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비건 화장품, 비건 패션..'쓰는 채식'이 뜬다

2018. 10. 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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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비건
국내외 화장품·패션 업계에서 '비건' 바람
커피찌꺼기·허브 등 식물성 원료로 만든 제품 주목
인조가죽·페이크 퍼 등으로 만든 제품도 인기

[한겨레]

비건 패션 브랜드 ‘비건타이거’ 양윤아 대표가 ‘페이크 퍼’로 만든 비건 외투를 손보고 있다. 그가 입고 있는 실크 느낌의 원피스 역시 비동물성 섬유로 만든 원피스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먹는 채식도 있지만 ‘쓰는 채식’도 있다. 사정상 육류나 생선을 먹더라도,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만큼은 최대한 동물을 보호하려는 생활 방식이라고 한다. ‘쓰는 채식’을 선택한 이들은 동물성 성분을 사용하지 않고,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 제품만 고집한다. 이를테면 비건(완전 채식) 화장품이나 비건 패션 브랜드의 의류, 가방 등을 구매하는 식이다. 비건 바람이 부는 요즘, ‘쓰는 채식’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동물을 아프게 하지 않는 ‘착한’ 로션을 만들어 볼까?” 지난달 29일 김아람(33)씨는 딸과 함께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에 있는 비건 화장품 디아이와이(DIY·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만드는 것) 체험 공간 ‘비비엘하우스’를 찾았다. 식물성 원료를 사용해 비건 화장품을 만들어 보기 위해서다. 김씨는 “강아지를 키우게 된 후 자연스레 아이가 동물의 생명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비건 화장품을 같이 만들어 보면 아이 교육에 더 좋을 것 같아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비건 화장품 디아이와이(DIY) 체험 공간 ‘비비엘하우스’에서 김아람씨와 그의 딸이 비건 화장품을 만들고 있다. 김포그니 기자

김씨는 최근 배우 임수정이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만을 구매한다는 인터뷰를 보고 비건 화장품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일반 화장품의 경우, 인체 안전성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동물 실험을 하는데 그 방법이 잔인해 동물권 논란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배웠다. “수개월간 화학 약품을 주입해 눈이 멀어버린 토끼들의 사례를 알고 나자 도저히 그런 제품을 딸이 사용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그는 “아이가 아직 6살이고 성장기여서, 채식을 권하는 것보다는 ‘쓰는 채식’을 알아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김씨 모녀는 로즈마리, 티트리(늪지대에서 자라는 식물의 한 종류) 등 오로지 식물성 원료를 이용해 로션을 만들었다. 천연 성분만 사용했기 때문에 동물 실험도 필요 없었다. “식물성 오일이 들어가 향이 더 좋고, 동물성 원료를 사용한 화장품과도 효능에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며 김씨는 만족해했다. 비건 화장품 전문가 김희성(49) ‘비비엘’ 대표는 “그동안 국내 거주 중인 비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루 클래스를 진행해 왔는데 지난해 말부터 국내 20~40대 여성 방문객이 크게 늘었다”고 말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의 증가와, 비건을 선언하는 연예인들이 늘면서 자연스레 비건 화장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닥터 브로너스의 비건 화장품, ‘매직솝’ 사진 닥터 브로너스 제공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외 화장품 업계에선 비건 화장품의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미국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의 조사 결과 전 세계 비건 화장품 시장은 2년 전부터 연평균 약 6.3% 성장하고 있다. 미국 화장품 업체 ‘닥터 브로너스’의 경우 지난 18년간 별다른 광고 없이도 미국 ‘몸 관리’(보디 케어)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윤리적 제조법으로 얻은 비즈왁스(천연 밀랍)를 사용한 밤(연고 스타일 화장품) 타입 외에는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대표적인 비건 브랜드라는 점이 고객 확보의 동력이 됐다고 한다. 배우 제시카 알바가 애용해 유명해진 비건 화장품 업체 ‘아워글래스’는 지난해 “모든 제품을 2020년까지 100% 비건으로 내놓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립스틱 등 색조 화장품의 필수 원료인 구아닌은 생선 비늘에서 얻어야 하지만, 이를 식물성 원료로 교체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게 아워글래스 입장이다.

국내도 비슷한 상황이다. 국내 화장품 업체 ‘이니스프리’는 최근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에서 커피 오일을 추출해 만든 친환경 화장품을 선보였다. 한 마케팅 담당자는 “커피 찌꺼기는 잘 안 썩기 때문에 토양을 파괴하는 주범 중 하나인데, 이런 환경 쓰레기도 줄이면서 식물성 원료로 친환경 화장품을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이니스프리의 비건 화장품, '커피 바디 워시' 사진 이니스프리 제공

최근의 국내 화장품 업계에 부는 ‘비건 바람’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드럭스토어 올리브영에 따르면 올 1~8월 국내 비건 화장품의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약 70% 증가했다. 올리브영 커뮤니케이션팀 안창현 과장은 “‘비건’이 매출에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며 “국내 비건 화장품 업체 ‘아로마티카’의 경우 지난 1년간 매출액이 100% 늘었다. 다른 비건 화장품도 비슷한 매출 성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건 화장품들이 증가하는 가운데 ‘제대로 된’ 제품을 찾는 방법은 없을까. 우선 미국의 ‘비건 액션’, 영국의 ‘비건 소사이어티’ 등 유명 채식협회의 정식 인증과 전 제품에 동물 실험을 하지 않았음을 뜻하는 ‘리핑 버니(깡충 뛰는 건강한 토끼 상징)’ 인증 등이 제품에 표기돼 있는지 확인해 보자.

