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에도 끄떡없던 성북구 '불법 맥양집', 구청 현수막 26개에 줄줄이 문 닫았다

김승재 기자 입력 2018. 10. 4. 03:05 수정 2018. 10. 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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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앞에 '유해업소 퇴출' 현수막, 4개월만에 손님 10분의 1로 줄어

서울 성북구 길음역에서 길음·미아 뉴타운으로 500m가량 이어지는 삼양로 거리는 강북의 대표적인 '불법 맥양집' 밀집 지역이다. 맥주와 양주를 파는 술집으로 가장해 퇴폐 영업이나 성매매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만 39곳이 있다.

20~30년간 불법 영업을 해온 삼양로 맥양집 거리가 최근 4개월 사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손님이 평소의 10분의 1로 줄고, 하나둘씩 문을 닫는 업소들이 생겨난 것이다. 지난 2일 오후 11시 찾은 삼양로 맥양집 거리엔 39개 업소 가운데 9곳만 영업하고 있었다. 10년 넘게 이곳에서 맥양집을 운영해왔다는 박모(67)씨는 "저놈의 플래카드 때문에 여기 사람들 다 말라죽게 생겼다"며 가게 앞에 내걸린 현수막을 가리켰다.

절묘하게 가려진 간판 - 2일 오후 서울 성북구 삼양로에 늘어선 불법 맥양집 앞에 성북구청이 만든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간판을 가리는 위치에 현수막이 내걸린 지 4개월이 지나자 이곳을 찾는 손님은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오종찬 기자


성북구청은 지난 5월 25일 삼양로에 자리한 맥양집들 앞에 현수막 26개를 걸었다. '불법 유해업소 퇴출 주민과 함께 만들어갑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맥양집 앞 가로수와 전봇대 사이마다 빠짐없이 설치돼 있었다. '현수막 작전'은 성북구 보건위생과 직원들의 아이디어였다. 경찰·구청 단속에도 맥양집 불법 영업이 계속되자 불법 영업을 중단하라는 현수막을 걸기로 한 것이다. 맞은편 인도에서 바라보면 현수막이 맥양집 간판을 정확히 가린다. 다른 가게 간판을 가리지 않게 현수막 크기도 맞춤형으로 제작했다.

효과는 구청의 기대 이상이었다. 하루에 손님 4~5명을 받던 가게들이 한 달에 15명 남짓 받게 되면서 월세도 내지 못할 처지가 됐다. 업주들에 따르면 장사를 접고 떠난 가게가 10곳이 넘고, 현수막이 사라질 때까지 영업을 중단하겠다는 업주도 20명에 달한다고 했다. 맥양집 업주 김모(58)씨는 "7년째 가게를 하면서 수차례 단속을 당하면서도 지금까지 잘 버텼는데 이렇게까지 생존에 위협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간혹 오는 손님들도 '제발 저 현수막 좀 떼면 안 되겠느냐'고 화를 낸다"고 했다.

맥양집은 일반음식점으로 신고된 업소로 술을 파는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대다수가 붉은 등을 달고 유흥주점 형태로 접객하거나 불법 성매매를 한다. 식품위생법에 따라 일반음식점에서는 손님과 동석해 술을 마시는 것도 금지돼 있다. 삼양로 맥양집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는 학생 1200여 명이 다니는 미아초등학교가 있어 그간 학부모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성북구 관계자는 "불법 맥양집을 대상으로 경찰과 합동 단속을 수시로 벌여도 해결하지 못했던 일을 현수막 26개가 해낼 줄은 우리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불법 영업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현수막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했다.

▲ 성북구, 간판 앞에 '유해업소 퇴출' 현수막에 줄줄이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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