지 정확한 실상이 알려지지 않았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중앙)이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포스코 민주노조와 금속노조 관계자들과 함께 포스코의 노조공작 혐의를 폭로하고 있다. 정의당 제공

또 포스코가 당시 박군기 노조 집행부의 무력화를 위해 회유공작을 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익명을 요청한 포스코 현직 간부는 “회사가 노조 집행부를 상대로 온갖 향응성 접대를 제공해 무력화시켰다“면서 “심지어 근무시간 중에 만취한 노조 간부가 조합원들 앞에서 추태를 부리는 일도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1991년 초 조합 간부가 납품 관련 사기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면서 “이를 통해 조합원들이 노조 집행부를 불신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했다”고 덧붙였다.

노조가 무력화된 뒤 1993년과 1994년 잇달아 해고노동자들이 유령노조 해산과 노조활동 보장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였으나 무위로 끝났고, 회사는 대규모 감원을 단행했다. 이후 2003년, 2004년, 2006년, 2007년에도 잇달아 민주노조 재건이 추진됐으나 회사와 안기부 등 공안당국의 탄압으로 실패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8년 이후 일부 포스코 해고노동자들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포스코는 1991년 노조가 무너진 뒤 1993년 직장협의회를 만들어 임금협상 파트너로 삼았다. 김순식씨는 “1996년 직장협의회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에 ‘노조 부활’을 내걸고 출마한 뒤 회사의 탄압을 받다가 1999년 8월 퇴사했다”면서 “최근 검찰수사를 통해 삼성이 지난 수십년간 불법적으로 노조파괴행위를 벌인 게 드러났지만, 포스코도 삼성과 똑같은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포스코 안팎에서는 최정우 회장 취임을 계기로 과거의 대립적 노사관계를 일신하고 상생관계로 전환할 좋은 기회를 맞았는데도 노조 와해공작 의혹이 재연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포스코 한 임원은 “그동안 경영진의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워낙 심해 삼성 사건을 보면서도 과거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다가 노조 와해공작 논란이 벌어진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포스코에서 30년 이상 근무했던 전직 임원은 “최 회장이 7월 취임 때 주주·고객사·공급사·포항 및 광양의 지역주민·국민에게 공개 러브레터를 보내 포스코가 고쳐야 할 것 등 건전한 비판까지 모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면서 “포스코의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노사 모두 기득권 주장이나 적대적 태도 등 구태에서 벗어나 상생 노력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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