동물 실험을 하지 않았더라도 말 기름으로 만드는 마유크림이나 달팽이크림, 상어 간에서 추출하는 스쿠알렌, 꿀, 콜라겐 등 동물성 원료가 들어가지 않았는지도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국내 동물보호단체 카라 등은 자체 누리집을 통해 동물 실험·동물성 원료를 배제한 비건 회사 정보를 공개하고 있어 이를 참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패션계에서도 비건 바람이 불고 있다. 2015년 ‘스텔라 맥카트니’, 2016년 ‘조르지오 아르마니’에 이어 지난해 ‘구찌’도 동물 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퍼 프리’(Fur Free) 선언을 했다. 최고급만 추구하던 명품 브랜드들이 ‘가짜 가죽’(fake fur, 페이크 퍼)’으로 불리는 인조 모피 등으로 옷, 가방을 제작하며 비건 패션에 동참하고 나선 배경에는 역시 제작 과정에서 동물 윤리의 문제가 있었다.

송아지 가죽은 태어난 지 6개월 미만의 송아지를, 송치가죽(털을 조금 남긴 상태로 가공한 가죽)은 어미 소의 뱃속에서 6개월 정도 된 태아소를 강제로 끄집어내 피부를 벗겨 만든다. 이 가죽들은 보통 고급 의류·신발·가방 등의 소재로 사용된다. 겨울철 모자 테두리나 목도리 등에 사용되는 토끼·라쿤 털은 동물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가죽과 털을 뜯어낸다. 윤기 있는 모피를 얻기 위해서다. 스웨이드(소·양), 울(양), 앙고라·캐시미어(산양)와 겨울철 패딩이나 이불의 충전재로 사용되는 오리·거위털 생산 과정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동물성 섬유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이렇듯 인간의 멋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에 대한 윤리적 책임감이 커지면서 비건 패션만을 전문으로 하는 브랜드도 생겨났다. 2015년 11월 비건 패션 브랜드를 설립한 양윤아(36) ‘비건타이거’ 대표는 “좋은 대체재가 있는데 굳이 동물을 죽여서 옷을 만들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비동물성 섬유로도 얼마든지 실용성과 멋,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양 대표는 비건 패션에 관심 없는 소비자조차도 자연스럽게 비건 패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디자인에 주력했다고 한다. 덕분에 비건 패션을 선보인 지 2년 만에 매출액이 7배 이상 뛰었다. 강렬한 색상의 ‘페이크 퍼’로 만든 코트, 누에고치를 죽여서 얻은 원료인 실크 소재 대신 유사 소재로 만든 로브(가운) 등이 특히 인기다. 가수 선미, 소녀시대 효연, 배우 엄현경 등 패션에 민감한 여자 연예인들이 이 브랜드의 단골고객이라고 한다.

낫아워스의 ’합성 피혁 지갑’ 사진 낫아워스 제공

또 다른 국내 비건 패션브랜드 ‘낫아워스’는 지난해부터 인조가죽으로 제작한 지갑, 가방 등을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낫아워스 신하나(36) 대표도 “가죽 대신 폴리우레탄 등 합성 피혁 소재로 충분히 질 좋은 가방·지갑·구두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폴리염화비닐이라는 합성 피혁은 환경에 해로운 플라스틱 물질이기에 피하는 게 좋다고 한다.

앳코너의 ’페이크 퍼 무스탕’ 사진 앳코너 제공

곧 겨울이다. 오리털이나 거위털 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겨울용 외투는 없을까. 국내 패션 업체 ‘앳코너’에서는 인조가죽을 활용한 안감을 넣은 비건 무스탕을 선보였다. 겉감은 특수 합성소재로 가죽 느낌을 구현했다. 웰론(오리털을 모방한 인조 충전재)이나 신슐레이트(합성 보온 소재) 등 신소재 혹은 ‘페이크 퍼’로 만들어진 외투도 비건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비건 패션이다. 실제 입어 보면 가볍고 따뜻하다고 한다. ‘페이크 퍼’의 경우 화려한 색상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어 겨울철 독특한 스타일을 원한다면 도전해볼 만하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채식

고기를 먹지 않거나 가급적 멀리하는 식생활. 음식의 섭취 범위에 따라 대략 이렇게 나뉜다. ▲플렉시테리언(주로 채식을 하되 유동적으로 육식을 함) ▲폴로(포유류는 먹지 않고 조류는 먹음) ▲페스코(포유류·조류를 먹지 않고 해산물은 먹음) ▲락토오보(육류·해산물을 먹지 않고 우유·달걀은 먹음) ▲비건(채소와 과일만 먹음) ▲프루테리언(채소도 먹지 않고 과일과 견과류 같은 열매만 먹음)으로 나뉜다. ‘비덩주의’는 덩어리진 고기는 먹지 않되 육수로 우려낸 국물이나 양념은 먹는 채식으로, 국물음식이 발달한 한국에 많다. 최근에는 ‘로 푸드'(Raw food) 열풍이 불며 가공하거나 조리하지 않은 채소만 먹는 ‘생채식’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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